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사회적 불황(social depression). 이는 영국의 석학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가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소통이 고갈되어 외로움이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을 지칭한 용어이다. 그는 초연결 시대에 새로운 외로움의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함으로써 사회를 뿌리 채 뒤흔들고 있다고 경고하였다(노리나 허츠, 2021). 사람을 넘어서 사물, 데이터 등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에서 고립과 그로 인한 외로움은 개인의 건강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고 사회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홍순철, 2021). 사회적 고립은 개인이 맺는 관계의 문제가 타인을 향한 적대감을 쏟아내는 집단의 문제로 탈바꿈하여 사회적 위협이 되고 있다(김성아·노현주, 2024). 마약 중독, 은둔형 외톨이, 고독사, 신림동 칼부림 사건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각종 묻지마 범죄와 정치적 극단주의 문제는 이와 같은 사회적 불황 시대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불황은 경제적 불황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일 뿐더러, 이 둘이 맞물리면서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적극적 개입과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제 외로움은 특정 개인이 겪을 수 있는 일시적으로 불행한 상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로서, 세계 각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는 전염병처럼 확산되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 대해 국가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정치 사회적 차원의 대응을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청(Minister for Loneliness)’을 신설하고, ‘연결된 사회’에 초점을 맞추어 국민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일례로 고독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자 고독을 퇴치하는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한화 약 325억 원)를 책정하였다. 일본은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라는 인식 하에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설치하여 사회적 고립 방지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스코틀랜드 역시 2017년부터 외로움에 정책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시작해 2018년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공공, 민간, 비영리 부문이 협력 파트너로 참여하는 국가실행그룹(Narional Implementation Group)을 중심으로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신인철·최지원, 2019).
이처럼 사회적 고립이 정책적 핵심 의제로 본격화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건강과 수명, 그리고 사회, 경제, 정치에 몰고 오는 부정적인 파장에 대한 연구 결과가 상당히 많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세계화, 도시화, 불평등 심화, 권력 비대칭, 인구 구조의 변화, 이동성의 증가, 기술 발달로 인한 혼란, 긴축 정책,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초래한 변화에 의해 그 형태가 달라졌으며, 주변인들과의 연결뿐만 아니라, 정치, 노동, 소득 등에서 배제되는 느낌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다(허츠, 2021). 외로움은 사회적 고립의 원인과 결과로서 사회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있음을 분석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Malon, 2021; Schaap, 2021; Williams & Braun, 2019; Clair, Gordon and Reilly, 2021).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국내의 사회적 고립에 대한 연구는 주로 ‘고령 인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사실 노인들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은 매우 크다. 그러나 오늘날 외로움은 노인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 연령층을 아우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채정숙, 2022).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정한울, 2018; 김정인, 2023). 또한,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상대적 박탈감’이 지목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외로움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한국도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 대응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노인층을 위한 “고독사 예방 및 방지 시범 사업(보건복지부)”, 청년층을 위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서울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식적 대응은 사회적 고립을 관계의 확장, 일 경험 제공, 공동체 참여를 통해 회복해야 하는 것으로 진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의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나, 그럼에도 현재의 사회적 고립 연구가 사회의 다면적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측면이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현안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고립 연구의 동향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우선 한국 사회보다 먼저 사회적 고립에 관심을 가져왔던 해외의 사회적 고립의 연구 경향을 파악하였다. 그런 다음 지난 20년 간 “사회적 고립”을 키워드로 한 국내 연구를 토픽 모델링 방법을 통해 분석하여 주요 연구 주제를 탐색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적 고립 정책 수립에 있어 학문적 연구의 한계를 밝히고, 학술적 연구와 정책 개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II. 선행 연구
외로움(loneliness)과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모두 사회적 관계의 부족과 관련된다. 하지만 외로움은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서적 측면에 초점을 둔 개념인 반면,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 관계의 부족 자체를 의미하는 객관적인 상태를 말한다.1)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관계는 단순히 관계의 수(number of contacts)와 같은 양적 속성뿐만 아니라, 소속감(feeling of belonging), 관여도(engagement with others), 구성원의 질(quality of network members), 관계의 만족감(fulfilling relationships)과 같은 질적 속성을 포괄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복합적 속성을 고려하여 니컬슨(Nicholson, 2009)은 “개인이 사회적 소속감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며, 사회적 접촉이 적고, 만족스럽고 질 높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국내 연구에서 박미진(2010)은 사회적 고립을 물리적 고립(Waite & Hughes, 1999), 비공식 체계와의 교류 고립(Cornwell & Waite, 2009; Hawthorne, 2008), 사회참여의 고립(Benjamins, 2004)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으며, 김춘남 외(2018)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비자발적 요인에 의해 개인, 지역 사회 및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사회적 관계망이 줄어들고, 종국에는 외부와 고립된 상태에 이르러 고독감, 외로움 등 부정적 심리 상태를 경험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연구는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 관계의 양적, 질적 결핍 상태로 삶의 질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OECD 역시 사회적 고립이 웰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Better Life Index의 주요 항목으로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OECD의 「How’s Life? 2020 리포트」에 따르면 2016∼2018년 OECD 평균 ‘사회적 고립’ 즉,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받을 친구 또는 친척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명 중 1명(9.6%)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각 국가별로 살펴보면,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20.6%로 OECD 주요 37개국 중 1위를 차지한 그리스의 21.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사회적 고립도가 낮은 국가로는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사회적 고립도는 미국의 2배, 핀란드의 4배 이상 높게 나타난 것으로, 사회적 고립의 위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매년 통계청에서 <국민 삶의 질> 조사를 통해 사회적 고립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경우’ 또는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의 비율인 사회적 고립도는 2015년 30%, 2017년 28.1%, 2019년 27.7%, 2021년 34.1%, 2023년 33%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축소되고, 외부 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2021년에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2023년에도 33%로 나타나 아직 코로나19 이전의 추세로 회복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성별로는 남자의 사회적 고립도는 35.2%로 여자(31.0%)보다 높은 편이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19∼29세 24.5%, 60세 이상 40.7%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립도는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회적 고립과 밀접히 관련된 외로움은 젊은 세대일수록 체감 정도가 크다는 것이다(정한울, 2018). 2018년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을 ‘거의 항상’이나 ‘자주 느낌’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20대 40%, 30대 29%, 40대 25%, 50대 20%, 60대 이상 17%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전 세대를 아울러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고독사, 사회적 고립, 고립된 삶은 특정 연령층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연령에 걸쳐 고립도가 높게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고, 이것이 사회 병리적 행동으로 발현될 잠재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체험 빈도가 높을수록 행복감이 약화되어 ‘외로움>무력감>걱정>분노>짜증’ 순의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다(정한울, 2018). 오늘날 사회의 안녕을 해하는 묻지마 살인, 마약, 우울증과 정신 질환에 따른 범죄 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고립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의 만연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고립에 대한 정책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 고립의 양상에 생애주기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활발한 온라인 소통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접촉의 증가가 사회적 고립과 밀접히 관련된다. 청년기에는 의미 있는 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불안정한 직업, 실업의 장기화, 1인 독신 가구의 증가 등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중·장년기에는 조기 퇴직과 은퇴 이후 경제력 상실이, 노년기에는 건강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의 협소화가 비자발적 관계의 단절을 일으킨다. 이렇듯 생애 주기별 고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양한 만큼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을 위해 다양한 학문 분과의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다.
사회적 고립과 관련한 해외의 연구를 살펴보면, 1980년에 처음 시작해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1년도 전후를 기점으로 급증하여 지금까지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양현 등(2024)은 사회적 고립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1980년부터 2024년까지 Web of Science에서 사회적 고립에 대한 문헌 2,874편을 분석했는데, 외로움(loneliness), 건강(health), 우울(depression), 사망률(mortality), 노인(old adults)이 높은 연결 강도를 가진 키워드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신경과학, 정신의학, 공공 환경 산업보건, 노년의학, 행동과학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어, 보건의료 분야에 집중된다. 주목할 점은 건강, 우울, 노인에 대한 전통적 연구가 지속되는 가운데, 2000년대 후반부터 웰빙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정신건강과 관련해 연구가 확장되어 왔으며, 2010대에는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대 들어 팬데믹 상황을 거치며 사회적 고립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종합할 때, 사회적 고립 연구의 주제는 5개로 요약된다. 첫째는, 건강과 웰빙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사회적 고립이 정신건강(우울, 불안 등)과 신체 건강(심혈관 질환, 면역력 감소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사회적 고립 연구의 주류를 차지한다. 그중 사회적 고립, 외로움과 사망률의 관계를 밝힌 연구(Holt-Lunstad et al., 2015)는 인간 생존율을 높이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건 정책적 개입의 지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적 고립이 뇌 기능이나 신체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력을 밝히려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Stuller, Jarrett, & DeVries, 2012; Xiong, Hong, Liu & Zhang, 2023).
둘째는, 사회적 관계 및 네트워크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 고립을 사회적 관계의 부족 혹은 결핍으로 정의한다. 가정, 직장, 지역사회 차원에서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는 동시에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고립 감소의 효과에 대해 주목한다. 또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혼재될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 사회적 고립과 주관적 외로움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둘의 상호작용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특히 카시오포와 크리스타키스(Cacioppo & Christakis, 2009)는 한 개인의 외로움이 친구, 친구의 친구, 그리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3단계 분리를 통해 전파되어, 사회적 네트워크를 손상시키는 악순환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연구는 외로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임을 검증함으로써, 감염병이나 비만의 전염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셋째는, 사회 불평등과 정치제도의 관점에서의 연구다. 사회적 고립은 빈곤층, 독거노인, 장애인, 소수 인종 등 취약 계층에게 더 빈번히 발생하여 취약성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약성은 사회적 배제 확장, 기회 평등의 침해, 정치적 참여의 제한과도 유의미한 관계를 가지며,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Barry, 1998; Postlewaite & Silverman, 2005; Schaap, 2021). 이 같은 연구는 사회적 고립을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는, 공간 및 환경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다. 도시 공간 설계나 주거 불안정성이 고립에 미치는 영향, 농촌 지역 노인의 이동성과 고립 등 다양한 연구가 존재한다. 카페, 도서관 등 ‘제3의 장소’에 대한 연구도 이 범주에 귀속시킬 수 있는데, 공간 중심의 사회적 고립 연구는 사회적 고립의 본질보다는 사회적 연결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차적 수준에 그친다는 한계를 지닌다.
다섯째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지원 제도와 성과 측정에 대한 연구다.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는 정책 연구와 함께 법 제도적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다(Hodge, White & Reeves, 2020; Leigh-Huntet et al., 2017; Dickens et al., 2011). 더불어 사회적 고립은 복합적 차원으로 구성되므로 고립의 정도를 측정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들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Pohl et al, 2017; Valtorta, 2016; Cornwell & Waite, 2009).
이상과 같이 사회적 고립은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가 수행되고 있으며, 국가별로 가장 많은 문헌을 출판한 국가는 미국, 영국, 중국, 캐나다, 호주, 일본 순이다. 그중 영국이 사회적 고립 연구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양현 등, 2024). 그에 반해 한국의 사회적 고립 연구는 18위인데, 이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심각성이 가장 낮은 스코틀랜드, 스웨덴, 핀란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사회적 고립에 대한 정책적 대응 역시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사회적 고립 연구의 진척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향후 방향성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III. 연구 방법
본 논문은 국내 학술 논문의 국문 초록을 대상으로 사회적 고립과 관련한 토픽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학술 논문의 초록은 논문의 주제와 내용을 가장 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으로 연구 동향을 파악하는 기본 데이터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분석 대상이 된 학술 논문은 한국 학술지 인용색인(KCI)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수집하였다. ‘사회적 고립’ 키워드를 포함하는 논문을 검색한 결과, 발행 시기 1975년부터 2025년 2월까지 2,419건이 검색되었다.
사회적 고립과 관련된 첫 국내 학술논문은 1975년에 존재하지만, 본격적인 학술적 논의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인다(<그림 3> 참조). 따라서 분석 대상은 2004년에서 2024년까지 20년간 발행된 2,320건의 학술논문으로 결정하였다.
<그림 4>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사회적 고립과 관련된 연구는 2010년대 초반까지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2012년부터 연 100건 이상으로 눈에 띄게 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증가 추이를 보였으며, 코로나 시기 이후인 2020년대 이후로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인 학술논문은 텍스트로 구성된 비정형 데이터이다. 이 같은 데이터 분석을 위해서는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를 정형화하는 작업인 텍스트 마이닝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는 자연어 알고리즘을 거쳐 분석 가능한 정형 데이터 형태로 변환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R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한국어 처리 패키지 중 RcppMeCab과 RmecabKo 패키지를 활용하여 명사를 추출하는 텍스트 마이닝 작업을 실시하였다.
텍스트 분석 과정에서 영어 표현 및 숫자, 한자, 특수 기호는 제거하였으며, 검색 키워드인 ‘사회적 고립’, ‘고립’ 및 사회과학 논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회’, ‘연구’, ‘분석’, ‘결과’, ‘문제’, ‘영향’, ‘요인’ 등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163개를 제외하여 분석에서는 총 16,151개의 단어가 활용되었다.
토픽 모델링은 개별 문서, 또는 문서 집합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을 그룹화하여 특정 주제를 분류하는 기법이다(DiMaggio et al., 2013; Grimmer & Stewart, 2013). 이러한 토픽 모델링은 수많은 문서를 요약하고 분류하는 데에 강점이 있고, 토픽 및 단어의 분포를 시각화할 수 있어 문서들 간 공통 주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토픽 모델링 기법 중 하나인 잠재 디리클레 할당(LDA)은 텍스트 자료를 분석하는 생성 확률 모델(generative probabilistic model)로서 문서가 복수의 주제를 포함할 수 있으며, 여러 문서가 동일한 주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작동한다. LDA 모델은 위계적 모델(hierarchical model)을 기반으로 하며, 경험적 베이즈 접근법(empirical Bayes approach)을 활용하여 문서 및 단어의 토픽 분류 확률을 추정한다.
즉, LDA는 탐색적 요인분석의 일종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텍스트 자료를 다양한 알고리즘을 통해 토픽별로 분류해 주는 기법이다(Steyvers & Griffiths, 2007). LDA 기반 토픽 모델링은 토픽의 추출 방법이 비교적 명확하고 간단하며, 연구자의 주관 개입 여지가 적어서 보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LDA 토픽 모델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석에 사용할 토픽의 개수를 연구자가 직접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분석 자료에서 몇 개의 토픽을 도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연구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LDA 기반 토픽 모델링은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잡음 데이터를 소수 토픽으로 분류하며, 나머지 명확한 자료들을 해석 가능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디마지오(DiMaggio et al., 2013)와 같은 연구자들은 전체 토픽을 대상으로 최적의 모델을 선택하기보다, 분석 결과의 유용성에 따라 토픽을 산출하는 접근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또 다른 연구자들은 다양한 경우의 토픽 수를 가정해 토픽 모델링을 실시한 후, 토픽이 분류하는 단어의 정확도를 평가해 적정 토픽 수를 결정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하였다(Arun et al., 2010; Cao et al., 2009; Deveaud et al., 2014; Griffiths & Steyvers, 2004).
<그림 5>는 선행 연구에서 제안된 방법들을 활용해 적절한 토픽 개수를 계산한 결과이다. 각 지표는 서로 다른 적정 토픽 개수를 제안하고 있는데, 그림 상단의 두 그래프는 값이 낮을수록, 하단의 두 그래프는 값이 높을수록 모델이 적합함을 의미한다.
본 연구에서는 <그림 5>의 결과를 참고하여 개별 모델의 유용성을 평가한 결과, 최종적으로 12개의 토픽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IV. 분석 결과
먼저 분석에 활용된 16,151개의 단어 중 상위 100개 단어를 추출하여 만든 워드클라우드는 다음 <그림 6>과 같다.
최상위 빈도로 나타난 10개 단어들의 출현 빈도를 보면, 가장 많이 사용된 ‘관계’ 단어의 경우 총 2,515회 사용되었으며,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단어인 ‘노인’의 경우 1,904회 사용되었다. 두 단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경험, 지역, 문화, 교육, 공간 등으로 사회적 고립이라는 현상을 다면적으로 살펴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표 1>).
순위 | 단어 | 출현 빈도 |
---|---|---|
1 | 관계 | 2,515 |
2 | 노인 | 1,904 |
3 | 경험 | 1,567 |
4 | 지역 | 1,452 |
5 | 문화 | 1,288 |
6 | 교육 | 1,170 |
7 | 공간 | 1,147 |
8 | 여성 | 1,112 |
9 | 경제 | 1,094 |
10 | 변화 | 1,086 |
토픽 모델링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다룬 국내 논문들의 국문 초록을 분석해 12개의 토픽군을 추출했다. 그리고 각 토픽군을 구성하는 키워드와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적 고립의 내용을 분석해 각 군집이 드러내는 연구 주제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그림 7>).
12개의 토픽 내용은 1) 노인 복지 정책, 2) 아동 청소년, 3) 지역과 공간, 4) 정치와 권력, 5)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 6) 노인 정신건강, 7) 국제 정치, 8) 철학, 9) 문학과 예술, 10) 가족 문제, 11) 다문화, 12) 역사의 연구 주제로 군집되어 있으며, 다음 3가지 특성을 갖는다.
12개의 연구 주제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이 사회적 고립에 대한 국내 연구는 토픽 2 아동 청소년, 토픽 6의 노인 정신건강, 토픽 10 가족 문제, 토픽 11 다문화 등 사회적 고립의 대상을 중심으로 키워드가 군집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 토픽별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토픽 2를 구성하는 키워드들은 관계, 아동, 장애, 학교, 청소년, 교육, 교사, 상담, 심리, 치료 등으로 연구 주제를 아동 청소년으로 칭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 토픽의 논문은 226개로 전체 사회적 고립 관련 논문의 9.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 청소년의 반응적 공격성과 외로움의 관계에서 사회적 고립과 지각된 학교 풍토의 조절된 매개효과(강수현·이동형·최주희, 2022)와 같이 아동 청소년의 고립 문제를 교육의 관점에서 다룬 논문(서봉언, 2018; 유인애·공윤정, 2007; 김종운·이명순, 2009)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아동·청소년의 사회적 고립 해결을 위한 상담과 치료 관련 연구(이현림·장미자·김순미, 2024; 손경원, 2018; 박찬옥·황지영, 2019; 이정기, 2022) 등 집단 관계 속에서 고립의 현황을 파악하고, 상담과 교육 관점에서 사회적 고립을 바라보는 연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토픽 6은 노인을 중심으로 관계, 우울, 건강, 정신, 자살, 생활, 외로움, 중독, 만족, 지지, 스트레스 등의 키워드가 군집되어 있어 노인 정신건강을 주제로 한 연구로 분류할 수 있다. 논문은 전체 논문의 12.8%인 297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 17개에서 2024년에는 63개가 발표되어 코로나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노인 정신건강 관련 연구로는 우울, 자살, 외로움 등 심리 및 정신건강 관련해 사회적 고립을 다루는 연구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기의 차별 및 배제 경험에 대한 인식 정도와 자살 생각과의 관계: 우울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조성희·김경미, 2016), 농촌 노인의 사회적 고립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 전기 노인과 후기 노인 비교 분석(이상철, 2017) 등은 노인의 고립과 정신건강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우울감이나 고독감 등 사회적 고립감의 정의나 측정에 대한 연구(최성수·황보람, 2024; 서영석·안수정·김현진·고세인, 2020; 이혁준·임진섭, 2019; 김아란·김동우·이유진·최승원, 2019)가 이에 속한다.
토픽 10은 가족 문제를 연구 주제로 볼 수 있으며, 여성, 가족, 경험, 결혼, 남성, 폭력, 자녀, 부모, 차별, 가정, 피해자, 고통, 갈등, 젠더, 공동체 등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발표된 논문은 214개로 전체 논문의 9.2%를 차지한다. 연구 주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성폭력 행위자의 심리적 분열과 사회적 고립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박경숙·신동렬, 2017), 청년의 성인 초기 발달과업 성취 유형이 사회적 고립감에 미치는 영향(김재희·박은규, 2016) 등 가족 폭력이나 부모 자녀 관계 등 가족 관계와 관련해 사회적 고립을 다루고 있고, 세대별 고립의 현황과 양상(임승자, 2019; 김서현, 2023; 이명실·이덕선, 2024)을 고찰하거나, 이주 노동자, 장애인, 자살 가족, 사회적 참사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와 차별의 문제(이희은, 2023, 유은주, 2010, 김철수, 2011, 김기홍, 2011)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토픽 11은 문화, 한국, 교육, 민족, 다문화, 외국인, 정체, 언어, 한인, 일본, 적응, 이주민, 통합, 지역, 중국, 미국, 난민 등의 어휘가 군집을 이루고 있어, 다문화 연구 주제로 명명할 수 있다. 발표된 논문은 128개로 전체 논문의 5.5%가 해당한다. 해외 입양인의 심리 사회적 적응(고혜연·임영식, 2005), 다문화적 소수자 문제에서 한국의 특수성(박병섭, 2006), 중국인 이민자의 미국 사회로 통합과 차이나타운(Chinatown)의 역할(이민자, 2016),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주거 문화 개선 방안 연구 -지역사회의 사회적 배제 문제해결 방안을 중심으로-(한지은·나건, 2017), 시리아 난민 1가족의 유입국 정착 경험(김현옥·홍다영, 2024) 등의 다문화 소수자와 난민 문제가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토픽 1의 노인 복지 정책, 토픽 3 지역과 공간, 토픽 4 정치권력, 토픽 5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의 연구 주제는 사회적 고립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정책적 차원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거나, 지역과 공동체 차원에서 나타나는 고립의 양상과 대응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가 사회적 고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주제들로 사회적 고립에 대한 정책 및 제도를 주로 다루고 있다.
각 토픽별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토픽 1을 구성하는 키워드는 노인, 지원, 서비스, 복지, 정책, 장애, 고독사, 코로나, 시설, 의료, 예방 등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어, 연구 주제로 노인 복지 정책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노인 복지 정책을 연구 주제로 하는 논문이 전체 논문 2,320개 중 247개로 전체 논문의 10.6%를 차지하고 있다.
논문 내용을 살펴보면 독거 및 은둔 노인에 대한 돌봄 서비스 정책이나 지원 방안과 관련해 다루고 있거나(김수진·류주연·성기옥, 2023; 홍선미·전준희·하경희, 2022; 김유진, 2020; 강군생·김정선, 2017; 주경희·민소영, 2017), 관련 법 제도에 대한 분석(선은애, 2022; 조미정·정순둘·이하진, 2023, 정슬기, 2024), 사회적 고립 개선을 위한 사례 분석(용태희·배은경, 2024; 박선희·최영화, 2024) 등 사회적 고립의 환경적 요인을 갖고 있는 집단인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현황 파악, 지원을 위한 법 제도적 정책 기반 관련된 연구들이 이에 해당한다.
각 토픽별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토픽 3은 지역, 공간, 도시, 주거, 주택, 환경, 장소, 마을, 문화, 공동체, 커뮤니티 등의 키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 연구 주제를 지역과 공간으로 분류하였다. 논문 수로는 153개가 발표되어 전체 사회적 고립 논문의 6.6%를 차지한다. 지역과 공간으로 분류된 논문들은 지역 격차나 주거 및 문화 활동 공간의 활용적 측면(한지은·나건, 2017; 박경동, 2010)에서 사회적 고립을 연구하거나, 지역 공동체나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무효우·이경훈, 2019; 서현보, 2017) 등 지역, 경계, 공간의 측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픽 4는 연구 주제를 정치와 권력으로 명명할 수 있다. 토픽을 구성하는 키워드는 국가, 운동, 시민, 노동, 정치, 헌법, 인권, 규정, 테러, 제도, 보호, 민주, 자유, 정부 등 법 제도적 차원의 권력관계 그리고 인권과 관련한 연구들이 해당한다. 논문 수로는 100개가 발표되어 전체 논문의 4.3%를 차지한다. 여성 노동자, 청소 노동자, 선원, 군인 등 산업별 노동 여건과 권력 구조에 대한 연구(최나현·김영, 2021; 진호현·김진권, 2019; 유형근, 2015; 최진이, 2009; ), 법제도 및 통치 측면의 문제(신동호·지승현, 2019; 주윤정, 2018; 임미리, 2013; 김환학, 2013)를 다루는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토픽 5의 연구 주제는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다루고 있는 논문들이 해당된다. 토픽은 디지털, 참여, 기술, 경험, 교육, 미디어, 문화, 온라인, 스포츠, 음악, 코로나, 수업, 인터넷, 게임 등의 키워드로 군집화되어 있다. 논문 수는 178개로 전체 논문의 7.7%에 해당한다.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연구 주제로 한 논문들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일상화에 따른 사회적 관계 변화를 다룬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중독, 소외, 외로움 등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박소영·박창희, 2023; 이혜선·ZHOU NAN·조재희, 2023; 손영준·허만섭, 2020; 권예지·나은영·박소라·김은미·이지영·고예나, 2015; 신경아·한미정, 2013)이나 자기 효능감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박상미·김한솔·박해긍, 2022; 김현우, 2021; 배소영·이충기, 2019; 김혜리·이상준, 2018) 측면에서 사회적 고립의 속성을 이해하고 해결을 위한 방안 모색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사회적 고립을 다룬 연구들은 노인, 아동, 여성에서 디지털 미디어 기술에까지 다양한 주체와 대응 방식을 포괄한다. 12개 토픽의 키워드들만 살펴보면 인문사회 모든 학문 분과를 아우르는 주제로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이는 사회적 고립이 다양한 학문 분과의 시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기 보다는 인문 사회 분야 연구의 일반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토픽 7의 국제 정치와 토픽 12의 역사 등은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개인이 처한 고립의 현실을 다루기보다 국가적 차원의 지정학적 고립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토픽 8의 철학과 토픽 9의 문학 예술은 인문사회 연구의 기본적 연구 주제인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 전반을 포괄하는 주제로 볼 수 있다.
각 토픽별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토픽 7은 국제 정치를 연구 주제로 한 논문들로 북한, 경제, 중국, 국제, 체제, 국가, 정치, 미국, 외교, 러시아, 협력, 한반도, 제재 등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논문 수로는 178개로 전체 논문의 7.7%에 해당하나, 주로 외교적 고립 등 국제 정세와 관련된 고립의 문제여서 사회적 고립의 주제라고 볼 수는 없다.
토픽 12는 교회, 종교, 조선, 일본, 기독교, 지역, 문화, 선교, 운동, 근대, 역사, 정치, 신학, 영국, 세력 등 역사를 연구 주제로 다루는 키워드들이 군집해 있다. 발표된 논문은 100개이며 전체의 4.3%를 차지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른 지정학적 고립을 다루고 있어 이 역시도 사회적 고립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
토픽 8은 개인, 관계, 공동체, 존재, 문화, 실천, 가치, 주체, 인식, 철학, 근대, 도덕, 비판, 타자 등 철학적 논의와 관련된 어휘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히키코모리의 행태와 소통방식의 이해 방안(김건, 2013), 현대인의 소통과 고독에 관한 고찰 (주혜연, 2017), 감염병 위기와 타자화된 존재들(권창규, 2020), 단절과 고립의 극복을 위한 소설 읽기와 교육적 의미(진솔, 2024) 등 개인의 존재론적 사유 등 철학적 관점의 논문들이 이에 해당한다. 논문 수로는 249개로 전체 논문의 10.7%가 해당한다.
토픽 9의 연구 주제는 문학과 예술로 명명할 수 있다. 문학, 작품, 소설, 영화, 인물, 서사, 존재, 공간, 주체, 의식, 이야기, 소외, 예술, 인식, 표현 등의 키워드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논문은 250개로 전체 논문의 10.8%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과 시 등 문학 및 영화,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 회화와 음악 등 예술 전반에서 형상화된 사회적 고립의 재현 양상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도시의 소외 의식(신진, 2011), 기억의 개인 원리와 소통의 가능성 -김연수 소설의 기억술을 중심으로-(정연희, 2012), 한국문학의 차이니스 디아스포라 -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박형준, 2015),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회화에 나타난 소외의 표상 - 모더니즘과 필름 느와르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권주연, 2008), 노인 차별에 대한 노인의 의미화 방식에 관한 연구(이지영, 2009), 단절과 고립의 극복을 위한 소설 읽기와 교육적 의미(진솔, 2024)의 논문 등이 있다.
V.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국내 연구의 방향성과 분포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학술적 기반 강화 및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에서 2004년∼2024년까지 사회적 고립을 키워드로 발표된 논문 2,320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사회적 고립 관련 국내 연구 동향은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
첫째, 노인, 청소년, 여성 등 사회적 고립 대상별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세대나 젠더별 사회적 취약 계층이나 마이너리티로 볼 수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나 사례 분석 등 질적 연구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해외 연구와 비교할 경우, 국내 연구의 경우 노인, 아동·청소년, 가족, 이주민, 장애인 등 취약계층별 고독이나 사회적 단절을 다루는 연구가 많았고, 특히 노인 관련 주제가 2개 토픽에 걸쳐 나타날 만큼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앞서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해외 연구가 건강, 정치, 불평등 등 사회 구조 관점에서 이루어진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면, 국내 연구는 사회적 고립을 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사회적 고립의 문제를 개인, 특히 전통적 역할이나 고정된 정체성을 전제한 개인의 문제로 국한함으로써 고립 역시도 아직까지 가족이라는 제한적 시각에서 바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고립의 원인이자 결과인 차별과 배제, 소외가 복합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볼 때 고립에 처한 개인도 다양한 층위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현대인의 정체성이 가족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고립의 문제가 연령과 계층을 초월한 보편적 문제라는 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주체의 등장과 집단화의 양상을 고려해 다층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고립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키워드 개수로만 보자면 국내 연구는 노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연구가 많고, 그 집단이 겪는 사회적 고립의 내용도 고독사, 외로움, 우울 등 개인의 차원에서 다뤄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개인이 처한 고립의 상태에 주목하고, 그 고립의 상황을 해결하는 데 연구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고립 자체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연구 대상 논문들은 고립을 자연스럽게 사회적이라는 키워드로 연결해 제시하고 있으나, 이때의 ‘사회적’이라는 키워드는 사회적 지지나 사회적 관계 등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강조 정도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고립에 처한 다양한 주체의 양상에 주목함과 동시에 고립을 수식하는 사회적 조건 등 사회 관계망으로 연구의 초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회적 고립에 대한 국가적 대응에 앞선 서구 사회 및 일본 등 복지 선진 국가의 경우, 사회적 고립을 사회 관계망 및 네트워크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사회적 고립의 속성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그에 대한 개념을 이론화해 사회적 고립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이에 기반해 사회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고립의 원인과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셋째, 인문사회 공통 주제 차원의 존재론적 접근의 양상을 보인다. 본 연구에서 추출된 12개의 주제는 1) 노인 복지 정책, 2) 아동 청소년, 3) 지역과 공간, 4) 정치와 권력, 5)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 6) 노인 정신 건강, 7) 국제 정치, 8) 철학, 9) 문학과 예술, 10) 가족 문제, 11) 다문화, 12) 역사 등 인문사회 연구 분류 체계와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이는 국내의 사회적 고립 연구가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다기보다 사회적 고립 연구의 속성을 드러내는 주제들이 토픽으로 분류되어 나오지 않을 만큼 사회 문제의 한 영역으로서 사회적 고립 연구가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토픽 8의 철학이나 토픽 9의 문학과 예술 연구 주제는 사회적 고립의 내용을 다룬 것이라기보다 인문사회 연구의 기본적 연구 주제인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 전반을 포괄하는 것으로서 한국 사회의 사회적 고립을 규명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토픽 7의 국제 정치나 토픽 12의 역사 주제 역시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 관계나 행위 차원의 사회적 고립 문제라기보다 과거와 현재의 지정학적 관점 및 국제 정세 차원의 고립을 다룬 경우로 이 역시 사회 문제로서 사회적 고립과는 거리가 있다.
고립은 개별자로서 인간 주체를 사유하는 핵심 주제로 존재론적 논의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주제다. 사회적 고립이 사회과학적 측면에서는 철학적 논의와 별개로 복지 등 사회 문제 차원에서 접근되고 있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연구로서 사회적 고립의 속성을 본질적으로 밝히는데 중요한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와 함께 인간 주체의 속성에 대한 논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따라서 사회적 고립에 대한 융합적, 전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사회적 고립에 대한 정책적 지향점을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고립에 대한 정책적 대응과 제도적 기반 마련에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 연구의 경우, 보건, 의료 관련 실증 기반 연구가 다수를 이룬다. 또한 사회적 고립에 대한 법제도 마련에 앞서 있는 만큼 제도 선진화나 지표, 평가 체계 등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기반 연구가 두드러진다. 반면, 국내 연구는 지역 사회나 공동체 기반의 사례 분석 연구가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사회 불평등, 도시화, 글로벌화 등과 연결해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는 아직 본격화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사회적 고립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고립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 추적할 수 있는 종단 연구외 횡단면 연구를 병행해 고립의 원인과 결과를 더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고립의 양상과 특성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연구 성과를 축적해 한국의 사회적 고립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적 고립이 한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임을 감안할 때, 비교 연구를 확대함으로써 사회적 고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가속화와 코로나 19 이후 고립과 단절이 일상화한 상황에서 사회적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그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다학제적 연구를 통한 종합적 대응이 절실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토픽 모델링을 통해 사회적 고립과 관한 연구 주제가 12개로 추출되었다는 것은 사회적 고립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에 대한 연구가 다층적 관점에서 집중해 바라봐야할 세부 주제로서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구는 사회적 고립이 연령과 계층을 초월해 사회 구성원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바라보면서, 다양한 주체와 집단이 처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요소를 고려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다각도의 관점에서 사회적 고립의 문제를 바라보는 연구의 성과를 사회적 고립 지표 개발, 사회적 고립 대응 모델 등으로 체계화하고 이론화함으로써 사회적 고립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화와 코로나 19가 사회적 고립의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융복합 연구의 관점에서 가족 내 개인의 문제나 심리의 문제를 넘어 문화적, 구조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다뤄야할 필요가 있다. 또한 디지털 사회에서의 새로운 고립 양상에 대한 대응 전략과 함께 실증적 연구 강화 및 정책 연계형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