일반논문

기후위기 시대의 다중격차와 교차성: 기후정의를 위한 전환적 기획

김종길 1 , *
Jongkil Kim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김종길_덕성여자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 사회학전공
1Duksung Women’s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way21@duksung.ac.kr

© Copyright 2026,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r 20, 2026; Revised: Mar 26, 2026; Accepted: Mar 29, 2026

Published Online: Mar 31, 2026

국문초록

현대 탄소 의존적 문명의 발전은 유례없는 풍요를 가져왔으나 그 이면에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위험이 비대칭적으로 전가되는 ‘위험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본 연구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적 변동으로 치부하기보다 기존의 구조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심화시키는 ‘입체적 취약성’의 핵심 동인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상호교차성 이론을 분석 틀로 삼아 한국 사회에 내재한 다중격차의 실태를 고찰하였다. 분석 결과, 글로벌 차원의 생태적 부채 모순과 국내의 주거·에너지·노동 격차가 상호 결합함으로써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의 생활기회를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구체적으로 한국적 맥락에서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고착된 노인 빈곤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배제가 기후 위험과 결합하며 취약성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며 기술 중심의 사후 처방을 넘어 사회 정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체제 전환적 기획’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복합적인 위험 요소를 아우르는 통합적 취약성 지표의 도입과 포용적 거버넌스 확립을 통해 실천적 기후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성을 도출한다.

Abstract

While the carbon-dependent development of modern civilization has brought unprecedented global prosperity, it has simultaneously engendered an “inequality of risk”, where environmental hazards are asymmetrically transferred to socially vulnerable groups. This study identifies climate change not merely as an environmental disaster, but as a critical driver of intersectional vulnerability that entrenches and exacerbates socio-structural inequalities.

Adopting intersectionality theory as its analytical framework, this research empirically examines the multi-layered disparities unique to South Korean society. The analysis reveals that the contradiction of “ecological debt” at the global level, coupled with domestic disparities in housing, energy, and labor, fundamentally deprives vulnerable populations of their life chances. In the specific context of South Korea, the patriarchal nature of elderly poverty and the legal and social exclusion of migrant workers interact with climate risks to explosively amplify systemic vulnerability.

In conclusion, this paper proposes a “transformative project” that moves beyond techno-centric post-hoc measures toward a reconstruction of social justice. It suggests a strategic direction for practical climate justice, underpinned by the implementation of precise vulnerability indicators and inclusive governance.

Keywords: 기후위기; 다중격차; 교차성 이론; 기후불평등; 정의로운
Keywords: Climate Crisis; Multiple Inequalities; Intersectionality Theory; Climate Inequality; Just Transition

I. 서론

기후위기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경고를 넘어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모순과 결합하여 그 파급력을 증폭시키는 ‘복합위기(polycrisis)’의 핵심 동인이다(Morin, 1999). 산업혁명 이후의 탄소 자본주의와 ‘거대한 가속’이 초래한 생태적 파국은 한반도의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자연적인 보편 재난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기존 균열을 파고들며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사건’으로 변모하고 있다.

본 연구가 주목하는 지점은 재난의 책임과 대응 능력 사이의 극심한 괴리에서 비롯되는 ‘다중격차(multidimensional inequality)’의 동학이다. 이는 소득과 자산 등 단일 차원의 불평등을 넘어 주거, 건강, 노동 등 삶의 전 영역에서 격차가 상호 중첩되며 고착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Shin, 2016). 특히 한국 사회의 다중격차는 고령화와 이주노동 시장의 팽창이라는 인구구조적 특수성과 결합하며 기후 취약계층의 사회적 배제를 심화하는 복합적 양상을 띤다.

이러한 배경하에 본고는 기후위기가 생산하는 불평등의 복합 기제를 규명하고 체제 전환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분석의 핵심 틀인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 시각은 젠더, 계급, 인종 등이 중첩된 배제 구조를 포착하는 데 탁월할 뿐만 아니라 위험이 계급적 경계를 넘어 보편화된다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 평준화’ 명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에 본고는 위험의 추상적 보편성을 넘어 기후 재난이 기존의 구조적 취약성을 어떻게 선택적으로 증폭시키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본고는 서구 중심의 교차성 논의를 한국적 맥락으로 확장하여 가부장적 가구 구조와 이주노동자의 제도적 비가시성이 기후 재난과 결합하며 발생하는 불평등의 전이 과정을 면밀히 추적한다. 질적 해석과 데이터 분석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본 연구의 시도는 기술 중심적 탄소 감축 담론을 넘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실천적 기후정의를 구체화하고 지속 가능한 기후 정책 정립을 위한 실증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II. 선행 연구 검토

국내외 기후불평등 논의는 2010년대 이후 기후재난의 가시화와 함께 급격히 확대되었다. 초기 연구들은 주로 국책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개념 정립과 법 제도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였다(Kim et al., 2013; Ha et al., 2015). 이러한 제도적 접근은 폭염·홍수 등 특정 재난에 대한 인벤토리를 개발하고 에너지 복지 체계를 구축하는 등 기후불평등을 정책 의제로 격상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넘어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의 분배적·절차적 정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거나(Park, 2021),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보호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담론으로 논의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Kim, 2022).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들은 기후위기가 지닌 복합적 유동성과 누적적 피해의 특성을 단일한 취약성 지표로 환원함으로써 불평등의 역동성을 포착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에 본 연구는 기후위기 특유의 복합적 기제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 선행 연구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수렴하고자 한다.

첫째, 범주적 고립성의 문제다. 기존 연구는 노인, 저소득층, 장애인 등 취약 집단을 개별 변수로 분리하여 취약성을 측정한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고정된 계층 지위보다 ‘주거의 질 + 에너지 구매력 + 사회적 돌봄 네트워크’가 결합된 지점에서 폭발적으로 발화한다. 단일 범주 접근은 폐쇄된 컨테이너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가 겪는 젠더와 법적 지위의 교차적 위협을 단순한 노동 환경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둘째, 기후위기의 특수성을 반영한 이론적 결합의 미비다. 기후위기는 원인 제공 시점과 피해 발생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이른바 ‘시공간적 비동기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한다. 기존의 다중격차 논의가 현재의 소득이나 자산 격차에 천착해 온 사이 기후위기는 미래 세대의 생존권 박탈과 노년층의 신체적 취약성을 매개로 생애주기적 불평등을 극대화하고 있다. 즉, 기후위기는 기존의 경제적 층위를 넘어 세대 간, 생애단계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한국적 특수성의 부재다. 서구의 교차성 이론이 인종(race) 이슈에 집중한다면 한국 사회는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인 빈곤과 가부장적 가족 해체, 그리고 급증하는 이주노동의 비공식성이 기후 위험과 결합하는 독특한 다중격차 양상을 띤다. 기존 연구들은 이러한 한국 고유의 사회 구조적 맥락을 반영한 독자적 해석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불평등을 명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개별 요인의 단순 합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위험을 증폭시키는 교차적 메커니즘을 규명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의를 넘어 사회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전환적 기획’으로서의 기후정의를 모색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다.

III. 다중격차와 교차성 이론의 사회학

기존의 불평등 담론은 성별, 계급, 지역 등의 변수를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분석함으로써 불평등이 실제 삶에서 발현되는 복합적인 양상을 포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노정해 왔다. 이러한 파편적 접근의 대안으로 부상한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의 상호교차성 개념은 불평등이 단일한 축을 따라 선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사회적 범주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재구성됨을 역설한다. 크렌쇼에 따르면 소외와 차별은 개별 요소들이 단순하게 결합하는 산술적 ‘덧셈(addition)’의 차원을 넘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새로운 형태의 배제를 산출하는 ‘구조적 억압(structural oppression)’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Crenshaw, 1989).

이러한 시각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의 ‘맞물린 억압(interlocking oppressions)’과 레슬리 맥콜(Leslie McCall)의 ‘복잡성(complexity)’ 논의로 확장되며 이론적 층위를 두텁게 했다(Collins, 2000; McCall, 2005). 이들은 현대사회의 불평등이 고정된 이분법적 잣대로는 포착될 수 없으며 권력관계의 다층적 위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이러한 교차성 이론의 분석적 유용성은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불평등의 복합적인 경로를 규명하는 데 탁월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특히 다차원적 권력 위계는 기후위기라는 외부적 충격을 만날 때 더욱 선명하게 가시화된다. 즉, 기존의 사회적 배제 구조가 기후 재난의 물리적 위험과 결합함으로써 특정 집단의 복원력을 근본적으로 와해시키는 결정적 기제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동인은 기후위기 고유의 특성인 ‘누적적 가속성’과 ‘시공간적 비동기성’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다중격차는 단층적인 경제적 결핍의 차원을 넘어 다음과 같은 기후 특유의 교차적 기제를 매개로 사회적 취약성을 입체적으로 구조화한다.

첫째, 생물학적 신체성과 물리적 환경 노출의 상호작용이다. 기후위기는 폭염이나 감염병처럼 연령, 기저질환 등 생물학적 조건에 기초한 신체적 항상성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교차성 이론은 이러한 생물학적 범주가 주거 형태나 에너지 구매력과 같은 물리적 환경과 결합하여 특정 인구 집단 내에서도 위기가 차별적으로 집약되는 지점을 포착해 낸다. 이는 기후 위험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 조건과 외부 환경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위험의 개별화된 집중임을 시사한다.

둘째, 제도적 지위와 노동 환경의 교차적 소외다. 이는 법적 체류 자격이나 고용 형태와 같은 제도적 범주가 열악한 작업 현장의 물리적 위험과 결합하여 기후 재난에 대한 방어 기제를 무력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정보 접근성에서의 소외와 법적 불안정성은 기후 재난 정보로부터 해당 주체를 격리하는 기제로 작동하며 이는 국적이나 직종이라는 단일 범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생존권 위협 구조를 형성한다.

상기한 분석적 시각은 서구 중심의 인종·계급 담론을 넘어 각 사회가 지닌 고유한 구조적 모순이 기후위기와 접합될 때 발생하는 파열음을 규명하는 데 유용하다. 본고는 상호교차성 이론을 통해 압축적 근대화가 고착화시킨 권력 구조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문법이 기후위기라는 외부 충격과 충돌하며 발생하는 사회 구조적 파열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불평등 체계를 규명함으로써 단순한 탄소 감축 담론을 넘어선 독자적인 기후정의의 지평을 확장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나아가 상호교차성 관점은 재난의 하중이 특정 집단의 삶에 편향적으로 누적되는 경로를 정밀하게 추적하여 기후 불평등의 실체를 가시화하는 결정적인 분석 기제를 제공한다. 이 관점에서 재정의된 기후정의는 사후적 보상이나 시혜적 복지의 차원을 탈피하여 기후위기를 매개로 공고화된 다중적 차별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정책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체제 전환적 대안을 도출하고 불평등의 고착화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근거로 기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기존 위험사회론의 논리를 재검토함으로써 상호교차성 이론이 기후위기 분석에 제공하는 새로운 시사점을 탐색한다.

IV. 위험사회의 도래와 ‘위험의 평준화’ 명제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이 통제 불가능한 재난을 양산하는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로 규정하였다(Beck, 1986). 근대 이전의 위험이 결핍과 빈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외생적 자연재해였다면 현대의 위험은 고도 산업화와 생태계 파괴가 축적된 체제 내부의 산물인 ‘제조된 불확실성(induzierte Unsicherheit)’을 특징으로 한다. 벡에 따르면 현대의 제도 권력은 위험의 근원적 해결보다 문명의 부작용을 통계적 수치로 치환하여 정당화하는 ‘조직화된 무책임(organisierte Irresponsibilität)’의 보호막 뒤에 숨어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의 심화는 인류를 과거의 ‘결핍의 공동체’에서 상시적 위협에 노출된 ‘불안의 공동체’로 이행시켰다(Beck, 1986: 25-26).

특히 벡은 기후위기나 방사능 유출과 같은 생태적 위협이 국경과 계층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파급된다는 점에서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혹은 “위험은 평준화 효과(Gleichheitseffekt)를 갖는다”고 선언하였다(Beck, 1986: 48). 부유층 역시 오염된 대기와 먹거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위협의 가속화 앞에서는 공고했던 계급적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이다(Beck, 1986: 49-50). 하지만 이러한 ‘위험의 보편성’ 담론은 현실의 중첩된 격차를 간과하게 만들며 상호교차성 관점에서 볼 때 실제 불평등 구조를 포착하지 못하는 분석적 부정합성을 드러낸다. 기후위기가 생산하는 진정한 부정의(不正義)는 위험 노출의 보편성이 아니라 노출 이후 전개되는 ‘피해의 집약성’과 ‘복원력의 불균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상으로서의 기후 재난은 발생의 지리적 측면에서 ‘민주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고성능 정화 설비를 갖춘 실내 공간이나 즉각적인 의료 서비스, 쾌적한 주거 환경과 같은 ‘적응 자원’은 결코 민주적으로 배분되지 않는다. 실제로 서울 내 녹지 비율이 낮은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지표면 온도가 고소득층 거주지보다 현저히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위험이 평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이 결여된 특정 지점으로 굴절되어 고이는 ‘위험의 수직적 낙하’를 방증한다(KMA, 2024). 즉, 기후위기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도래하는 재난의 외양을 띠지만 실상 개별 주체가 점유한 사회적 위치의 교차점에 따라 특정 집단에만 그 위협이 선별적으로 가중되는 ‘깔때기 효과(funnel effect)’를 유발한다.

이러한 비판적 성찰을 종합할 때 벡의 이론은 문명사적 경각심을 일깨웠으나 ‘위험의 보편성’에 매몰되어 사회적 약자에게 중첩되는 ‘교차적 취약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특히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주거와 노동의 불평등이 고착화된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기후 위험은 벡의 예견과 달리 지극히 차별적이고 위계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만큼 기후 불평등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벡의 평준화 명제를 넘어 개별 주체의 다층적 좌표가 재난의 타격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증폭시키는지를 포착하는 상호교차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V. 기후위기 담론과 탄소 자본주의의 모순

현대사회의 위험이 계급과 국경을 넘어 평준화된다는 낙관적 전망이 기후 재난의 현장에서 여지없이 부정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그 위험을 ‘위기’로 명명하게 만든 구조적 동인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중립적 표현은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경고적 함의를 갖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선택의 변화를 넘어 현 상황을 인류 문명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자 자본주의적 성장 지상주의가 초래한 구조적 파국으로 규정하려는 인식의 전환을 상징한다(Yoon, 2022).

기존의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가 현상을 정태적으로 기술하며 기술 관료적 해결책에 머물게 하였다면 ‘기후위기’와 ‘지구가열(global heating)’은 문제의 시급성과 함께 탄소 의존적 근대성이 낳은 불평등의 심화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특히 2024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과 학계를 중심으로 ‘기후위기’가 표준적 용어로 정착되었는데 이는 기후 현상을 넘어 사회·경제 전반의 근본적 재편을 요구하는 ‘총체적 비상사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의 발로로 볼 수 있다(Lim et al., 2021).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국은 2022년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을 통해 기후위기를 법적 실체로 명문화하였다. 동법 제2조는 ‘기후변화’를 기후체계의 정의하는 한편, ‘기후위기’를 그 변동이 초래하는 생태계 붕괴와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상태로 명확히 구분하여 규정한다(MOLEG, 2024). 이는 국가 차원에서 기후 문제를 단순한 환경 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체제의 존립을 결정짓는 통치적 과제로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비판적 쟁점은 기후정의가 기존 자본주의 성장 패러다임과 필연적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정의된 ‘기후위기’는 무한 성장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의 ‘추출적(extractivist)’ 속성과 배치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자원 소비와 탄소 배출을 동력으로 삼는데 이를 억제하려는 기후 정책은 필연적으로 산업계의 저항과 경제적 불평등의 재편을 수반한다. 즉, 법적 정의의 기틀은 마련되었으나 그 이행 과정에서 노정되는 산업계의 로비와 예산 우선순위에서의 배제 등 정치·경제적 장애요인은 기후위기 대응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선 근본적인 체제 전환의 문제임을 웅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법적 정의의 완비가 현장의 다중격차 해소라는 실질적 성과로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행법 제도가 위기의 총체성을 명문화하면서도 정작 대응 방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기술 중심적·성장 친화적 관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의 핵심 과제는 선언적 수준의 법적 정의를 넘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는 교차적 기후정의를 제도적 실체로 어떻게 내면화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VI.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구조적 층위

오늘날 불평등에 관한 사회과학적 담론은 개별 국민국가 내부의 계층 분화를 넘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고착화시킨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의 맥락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정 국가 내의 소득 및 자산 격차는 더 이상 단일한 국내 복지 시스템의 오작동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전 지구적 자본과 기술의 흐름 속에서 재편되는 복합적 구조로 인식된다(Rodrik, 2011: 184-187).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을 개별 주체의 삶의 궤적과 매개하는 핵심 기제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생활기회(Lebenschancen)’ 개념이다. 베버에 따르면 계급적 위치는 단순한 재화의 소비 수준을 넘어 개인이 시장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자원 공급과 생활상의 지위, 나아가 개인의 운명까지 결정짓는 ‘확률적 가능성’의 총체를 의미한다(Weber, 1922, 1972: 531). 이러한 통찰은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권과 주거권, 그리고 주체적 미래 기획이라는 실존적 기회의 불평등을 규명하는 중요한 분석 준거가 된다. 즉, 기후위기는 생활기회의 불균등을 투명하게 가시화하는 촉매인 동시에 기존의 다중격차를 구조적으로 봉인하고 영속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1.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다층적 구조

기후위기는 울리히 벡이 예견한 위험사회의 결정적 징후이자 문명사적 전환점이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전개 양상은 벡의 ‘위험 평준화’ 명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물리적 위험의 파괴력은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부에 고착된 불평등한 계층 구조와 개별 주체의 교차적 정체성을 투과하며 극도로 비대칭적인 방식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첫째, 자본주의 성장 패러다임과 위험의 전가다. 기후위기는 무한 성장을 동력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추출적 속성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을 사유화하고 탄소 배출이나 폐기물과 같은 환경적 비용을 사회적으로 외주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자산이 적고 정치적 목소리가 작은 계층과 국가에 집중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특정 집단의 생존권을 담보로 성장을 지속하는 체제적 배제의 성격을 띤다.

둘째, 생활기회의 근본적 박탈이다. 기후 재난은 베버가 말한 생활기회, 즉, ‘적절한 보건과 안전을 누릴 권리’를 차별적으로 배분한다. 2024년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폭염이나 홍수 시 적절한 대피 공간이나 냉·난방 시설을 갖추지 못한 비율이 고소득 가구보다 3.8배 높았다(KOSTAT, 2024). 이는 취약계층이 물리적 피해를 넘어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시민적 권리 자체를 박탈 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교차적 취약성의 중첩이다. 위기의 책임과 피해는 계층, 국가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연령, 장애 여부 등 다층적인 사회적 위치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증폭된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비정규직 야외 노동자나 노후 주거지 거주 고령층은 경제적 빈곤과 환경적 노출,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다중격차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다(Habara & Jeong, 2021).

결국 기후위기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이 층층이 얽혀 나타나는 지구 불평등의 결정체다. 이는 기술적 보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체제의 문제이며 기후정의가 왜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 글로벌 수준의 기후 불평등

전지구적 층위에서 기후 불평등은 탄소 배출의 ‘책임’과 재난 노출이라는 ‘피해’가 역방향으로 교차하는 ‘생태적 부채(ecological debt)’의 성격을 띤다. 이는 자본주의 성장 패러다임이 내포한 핵심적 모순의 발현이다. 고소득 국가는 무한 성장을 위해 저소득 국가의 자원을 저렴하게 추출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와 폐기물이라는 부적(negative) 가치를 지구적 공유지나 남반구 국가들로 외부화해 왔다.

인류가 소비하는 자원량을 생태계 재생산 용량으로 환산한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지표는 현 글로벌 체제의 추출적 본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북반구 고소득 국가들의 1인당 생태발자국은 지속 가능한 기준치인 1.8헥타르를 최대 5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Global Footprint Network, 2024). 반면, 남반구 국가들은 자국 자원을 수출하는 경제적 의존 구조 속에 머물면서도 기후 재난으로 야기되는 환경적·사회적 비용을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하는 이중적 불균형 구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물리적 타격의 지리적 편중은 베버적 의미의 생활기회가 글로벌 차원에서 어떻게 차등적으로 제약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는지를 실증한다. 일례로 2024년 말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강타한 기록적 가뭄으로 약 420만 명의 기후 실향민이 발생했으며 이들 대다수가 여성과 아동이라는 사실은 교차적 취약성 기제가 개별 국가를 넘어 전 지구적 수준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UN OCHA, 2024). 나아가 2022년 대홍수 이후 막대한 재건 비용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했던 파키스탄의 사례는 기후 재난이 한 국가의 경제적 주권을 근본적으로 와해시키는 전형적인 경로를 보여준다.

이러한 국가적 존립의 위기 기저에는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과 그 피해 사이의 심각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미국, EU, 중국 등 상위 10개국이 역사적 누적 배출량의 3분의 2 이상을 점유하는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체의 비중은 3% 미만에 불과하다. 2025년 통계에 따르면 기후 재난 사망자의 약 50%가 전 세계 배출량의 0.1%조차 책임지지 않는 빈국들에서 발생하였다(EEA, 2025). 이러한 현실은 기후위기가 인류를 생태적 기여도와 피해 노출도에 따라 위계화하는 이른바 ‘기후 아파트헤이트(climate apartheid)’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고위도 부국들이 기온 상승에 따른 농업 가용 기간 연장 등의 반사이익을 향유하는 동안 인도나 나이지리아와 같은 저위도 빈국은 1960년대 이후 기후 요인으로 인해 GDP가 약 25~30% 하락하는 손실을 입었다(Diffenbaugh & Burke, 2019: 9811). 탄소 배출 책임이 미미한 국가들이 그 비용을 가장 가혹하게 지불하는 이 역설적 구조는 글로벌 다중격차가 어떻게 생태적 신분제로 고착화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부정의를 교정하기 위해 파리협정 이후 논의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이 2024년 본격 가동되었으나 출연된 재원은 개도국 연간 필요액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UNFCCC, 2024). 이 같은 재원 확보의 실패는 부국 내 산업계의 로비와 자국 우선주의가 글로벌 기후정의의 실질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투영하며 부국들의 생태적 부채 이행이 여전히 선언적 구호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방증한다(Heinrich Böll Stiftung, 2024).

종합하면 글로벌 차원의 기후 불평등은 결코 우연한 지리적 운명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축적 과정이 필연적으로 산출한 구조적 결과물이다. 고위도 부국들이 향유하는 번영은 소위 ‘책임의 외주화’를 통해 남반구에 막대한 생태적 부채를 전가한 산물이며 이는 저개발 국가들의 생활기회를 근본적으로 잠식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단편적인 기술적 보완을 넘어 생태적 부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배상과 책무를 명문화하는 ‘전환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시급하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이 단순한 환경 관리의 범주를 탈피하여 글로벌 차원의 자원 재분배와 체제 전환의 핵심 과제로 다루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3. 일국(一國) 내 기후 불평등

기후위기가 양산하는 불평등은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이제 개별 국가 내부의 공고한 계층 구조 속에서 더욱 세밀하게 작동하고 있다. 최근 사회과학적 실증 연구들은 기후 불평등을 결정짓는 중심축이 과거의 ‘국가 간 격차’에서 점차 ‘국가 내 계층 간 격차’로 이동하고 있음을 경고한다(World Inequality Lab, 2023). 이는 부국과 빈국을 막론하고 특정 사회 내 상위 소득층이 탄소 배출에 있어 막중한 책임이 있는 데 비해 그로 인한 생태적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책임과 비용의 비대칭성이 전 지구적 현상으로 구조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기후불평등보고서 2023』은 이러한 구조적 변동을 명확한 수치로 입증한다. 1990년 세계 탄소 불평등의 62%를 점유했던 ‘국가 간 격차’는 2019년 36%로 감소한 데 비해 ‘국가 내 계층 간 불평등’은 64%까지 급증하였다(World Inequality Lab, 2023: 135). 구체적으로 미국의 상위 10% 소득층은 하위 50%보다 약 7배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중국과 인도에서는 그 격차가 각각 13배와 10배에 달한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상위 10%의 배출량이 하위 50%의 약 100배에 육박하는 이러한 기형적 구조는 기후위기가 특정 계층의 ‘과잉 소비’와 결탁한 구조적 폭력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방증한다(<표 1> 참조).

표 1. 2019년 주요 국가의 소득 계층별 연간 1인간 이산화탄소 배출량
상위 10% 중위 40% 하위 50%
미국 70.3톤 22.1톤 10.5톤
중국 38톤 7.1톤 2.8톤
인도 9,6톤 1.9톤 0.9톤

자료: UNICEF,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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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출의 불평등은 곧 적응과 생존의 불평등으로 직결된다. 사회적 자본, 건강 상태, 법적 지위, 주거 환경이 열악한 저소득 계층은 기후 재난의 물리적 위협에 상시 노출될 뿐만 아니라 피해 복구 과정에서도 제도적으로 소외된다. 유럽환경청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환경적 요인에 의한 사망률은 소득 하위 계층에서 상위 계층보다 약 5배 높게 나타났다(EEA et al., 2020: 42-45). 이는 사회경제적 취약성이 기후위기와 결합할 때 어떻게 실존적 생존 위기로 치환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에너지 빈곤층의 냉방권 박탈이나 녹지 부족으로 인한 ‘도시 열섬’ 현상은 특정 계층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물리적 격차로 고착화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차원의 보편적 추세는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궤적으로 관찰된다. 한국의 경우, 단순한 소득 격차를 넘어 주거권의 취약성, 고용 형태의 불안정성, 젠더 및 생애주기적 고립이 기후위기와 중첩되는 지점에서 위험이 집약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 사회 특유의 인구 구조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다중격차는 일국 내 기후 불평등이 개별 주체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위험을 차별적으로 배분하는 구조적 재난임을 실증한다.

요컨대, 일국 내 기후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 빈곤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모순이 기후라는 외부 충격과 결합하여 발현되는 위험의 위계화 과정이다. 따라서 향후의 기후정의는 단순한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기술적 관리를 넘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전환적 기획’으로서 국가의 제도적 내면으로 깊숙이 통합되어야 한다.

VII. 기후위기에 따른 중첩된 불평등의 발현 기제

다중격차는 사회·경제·환경 등 다차원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구조적 중첩을 의미하며 기후위기는 이러한 기존의 균열을 필연적으로 가속하는 ‘위험의 증폭기’로 작용한다. 이는 기후 재난이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주체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원 접근성에 따라 차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층화된 경로를 투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와 같은 압축적 성장 모델에서 소외된 계층에게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적 변수를 넘어 생존권의 박탈이라는 실존적 위협으로 발현된다.

1. 자본 논리에 의한 생활기회와 자원 접근의 비대칭성

기후위기의 파급효과는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막스 베버가 제시한 생활기회가 자본 축적의 논리에 의해 차별적으로 배분되는 구조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평등의 이면에는 탄소 배출의 책임과 실제 입는 피해 사이의 극명한 역전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부유층의 과잉 소비와 투자가 초래한 환경적 비용이 기후 재난에 가장 취약한 빈곤층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견되는 것이다(Oxfam, 2024; Kartha et al., 2023).

이러한 소득 불평등은 단순한 소비의 격차를 넘어 녹지 공간이나 냉방 인프라와 같은 핵심 생존 자산이 고소득 거주지에만 선별적으로 편중되는 ‘에너지·환경 인클로저(enclosure)’ 현상으로 이어진다(KMA, 2024). 이는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 자원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유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기후 정책의 혜택은 기술 혁신과 인센티브를 선점할 수 있는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반면, 에너지 빈곤층은 정책적 역진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의 부담만을 떠안으며 기존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적 기제 속에 놓이게 된다.

2. 사회적 차별 기제와 기후 위험의 결합 방식

기후위기는 연령, 젠더, 이주 배경 등 사회인구학적 정체성과 결합하여 기존의 차별 구조를 강화하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생물학적 취약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 구조와 제도적 배제가 기후 재난과 맞닿는 교차적 지점에서 위험이 증폭된 결과다. 예컨대 가부장적 가구 구조 내에서 여성은 재난 시 돌봄 대상자를 보호하느라 대피 시기를 놓치거나 재난 이후 가중된 무급 노동으로 경제적 자립도가 약화되는 비대칭성을 경험한다(KWDI, 2024). 또한 이주민이나 미등록 체류자와 같은 법적 소외 계층은 언어 장벽과 단속의 두려움으로 인해 공적 재난 정보와 대피 시설로부터 격리되는데(MOEL, 2024; HRCK, 2025) 이는 기후위기가 노동 유연화와 이주민 차별 구조를 타고 특정 집단의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세대 간 불평등과 시간적 불공정성의 심화

기후위기는 공간적 차원의 불평등을 넘어 현세대가 미래 세대의 생태적 자원을 사전에 독점하는 ‘시간적 외부화’의 성격을 띤다. 이는 원인 제공 시점과 피해 발현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기후위기 특유의 비동기성이 자본주의의 단기적 이윤 극대화 논리와 결합한 결과다. 미래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좁아진 ‘생태적 기회의 창’ 내에서 생활양식의 강제적 축소를 감내해야 하는데 이는 명백한 세대적 약탈이자 기후 불평등의 극단적 발현이다(UNICEF, 2021; Carbon Brief, 2019). 최근 사법적 판단을 통해 이러한 세대 간 배분 정의의 훼손이 공론화되고 있으나(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2024), 투표권이 없는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할 정치적 거버넌스의 부재는 여전히 대의 민주주의의 시공간적 한계로 남아 있다.

4. 건강 및 정보 접근성의 격차와 생존권의 차별화

기후위기는 의료 자산과 정보 자본의 보유 여부에 따라 신체적 안녕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을 감당할 심리적 복원력까지 계층에 따라 차별적으로 규정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기본적인 생존 자원인 냉방권의 차등적 배분으로 이어져 신체적 타격의 정도를 결정하며(KDCA, 2025), 주거 및 고용이 불안정한 빈곤층에게는 기후변화에 대한 만성적인 불안과 상실감이라는 심리적 고통을 더욱 심각하게 전이시킨다(Clayton et al., 2020).

나아가 이러한 위협은 재난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하는 역량의 차이와 결합하여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한다. 고령층 및 정보 소외 계층에서 나타나는 재난 경보 숙지율의 저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가 특정 계층에게만 선택적으로 도달하거나 이해되는 정보의 비대칭적 소외를 야기한다(KISDI, 2024). 이는 결국 스마트 기기 활용 능력과 같은 기술적 숙련도의 차이가 재난 시 즉각적인 대응 역량의 격차로 직결되어 인지적 차원의 정보 접근성 차이가 곧 개별 주체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결정적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실증한다(NIA, 2024).

VIII. 한국 사회의 기후 불평등과 다중격차의 구조화

한국은 현재 지구 평균을 상회하는 가파른 기온 상승을 기록하며 기후위기의 ‘가속화 구간’에 진입하였다. 2024년 기상청 보고에 따르면 지난 10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 상승폭은 1.7℃로 세계 평균(1.15℃)을 크게 상회한다(KMA, 2024). 이러한 급격한 온난화는 단순히 기상학적 수치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저성장 구조 및 다층적 불평등 체계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생태적 위계’를 생산하고 있다.

1. 탄소 의존적 성장 체제와 위험의 비대칭적 외주화

한국의 산업 구조는 여전히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GDP 대비 탄소 배출량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머물러 있다(MOTIE, 2025). 최근 글로벌 환경 규제의 강화는 이러한 ‘압축적 고탄소 성장’의 유산을 국가 경제의 구조적 위험으로 부각시켰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이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취약 계층에게 이른바 ‘녹색 인플레이션(greenflation)’의 형태로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초래한 환경적 비용을 사회적 약자의 실질 임금 하락과 생계비 압박으로 상쇄하는 비용의 역진적 배분 구조를 노정한다(BOK, 2025).

이러한 거시적 체제 불균형은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주거 및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매개로 작동하며 위험의 비대칭적 외주화를 실존적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는 핵심 동인이 된다.

첫째, 주거 공간의 위계화와 생태적 고립 기제는 자본주의적 지대 구조가 빈곤층을 환경적 위험이 집약된 한계 지점으로 몰아넣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기준 약 15만 가구가 여전히 반지하라는 열악한 주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장 논리에 의해 저소득층이 선택할 수 있는 가용 주거지가 상습 침수나 환기 불량 같은 생태적 취약성이 고착된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음을 방증한다(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2025). 이러한 물리적 조건의 차이는 특정 계층이 기후 재난의 충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생태적 격리 상태를 고착화한다. 즉, 지대 지불 능력이 낮은 주체들이 도심 내의 안전하고 쾌적한 인프라로부터 소외된 채 기후 위험이 집중된 공간에 실존적으로 고립되는 구조적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방어 기제의 해체는 이러한 불평등의 위계를 노동자의 생존권 영역으로까지 확장한다. 노동 시장에서도 막스 베버가 통찰한 생활기회는 ‘냉방권’과 ‘휴식권’의 계급적 박탈이라는 형태로 차별화된다. 건설 및 물류 현장의 노동자들이 극한의 폭염 속에서도 야외 노동을 강행하며 온열질환의 위협에 노출되는 현실은 생산 효율성을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산업 구조가 낳은 필연적 귀결이다(KDCA, 2025). 이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노동자의 신체적 안전망이 기후 위험 앞에서 무력하게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경제적 불평등이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조건마저 위계화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요컨대, 한국의 기후위기는 공고화된 주거 및 노동의 불평등 궤적을 따라 흐르며 사회적 보호망이 가장 얇은 지점에 위험의 하중을 집약시키는 ‘위험의 깔때기’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기후위기는 단순한 자연재해의 영역을 넘어 한국 사회의 기존 불평등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재생산하고 심화시키는 구조적 기제라 할 수 있다.

2. 한국적 가부장제와 이주민 차별 구조가 낳은 교차적 취약성

한국 사회에서 기후 위협은 개인의 다층적인 사회적 정체성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더욱 가혹하게 작동한다. 이는 기후 재난이라는 물리적 충격이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차별적 사회 구조를 투과하며 취약한 지점에 피해를 집약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가부장적 돌봄 구조,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고립, 이주민에 대한 제도적 배제라는 한국적 맥락은 기후 위험에 대한 취약성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핵심 기제로 기능한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가 처한 중첩적 소외는 한국의 추출적 농업 생산 체계와 제도적 인종주의가 기후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촌 지역 이주 여성 노동자의 약 81.3%가 샌드위치 패널이나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등 기후 재난에 무방비한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고 있다(NHRCK, 2024). 이들의 위기는 단순한 주거 부적합을 넘어 한국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법적 구속성과 결합하여 심화된다. 살인적인 폭염이나 집중호우 속에서도 위험한 노동 현장을 이탈할 권리가 사실상 박탈된 구조는 기후위기가 이주민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통제를 매개로 그들의 생명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의 독특한 인구 구조와 가부장적 잔재는 노년층의 기후 위험을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 ‘관계의 빈곤’으로 전이시킨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기후위기 시대의 필수 생존 자산인 냉·난방권 박탈로 직결된다(KOSTAT, 2024). 특히 2025년 온열질환 사망자의 60.2%가 고령층이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전통적 가족 공동체의 해체 이후 안전망에서 이탈한 독거 가구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MOHW, 2025). 이들에게 폭염은 단순한 기온 상승이 아니라 단절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홀로 감내해야 하는 실존적 공포이자 우리 사회가 노출한 ‘불안의 공동체’의 단면을 상징한다.

젠더 구조 역시 기후 취약성을 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작용한다. 전통적인 성별 분업 구조 하에서 돌봄 노동을 전담하는 여성은 재난 발생 시 가구 내 약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안전 확보를 유예당하며 재난 이후 발생하는 무급 돌봄 노동의 하중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복구의 비대칭성’에 처하게 된다(KWDI, 2024). 동시에 아동은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 체계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세대의 탄소 집약적 소비로 인해 미래의 생활기회를 선취 당하는 ‘세대 간 불공정성’의 상징적 피해자로 부상하고 있다.

3.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 간 기후 적응력의 격차

한국의 기후위기는 지리적 취약성과 사회경제적 위계가 결합한 ‘공간적 부정의(spatial injustice)’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는 기후 재난의 물리적 타격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이 비수도권 농촌 지역으로 전가되는 구조적 모순을 내포한다. 이러한 공간적 위계는 한반도의 기후변화가 지역별로 상이한 파괴력을 지닌다는 점과 그 대응 역량인 ‘적응 자본’이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해수면 상승과 기상 이변에 따른 물리적 위험의 차별성은 지역 간 자산 격차를 고착화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2024년 국립해양조사원 자료에 따르면 제주 및 남해안의 해수면 상승 속도는 전 지구 평균을 상회하며 가속화되고 있다(KHOA, 2024). 특히 고배출 시나리오 적용 시 2100년까지 최대 1.1m의 해수면 상승이 예측되는데 이 과정에서 부산, 인천, 목포 등 저지대 해안 도시는 상시 침수 구역으로 편입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NIMS, 2024). 이러한 환경적 변화는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 하락과 기반 시설 파괴라는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며 상대적으로 적응 자본이 부족한 지방 중소도시의 복원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지리적 자산 잠식’의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한국의 에너지 구조는 ‘수도권 소비 - 지방 생산’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적 수직 계열화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은 국가 전체 전력 소비의 약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나 발전소와 송전탑, 핵폐기물 처리장 등 생산에 수반되는 환경적·신체적 위험은 영남, 호남, 충청 등 비수도권 농촌 지역이 전담하는 실정이다(MOTIE, 2025).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명분으로 지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내부적 에너지 식민주의’의 발상과 궤를 같이 한다. 2025년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가 농촌 마을에 집중되며 발생하는 주민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 중심의 정치·경제적 의사결정권 편중이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저해하는 핵심적인 구조적 결함임을 실증한다. 즉, 지역 간 위계는 한국 기후 불평등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토대다. 따라서 수도권의 풍요를 위해 지방의 생태적 안전을 도구화하는 현 체제에 대한 성찰 없이 정책이 지속되는 경우, 이는 공간적 소외를 심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위계 구조를 고착화할 위험이 크다.

4. 정체성 중첩에 따른 기후 취약성의 구조화

한국 사회의 기후 불평등은 앞서 살펴본 주거, 노동, 젠더, 공간의 위계가 개별 주체의 삶 속에서 단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특정 지점에서 상호 중첩되며 위협의 총량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킨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단순히 개별 취약 요인의 산술적 합산을 넘어 서로 다른 정체성 범주가 결합할 때 발생하는 상호작용 효과에 주목해야 함을 시사한다. 즉, 기후위기라는 외부적 충격은 한국 사회 고유의 구조적 모순을 투과하며 다층적 소외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험의 하중을 집중시키는 ‘깔때기 효과’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저소득층이면서 고령인 가구, 혹은 여기에 여성과 독거라는 조건이 추가될 경우, 취약성은 선형적 범위를 벗어나 폭발한다. 단일 취약 계층이 겪는 주거 환경 부실이나 비용 부담은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및 신체적 방어력 저하와 결합하면서 실존적 생존을 위협하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가부장적 잔재와 고령화가 낳은 관계의 빈곤이 기후 재난 시 정보 접근성과 구호 자산으로부터 주체를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사례는 제도적 인종주의와 불안정한 노동 지위, 그리고 공간적 소외가 결합할 때 발생하는 극단적인 취약성을 상징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불안정성과 농촌 지역 가설 건축물이라는 열악한 주거 환경, 그리고 고용허가제에 의한 이동의 자유 제한은 기후 위험 앞에서 이들의 신체적 안전망을 사실상 해체한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단순한 기온 상승을 넘어 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채 다중적 위계 구조 속에 고립되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한국 사회의 기후 취약성은 개별 주체가 점유한 사회적 좌표의 중첩도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표 2>는 소외가 다중적으로 결합할 때 취약성이 얼마나 급격히 상승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표 2. 정체성 중첩에 따른 기후 취약성 지수 (2024 추정치)
중첩된 정체성 범주 주요 위협 요인 취약성 지수 (추정치)1)
단일 취약(예: 저소득층) 주거 환경 부실, 냉방비 부담 1.0(기준)
이중 중첩(저소득+고령) 신체적 방어력 저하, 만성질환 2.5
다중 교차(저소득+여성+독거+노인) 사회적 고립, 정보 단절, 돌봄 부재 5.8
다중 교차(이주+비정규직+농촌거주) 법적 보호 배제, 언어 장벽, 주거 부정의 6.2

1) 정체성 범주 간 결합 시 발생하는 상호작용 효과에 가중치를 부여한 교차적 취약성 모델에 기반한 2024년 추정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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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기후정의를 위한 전환적 기획과 실천적 과제

기후위기는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고통을 강요하는 ‘민주적 재난’이 아니다. 기후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계층이나 지리적 격차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과 구조적 위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복합적으로 증폭된다. 킴벌리 크렌쇼가 제안한 교차성 이론은 성별, 계급, 인종, 장애 등의 범주가 독립적으로 작동하기보다 상호 결합하여 독특한 형태의 억압을 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Crenshaw, 1989). 기후위기의 맥락에서 이는 우리를 단순한 취약성의 가산성(additivity)이 아닌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에 주목하게 한다. 즉, 불평등은 산술적인 합(1+1=2)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곱(1×1=∞)으로 작동하며 실존적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적 힘으로 변모한다. 따라서 이러한 역동성을 정책적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선형적 분석 모델을 탈피하여 다중적 소외가 중첩되는 지점을 정밀하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론적·행정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1. 한국 사회의 교차적 취약성 지표 구축

실천적 과제의 첫걸음은 기존의 단편적인 복지 수혜자 분류를 넘어 다층적 위험을 포착할 수 있는 교차적 취약성 지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인구학적 집단을 선별하는 수준을 넘어 위험의 임계점이 폭발하는 지점을 선제적으로 식별하는 정밀 행정의 토대가 된다.

첫째, 노년층 대응 체계는 단순 연령 기준을 탈피하여 가부장적 자산 형성 과정에서의 소외와 돌봄 네트워크의 결핍을 통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빈곤층 여성 노인의 취약성이 단일 빈곤층 대비 5.8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평생의 무급 가사 노동으로 인한 연금 배제와 독거 상태가 기후 위험 앞에서 ‘구조적 방임’으로 직결됨을 의미한다(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2025). 따라서 새로운 지표는 가구 구성 형태와 가용 자산, 사회적 관계망의 밀도를 변수로 포함하여 고립된 주체들을 실질적 보호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

둘째,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위한 제도적 안전망은 법적 지위와 노동 환경의 연동성을 지표화해야 한다. 농촌 지역 가설 건축물 거주와 고용허가제에 의한 사업장 변경 제한은 기후 위험 상황에서 이들의 ‘작업 중지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NHRCK, 2025). 따라서 기후 취약성 지표는 주거의 물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고용 형태에 따른 위험 회피권의 실질적 행사 가능 여부를 핵심 지표로 관리해야 한다. 이는 기후 정책이 노동권 보호라는 제도적 뒷받침과 결합할 때 비로소 특정 집단의 생존권을 유예하지 않는 ‘보편적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장애인 재난 대응 체계는 설계 단계부터 고착화된 ‘표준 시민 편향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비장애인의 신체 능력을 전제로 한 현행 매뉴얼은 정보 접근성과 이동권이 제약된 주체들을 구조 체계 밖으로 밀어내는 한계를 지닌다(NHRCK, 2024). 지표 체계는 디지털 기기 활용도나 인지적 접근성 등 개별 주체의 상이한 적응 역량을 변수화하여 재난 정보 전달과 대피 시스템이 다중적 소외 양상을 입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결국 교차적 취약성 지표의 구축은 단순한 사후 보상을 넘어 다중격차의 피해를 예방적으로 관리하는 ‘인본주의적 기후 거버넌스’로의 이행을 견인한다. 이러한 정교한 지표 체계야말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정책의 핵심으로 소환하고 기술 관료주의적 처방을 넘어선 실질적인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동력이 될 것이다.

2. 기후운동의 계급적 한계와 정치·경제적 장애요인 극복

기후정의 실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내부 장애요인은 운동 내부에 잠복한 계급적·정체성적 편향성이다. 현재 한국의 기후 담론은 주로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과 도심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의제 설정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등 실질적 고위험군들의 목소리를 부차화하거나 조직적으로 소거하는 경향을 보인다(Kim, 2024). 이러한 배타적 구조는 기후위기를 인류 보편의 위기라는 추상적 구호로 포장하면서도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희생이 누구에게 역진적으로 전가되는지에 대한 계급적 인과성을 간과한다.

이러한 ‘운동의 중산층화’는 과거 미국 내 환경 정의 운동이 주류 백인 환경단체의 ‘보전 중심 의제’에 맞서 유색인종 공동체의 생존권을 주장했던 역사적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Shrader-Frechette, 2002). 기후위기를 담론적 차원의 미래 세대 생존권으로만 프레임화하는 경향은 당장 폭염과 침수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취약 계층의 요구를 운동의 주변부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환경 보호라는 명분이 노동 현장과 주거 밀착형 공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고통을 가리는 도덕적 차폐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이러한 편향성은 기후 대응을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엘리트적 기술관료주의로 경도되게 만든다. 이는 시장 친화적 해법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위기의 근원인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전환이나 부의 재분배 문제에는 침묵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기후운동이 실질적인 변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탈정치화된 담론에서 벗어나 다중격차를 감내하는 소외 계층을 시혜적 대상을 넘어선 주체적인 ‘정치적 동료’로 호명해야 한다. 이는 파편화된 요구를 단순히 합산하는 수준을 넘어 서로 다른 억압의 층위가 기후라는 촉매제를 통해 어떻게 상호 연결되는지를 규명하는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3. 체제 전환을 위한 구조적 기획과 실천적 대안

본고는 기후위기가 노정한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체제 전환을 이루기 위한 전환적 기획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의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행정 영역에서 ‘교차성 기반 기후 취약성 지표’를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이다. 이는 본 연구에서 제안한 다차원적 취약성 분석 모델을 국가 통계 체계와 연계하여 고도화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소득이나 연령이라는 단일 범주에 의존하는 기존의 선별적 복지 체계를 넘어 주거 형태, 법적 지위, 사회적 관계망의 결핍 정도를 통합적으로 계량화해야 한다. 이러한 다층적 지표를 통해 위험이 중첩된 지점을 정밀하게 식별하고 예산 집행과 행정 지원의 우선순위를 이에 맞게 재설정함으로써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둘째, 공동체 기반의 상호부조형 안전망의 제도화다. 기술 중심의 공적 구호 체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지역 기반의 돌봄 연대는 위기 상황의 핵심적 복원력으로 작동한다. 이를 단순히 개별적 선의나 자원봉사의 영역에 두지 않고 장애인과 독거 노인을 위한 ‘마을 단위 기후 돌봄 센터’를 상시 운영하는 등 지역 중심의 밀착형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기후 재난 시 발생하는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고 물리적 방어력을 상실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관계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기제가 될 것이다.

셋째, 정치적 차원에서의 에너지 민주주의와 ‘인정의 정의’ 실현이다. 이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비수도권 지역 주민을 기후 정책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 의사결정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수도권 소비와 지방 생산의 지리적 불일치를 해소하는 과제는 생산 지역의 환경권과 결정권을 회복하는 에너지 주권의 확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민주적 거버넌스의 구축이야말로 기술 관료주의에 매몰된 현재의 기후 정치를 현장 중심의 정의로운 전환으로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상호교차성 이론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차별 구조가 기후라는 촉매를 통해 가시화된 구조적 모순임을 역설한다. 진정한 기후정의는 보편적 ‘표준 시민’을 전제로 한 안전 보장을 지양하고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위험의 하중을 다중격차로 감내하는 이들의 생존권을 최우선으로 수호하는 ‘사회 정의적 전환’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X. 결론

인류가 향유해 온 근대적 자유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탄소 의존적 경로를 따랐으며 그 번영의 이면에는 기후위기라는 자기 파괴적 역설이 내재해 있었다. 본고는 기후위기가 단순히 물리적 환경 변화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균열을 파고들어 다중격차를 심화시키는 구조적 재난이자 체제적 위기임을 확인하였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통찰한 ‘액체 근대’(Bauman, 2000)를 넘어 이제 인류는 기존의 공동체적 연대와 안전망이 기화되는 ‘탄소기체사회’로의 이행기에 직면해 있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기후 위험은 ‘위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울리히 벡의 고전적 명제를 무력화하며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복제하고 강화한다. 특히 본고가 견지한 상호교차성 관점은 다양한 사회적 범주가 결합하는 지점에서 기후 위험의 하중이 단순 합산의 범위를 넘어 비선형적으로 증폭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한국 사회의 기후 불평등은 경제적 빈곤이 고온 노출로 직결되는 선형적 상관관계를 넘어 다층적인 구조적 모순이 응축된 입체적 양상을 띤다. 주거 환경의 위계와 제도적 비가시성, 그리고 사회적 고립은 기후 재난이라는 외부 충격과 결합하여 ‘취약성의 상호작용성’을 극대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미래 세대의 탄소 예산을 선취하고 수도권의 풍요를 위해 지역의 생태적 안전을 도구화하는 ‘시공간적 외부화’가 산출한 구조적 불평등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본고는 실질적인 체제 변화를 견인하기 위한 전환적 로드맵의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분석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단일 범주에 매몰된 분절적 행정 체계로는 기후위기가 파생시키는 복합적 위협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다중격차를 입체적으로 식별하는 교차적 취약성 지표를 제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행정적 결단이 시급하다. 이는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실질적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론적 출발점이 될 것이다.

둘째, 정치적 주체성의 회복과 인정의 정의 실현이다. 기술 관료주의와 자본 중심의 대응에서 탈피하여 위험의 하중을 다중격차로 감내하는 당사자들이 정책 결정의 능동적 주체가 되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소외된 주체들의 목소리를 정책의 핵심에 세우는 과정은 기후 정책이 기술적 보완을 넘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필수 요건이다.

셋째, 기후 정의를 담보하는 사회적 계약의 재구성이다. 2024년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수용하여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실질적인 법적 권리로 명문화하는 제도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탄소 기반의 성장 지상주의를 종식하고, 돌봄과 재생을 가치 척도로 삼는 새로운 공동체적 합의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결론적으로,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문명적 단절의 공포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그간 은폐되어 온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를 직시하게 하는 전기가 된다. 생태적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성은 상호 불가분한 가치이며 향후의 대응은 단편적인 환경 관리의 범주를 탈피한 포용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중첩된 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은 단순한 재난 관리 차원을 넘어 보편적 권리 체계의 보장과 사회적 호혜성이 내재화된 공동체적 구조로의 이행을 실질적으로 담보해야 한다. 탄소 의존적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동력은 기술적 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교차적 연대와 제도적 결단에서 발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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