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Integration Research
Social Integration Research Center, Kangwon National University
일반논문

90년대 청춘들의 초상(肖像): 세대경험과 문학적 노스탤지어*

김남옥1,**
Namog Kim1,**
1김남옥_동국대학교 인구와 사회협동연구소 연구교수(namog21@daum.net)
1Dongguk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namog21@daum.net

© Copyright 2025,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l 10, 2025; Revised: Jul 19, 2025; Accepted: Jul 21, 2025

Published Online: Jul 31, 2025

국문초록

본 연구는 1970년대생 1990년대 초반 학번 작가의 문학에 나타난 세대 정체성과 노스탤지어의 정치성을 분석한다. 1990년대는 일반적으로 대중문화의 확산, 소비문화의 등장, 민주화 이후 탈정치화 시대의 개막 등으로 설명되며, ‘자기계발’과 ‘개인화’를 핵심 키워드로 삼는 시대 담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 속에는 1989∼1992학번에 해당하는 1970년대생들은 ‘386세대’처럼 민주화의 주체로서 상징화되지 못하고, 후기 90년대 학번처럼 소비의 주체로 호명되지도 않은 채, 경계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 세대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호출하는 핵심 기억은 ‘1991년 5월’ 즉 분신정국과 한총련의 마지막 투쟁에 대한 기억이다. 이는 공식 역사에서 삭제되거나 왜곡된 청춘기의 정치적 경험을 의미화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며, 이들이 이를 반복적으로 기표화하는 서사 전략의 핵심이다. 이때의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감상적 회귀가 아니라, 사후적 자기성찰과 감정의 재구성을 통해 세대 정체성을 새재정립하려는 성찰적 노스탤지어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적 기억 행위가 공유된 감정을 기반으로 감정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기존의 집단기억과 역사 서사에 균열을 내는 ‘노스탤지어의 정치’로 기능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generational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nostalgia as represented in the literature of writers born in the 1970s who entered university in the early 1990s. The 1990s in South Korea are commonly described through narratives of cultural expansion, the rise of consumerism, and the advent of a depoliticized era following democratization. Dominant discourses of the time emphasized "self-development" and "individualization," often highlighting personal agency over collective ideology. However, such narratives marginalize the generation that entered university between 1989 and 1992. Unlike the iconic "386 generation" who are symbolically linked to democratization, or the late-90s cohorts associated with consumer identity, this group occupies a liminal and often neglected position.

The central memory repeatedly evoked in their literary works is "May 1991," referring to the wave of student self-immolations and the final mobilizations of Hanchongryun (the South Korean Federation of University Student Councils). This collective memory reflects a desire to reclaim and re-signify political experiences of youth that have been erased or distorted in official historical narratives. The nostalgia in their literature is not a sentimental return to the past but rather a form of reflective nostalgia—a retrospective self-interrogation and emotional reconstruction that enables the redefinition of generational identity.

Therefore, these acts of literary remembrance constitute the formation of an emotional community grounded in shared affect, functioning as a form of "the politics of nostalgia" that challenges dominant historical discourses and reconstructs collective memory from the margins.

Keywords: 70년대생; 1990년대 학번; 세대; 세대경험; 세대정체성; 문학적 노스탤지어; 청춘; 기억의 정치
Keywords: 1970s Generation; University Students of the 1990s; Generation; Generational Experience; Generational Identity; Literary Nostalgia; Youth; Politics of Memory

I. 서론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을 ‘샴쌍둥이’로 비유한 바 있다.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은 일을 하고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학과 타 학문 간의 경계를 구분하려는 시도, 문학과 다른 예술을 분리하고 정리하려는 학문적 관성이 문학과 사회학을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양자 사이의 경계선 긋는 일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다른 시각과 상이한 유형의 데이터를 찾아내고 생산하지만, 그 생산물의 원천은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의 광대한 인간 경험에 있다. 바우만과 마체오는 이를 근거로 문학과 사회학이 동일한 출발점, 관심사, 목적을 지니며, 서로 보완하고 확장하는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바우만·마체오, 2024).

이 같은 시각은 기존 문학사회학자들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 루카치나 바르트, 부르디외와 아도르노, 브레히트, 지라르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문학이 사회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능동적 장치임을 강조해 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학이 ‘사회적 사실’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통로라는 점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문학은 제도나 통계를 통해 포착되기 어려운 사회의 감정 구조, 시대의 정동(affect), 개인과 집단이 겪는 내면적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김남옥, 2010: 272).

이처럼 문학은 사회학이 포착하기 어려운 삶의 질감과 감정의 층위를 드러냄으로써, 하나의 인식론적 도구로 기능하게 한다. 즉, 문학은 사회적 진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것을 느끼게 하며, 공동체 내부에서 공유되고 기억될 수 있는 집합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모리스 알박스의 집합 기억 이론이나 얀 아스만의 문화기억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문학은 사회적 기억을 조직하고 전승하는 핵심 매체로서 작동한다. 이는 문학과 사회학의 연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며, 문학사회학적 접근의 유효성을 재확인시켜준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학사회학적 관점에 기초하여 ‘70년대 출생, 1990년대 초반 학번’ 작가군의 소설을 중심으로 1990년대에 대한 집합기억과 감정의 형상화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이들 작가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억의 특수형태인 20대 청춘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에 주목한다. 이 같은 경향은 10년 단위로 시대를 구분하고, 그에 따라 작가의 ‘세대교체’ 담론을 생산하는 문학장의 관행과도 연관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학장은 상징자본을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는 자율적 장(field)으로, 신진 작가 세대는 기존 문단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때 ‘세대’는 단순한 연령대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 경험, 정동 구조, 미학적 취향을 공유하는 문학적 집단으로 기능하며, 문학장은 이러한 세대 간 갈등과 전환을 제도화하고 담론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부르디 외, 2002).

실제로 ”70년대 학번, 80년대 학번, 90년대 학번, 2000년대 학번 등으로 작가군을 분류하고, 이들이 창작한 소설을 분석했을 때, 서로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공통적으로 자신이 속한 시대를 인식하고 규정하는 장치로서, ‘20대 대학 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386’세대의 ‘후일담 문학’은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1980년대 대학 공간에서의 민주화 운동, 저항의 감수성, 연대의 경험 등을 중심으로 한 ‘청춘기의 기억’을 강력한 서사 자원으로 활용해 왔다. 이들은 문학 텍스트뿐만 아니라, 정치적 담론, 대중문화, 언론 등을 통해 1980년대를 자기 세대의 정체성과 도덕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형상화했으며, 이는 문학장에서 세대적 입지와 상징자본을 구축하는 데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김남옥, 2010; 2016). 이처럼 386세대의 20대 대학 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세대의 자기서사화’로 기능했으며, 이후 세대의 문학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반복되거나 계승되고 있다.

이처럼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회고적 정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 세대가 통과한 역사적 시공간을 호명하고 서사화함으로써, 개인의 경험을 넘어 공동의 정체성과 기억을 재구성하려는 행위로 기능한다. 특히 1990년대는 사회주의권의 붕괴, 민주화 이후의 가치 혼란, 학생운동의 쇠퇴, 대중문화의 범람, IMF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확산 등 급격한 사회구조적 전환의 시기로, 이 시기에 청년기로 보낸 세대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각인시켰다. 문학은 이 시기를 반추하고 재해석하는 감정적이고 인지적인 공간으로 작용하며, 노스탤지어는 사회적 기억의 문학적 재구성이자 ‘노스탤지어의 정치’로 자리매김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70년대 출생, 1990년대 초반 학번’인 작가군의 소설을 중심으로 1990년대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형상화되는지를 분석하고, 그 속에 담긴 세대 정체성과 사회적 의미를 밝혀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1) 세대와 노스탤지어 개념을 검토하고, 해당 세대의 경험 기반인 1990년대의 시대적 조건을 조망하며, (2) 소설 텍스트 내에서 1990년대의 노스탤지어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되는지를 분석한 후, (3) 90년대 청춘의 감정 구조와 노스탤지어의 정치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1990년대 청춘의 정서구조와 세대 기억

1. 세대와 집합기억: 사회적 시간성과 감정 구조의 형성1)

세대는 단순히 동일 연령대 인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경험의 동시성을 기반으로 정체성과 감정 구조를 공유하는 사회적 집단으로 이해된다. 세대 개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은 「세대의 문제」에서 세대를 ‘공통된 역사적 삶의 시기’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정의하며, 단순한 연령 집단(cohort)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실체로 파악하였다. 만하임에 따르면 동일한 시기에 형성기에 있었던 이들이 특정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변동을 경험할 경우, 그 사건은 단순한 외부 자극이 아니라, 내면화된 감정 구조와 인식 틀을 형성하게 된다(만하임, 2013). 이와 같은 세대의 감정 구조(affective structure)는 단절 없는 시간선상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단층선과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중심으로 생성된다.

세대 경험이 감정 구조로 응축되고, 정체성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억의 체계가 요구된다. 이때 작용하는 것이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이다.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기억이 개인의 심리적 작용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틀 속에서 재구성된다고 보았다. 기억은 특정한 사회 집단, 특히 세대 내부에서 공유되고 반복되며, 이로써 ‘공통 경험의 시간성’이 유지된다(Maurice Halbwachs, 1992). 얀 아스만(Jan Assmann)은 이러한 집합기억 개념을 더욱 체계화하여 ‘문화기억’으로 확장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문화기억은 언어나 제도, 기념일, 상징체계 등 사회적 기호체계를 통해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지속시키며, 선택된 과거를 현재적 시점에서 조직한다. 이러한 기억 체계는 개별 기억의 단편이 아니라, 감정의 전승과 정체성의 재현을 매개하는 담론적 실천이 된다(Jan Assmann, 2011).

세대란 바로 이처럼 집합기억을 통해 감정 구조를 공유하며, 특정한 시대적 정서를 문화적으로 내면화한 집단이다. 따라서 세대를 구성하는 핵심은 연령이 아니라, 감정의 공통성과 경험의 반복 가능성에 있다. 이는 세대를 분석할 때 ‘누가 같은 시기에 살았는가’보다는 ‘누가 어떤 정서를 공유했는가’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 학번 청춘 세대는 냉전의 종식, 민주화의 제도화, 정보화와 소비문화의 확산이라는 구조적 전환 속에서 불안, 무력감,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고유한 감정 구조를 형성하였다.

2. 세대정체성과 노스탤지어: 회고의 감정 정치

세대가 형성한 감정 구조는 이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노스탤지어(nostalgia)라는 감정 양식을 통해 다시 호출된다.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불안정성과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동적 실천이다. 스베틀라나 보임(Svetlana Boym)은 노스탤지어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복원적 노스탤지어’(restorative nostalgia)는 과거의 질서와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으며, 종종 보수적이고 정치적인 재현 기제로 작동한다. 반면 ‘성찰적 노스탤지어’(reflective nostalgia)는 상실 자체를 성찰하며, 과거를 이상화하지 않고 그 부재를 받아들이는 감정적 거리를 유지한다(Svetlana Boym, 2001).

1990년대를 회고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대체로 복원적 노스탤지어의 양식을 따른다. 영화 <건축학 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삐삐, 공중전화, 라디오, LP 등의 아날로그 기기와 함께 당시 청춘의 ‘순수한 감성’을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시간에 정서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회고는 현재의 위기를 보상하거나 보편화하는 정서적 장치로 기능하지만, 동시대 청춘이 겪었던 감정의 균열이나 내적 긴장은 종종 생략된다.

반면, 본 논문이 주목하는 것은 문학에서 형상화되는 ‘성찰적 노스탤지어’의 감정 구조이다. 1990년대 초중반 학번의 소설가들은 자신의 청춘기를 이상화하기보다는 정치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며, 정체성 혼란, 무기력, 감정의 유예를 겪었던 청춘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들의 문학은 공동체적 감정이 해체된 이후의 감정 지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당대 청춘이 내면화했던 감정의 복합성과 그 이면의 사회구조를 함께 탐색한다. 이러한 서사는 세대 경험을 낭만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감정적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노스탤지어의 비판적 형식을 구현한다.

3. 노스탤지어의 정치성과 문학적 매개: 감정 구조의 문화적 전환

노스탤지어는 단지 과거에 대한 감상이나 추억에 그치지 않고, 감정의 정치성과도 맞닿아 있다. 즉, 어떤 기억이 공유되고, 어떤 감정이 정당화되는가를 둘러싼 문화 권력의 배치 속에서, 노스탤지어는 특정한 세대의 감정 구조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거나 주변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1990년대 청춘에 대한 회고 역시 그 의미 구성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상이한 감정적 서사가 생산된다. 대중문화가 주도하는 복원적 노스탤지어가 시대를 이상화하고 감정을 소비화하는 경향이 있다면, 문학은 세대 경험의 복합성과 모순을 감정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감정 구조의 내적 논리를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문학은 감정 구조를 드러내는 데 있어 보다 밀도 있는 정서적 복원력을 갖는다. 그것은 청춘이라는 시기를 낭만적 이상으로 포장하기보다, 정체성의 위기와 감정의 파편화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세대 경험이 갖는 역사적 복합성과 감정의 정치학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1990년대 초중반 학번 작가들의 텍스트는 바로 이러한 감정 구조의 문학적 매개를 통해, 세대정체성과 집합기억, 그리고 노스탤지어의 교차점 위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감정 공동체’의 서사로 정착시키고 있다(크노흐, 2014).

4. 세대경험의 토대: 1990년대의 구조적 전환

2010년의 문턱을 넘으면서 나타난 문화 증상 중 하나는 ‘1990년대 청춘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급부상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와 <응답하라 1994>,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특별기획 편 <토요일은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 <슈가맨> 시리즈 등은 1990년대를 소환한 콘텐츠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들 콘텐츠는 단순한 과거 회상의 차원을 넘어서, 1990년대 청춘이 공유했던 감정 구조(affective structure), 정서적 풍경을 감각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일종의 세대 기억을 서사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 가운데 1990년대 대학생들의 캠퍼스 생활과 그 시절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건축학 개론>은 당시 청춘들이 공유했던 정서, 감성, 문화, 분위기를 섬세하게 복원함으로써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켰다. 삐삐, CD플레이어, 카세트 테이프, 워크맨, LP, 라디오, 공중전화 등 아날로그 감성의 소품과 기술들, 건축학수업, 조별 과제, 캠퍼스 주변의 오래된 주택가와 좁은 골목길, 자취방 등은 1990년대 대학생들의 삶과 정서를 감각적으로 소환하는 기호적 장치들로 기능한다. 또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감성발라드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기타연주, 우회적 감정 표현, 절제된 말투 등은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청춘들이 경험한 좌절, 설렘, 상실의 감정 구조, 청춘의 내향적 감정 문법을 재현하고 있다. 결국 건축학 개론은 한 세대가 공유한 감정 구조(affective structure)를 영화적 장치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노스탤지어 서사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대중문화 영역에서 급부상했던 90년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현상은 자기세대 기억을 서사화함으로써 세대적 주체를 주형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콘텐츠들이 공유하는 바는 90년대의 청춘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이화진, 2014). 반면, 문학적 노스탤지어는 대중문화의 ‘낭만화’ 경향과는 결이 다르다. 특히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1990년대 초반 학번 소설가들이 호출하고 있는 90년대 청춘의 초상은 “무엇을 하던 어정쩡하고 너절했고 야비”했으며, “열정보다 무력감을 먼저 배운” 과도기 세대”요, 낀 세대의 모습이다(한차현, 2011: 32; 서영인(김종광), 2008: 352). 이들이 소환하는 20대 청년시기를 보낸 1990년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무력감,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교차하는 정동적 공간이다.

그 배경에는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자리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념 정치의 퇴조와 가치 혼란, 대중민주주의 확대, 정보통신기술의 급진화와 세계화, 소비문화와 개인주의 확산과 같은 시대상황이 자리한다.

5. 민주화와 현실사회주의의 종언: 이념의 붕괴와 정치 감정의 전환

우선, 1990년을 특징짓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1987년과 1989년, 1991년을 들 수 있다. 윤여일은 “1990년대란 무엇이고, 1990년대는 언제부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1990년대는 “모든 현재의 시작”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1990년대의 양상과 특징의 출발점은 이 세 해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윤여일, 2023: 22-23). 1987년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성취한 6월 항쟁이 있었고, 1989년과 1991년에는 베를린 장벽에 이어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현실사회주의의 종언을 고한 사건이 있었다. 이는 한국사회에 커다란 이념적 충격을 가져왔다.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가는 동시에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20세기 이념 지형이 급속히 붕괴하면서 이전 세대가 공유했던 ‘진보 대 보수’, ‘자본 대 노동’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설득력을 잃었고, ‘다른 세상’으로의 사회변혁을 꿈꿨던 자들의 좌표가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이념과 대의의 실종, 연대 감각의 해체를 이 시기의 핵심 정서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1987년 체제의 제도적 민주화는 오히려 운동권의 주도력을 약화시키고, 386세대의 도덕적 권위는 정치와 언론을 통해 제도화되며, 다음 세대에게는 그림자로 작용한다. 1990년대 청춘들은 이러한 유산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속하지 못한 자신들을 ‘끼인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곧 정체성 혼란, 불안과 무력감, 냉소적 현실 인식으로 이어지며, 청춘기의 감정 구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정치적 이상이 사라지면서 무력감과 정체성 혼란이 시대적 정서로 부각된다.

이렇듯 1990년대는 단지 시대 구분의 기점이 아니라, 청춘의 감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전환기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치적 이상이 퇴조하고, 이념의 지평이 사라지며, 공동체적 연대의 정서가 와해된 자리에 남은 것은 무력감, 정체성 혼란, 냉소와 같은 감정들이다. 특히 1980년대의 열정적 감정 구조가 여전히 ‘그림자처럼’ 잔존하고 있는 가운데, 1990년대의 청춘들은 그것을 계승할 수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끼인 세대’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동시기 부상한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개인화의 흐름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는 또한 대중문화와 언론을 중심으로 부상한 ‘신세대 담론’과 맞닿아 있다.

6. 분신 정국과 대중문화 소비 사이 : 균열된 정체성

1990년대 초중반 학번의 청년들이 마주한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386세대’의 도덕적 권위와 유산에 대한 이중적 감정이다. ‘386세대’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서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후 언론, 교육, 정치 등 제도권에 안착하며 자기세대의 서사를 사회적 표준으로 정전화하였다. 이는 이후 세대에게 하나의 이상적 정체성 모델로 기능하였지만, 동시에 그러한 ‘정전적 서사’는 1990년대 청년들에게 자기 시대의 고유한 감정과 경험을 가시화할 수 없도록 만드는 억압적 프레임으로 작용하였다.

1987년 이후 형식적 민주화가 실현되었다고는 하나, 1990년대의 정치국면은 혼란 그 자체였다. 1990년 3당 합당은 민주주의의 이상에 반하는 정치적 타협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곧 청년층의 냉소와 환멸을 증폭시켰다. 같은 해 혁명적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구국전위(혁노맹) 사건이 발생하며, 학생운동 진영은 국가권력의 탄압에 직면하면서 학생운동의 전선 역시 지속되었다(강준만, 2006).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은 이미 동력이 약화되고 있었고, 위기담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에 학생운동의 조직재편과 조직역량 강화를 위해 1993년 전대협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으로 재편하면서 세를 확장해 나갔고, 1990년대 중반 일명 ‘연세대 사건’을 정점으로 학생운동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1년 분신 정국(강경대, 김기설, 박승희 등)은 이러한 감정 전환의 임계점이었다. 분신은 1980년대식 저항의 마지막 언어였으나, 이후 학생운동에 대한 공감은 약화되었고, 분신은 더 이상 정치적 힘을 구가하는 실천으로 기능하지 못했다(이세영, 2021: 125; 강정인, 2017). 특히 1990년대 초중반 학번의 청년들은 이러한 운동 유산을 계승할 수 없는 시대적 간극 속에서, 정치적 무기력과 정체성 혼란, 감정적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균열된 감정 구조는 ‘신세대’ 담론이라는 대중적 언설과 맞물려 나타났다. 언론과 광고를 중심으로 등장한 ‘신세대’는 더 이상 정치적 이념이나 집단적 저항보다는 개인의 취향, 감각, 소비,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세대로 표상되었다. 이는 대중문화와 결합되며 새로운 정체성 모델로 떠올랐고, 1990년대 청춘들은 ‘민중·계급·민족’이라는 집합적 주체상, 즉 386세대와는 결이 다른 코드로 호명되었다.

7. 정보화와 IMF 외환위기: 신세대? 불안한 미래와 유예된 청춘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는 정보화의 진전과 IMF 외환위기라는 두 가지 중대한 사회경제적 변동을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초반 학번 청년 세대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부터 청년 세대를 설명하는 새로운 담론들이 형성되었다.

삐삐와 공중전화에서 출발하여 PC통신과 초기 인터넷에 이르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청년들의 일상적 소통방식과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기의 청춘들은 오프라인 공동체의 해체와 더불어 온라인 공동체-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였다. 말하자면 대면 중심의 관계에서 익명성과 탈맥락적 소통의 확산으로, 주체적 이상과 현실 비판에서 감정의 내면화와 대중문화 소비로, 정치적 글쓰기에서 팬픽, 개인 블로그, 게시판, 감정일기 등 자기중심 서사의 확산으로 이행해 간 것이다. 이는 익명성과 탈맥락적 소통의 확산을 의미하며, 전통적 집단주의적 관계망의 약화,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더욱 내면화되는 현상을 낳았다. 또한 정치적 참여나 사회운동 중심의 글쓰기에서 개인적 서사와 감정 표현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실천들이 활성화되면서 청년들은 ‘자기서사 저장소’로서 디지털 공간을 적극 활용하였다.2)

이러한 변화가 감정적·문화적 층위에서 작동하는 한편, 경제적 현실은 더욱 직접적으로 청춘들의 미래에 불안을 던졌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 비정규직 확대, 복지 축소로 이어졌으며, 청년 세대는 개인의 삶이 시장에 내맡겨지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겪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이 더 이상 안정된 삶의 보증 수표가 되지 않는 시대, 청춘은 더 이상 가능성의 이름이 아니라, 생존 불안, 불안정한 삶, 기회가 늦춰진 삶’, 다시 말해 이 시기의 청춘의 코드는 불안한 미래, 유예된 청춘으로 제시었다(김영찬, 2017: 10).

더불어, 동 시기 대중문화 콘텐츠는 이와 같은 정동의 지형 변화에 호응하며, ‘힐링’, ‘회피’, ‘자기 치유’와 같은 감정 어휘들을 전면화했다. 이는 청년 세대의 심리적 피로와 정동적 고립에 응답하는 동시에, 감정의 개인화와 탈정치화를 가속화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하였다. 감정은 이제 공적 정념이 아니라, 사적 자산으로 간주되며, 자기 계발과 감정 조절이라는 윤리적 명령 속에서 관리되고 동원된다.

결국 정보화와 IMF외환위기,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확산, 대중문화의 소비는 1990년대 초중반 학번 청춘들이 마주 한 사회적 조건과 감정 구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주요 지점을 이룬다. 이는 단순히 시대적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해당 작가들이 자신들의 청춘을 회고하고 형상화하는 세대경험의 토대가 되고 있다.

Ⅲ. 90년대 청춘의 초상: 노스탤지어의 문학적 구성

199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한국 문학장에서 주요한 담론 중 하나로 부상한 것은 이른바 ‘후일담 문학’의 등장이다. 이 흐름은 1980년대 청춘기에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 즉 80년대 학번 작가들이 1980년대 ‘운동의 추억’을 서사화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3)

한편, 2010년에 이르면서는 또다른 ‘후일담’ 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바로 1970년대생 1990년대 초중반 학번 작가군을 중심으로 1990년대의 대학경험과 청춘의 감정구조를 회고하는 서사들이다. 이들 작품은 ‘386세대’의 후일담 문학이 공유한 1980년대의 이념적 열정과 집단적 연대,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달리 외형적으로는 낀 세대의 무력감, 정체성 혼란, 불확실성을 중심으로 하는 같은 감정구조를 중심으로 회고적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러한 서사의 전환은 1990년대라는 특정한 시대가 함축하고 있는 구조적 변동과 감정적 지층의 변화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민주화와 사회주의권 몰락, 여전히 부조리한 정치 국면, 대중화와 소비사회의 급격한 확산, 정보화와 세계화의 도래, 그리고 IMF 외환위기라는 사건들이 교차하고 섞이면서 한 세대의 청춘기 정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시대적 전환이, 1990년대 학번 작가들이 구성해내는 후일담 서사 속에 무력감과 냉소, 그리고 유예된 청춘이라는 정동적 지형으로 투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누락된 세대 기억을 재서사화함으로써 199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우리는 누구였는가’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 자리하고 있다. 즉 세대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구축하는 세대적 실천이요, 노스탤지어 정치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1. 변혁의 1980년대와 환멸의 1990년대 사이: ‘386’세대의 그림자와 정체성 혼란

90학번 1학년, 열아홉 살.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너절한 시절. 세상 모르는 내게도 90년대는 80년대와 달랐습니다. 무엇을 하건 어정쩡하고 무엇을 꿈꾸건 너절했으니 그것이 90년대. 80년대가 격렬했다면 90년대는 야비했습니다. 80년대가 야생마 같았다면 90년대는 뒷골목 고양이 같았습니다(한차현, 2017a:26).4)

위의 인용문은 한차현의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1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한차현이 대학에 입학한 해인 1990년부터 “1991년식 티코”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는 1999년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5) 이 10년의 시간은 단지 개인적 성장의 시간이 아니라, 한 세대가 겪은 감정의 지형과 시대적 공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특히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낸 은원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사랑과 이별, 혼란과 체념, 그리고 무력한 낭만의 감정들을 따라가며 1990년대 청춘의 초상을 그려낸다.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한차현이 회상하는 1990년대는 격렬했던 ‘386세대’ 작가들이 되돌아보는 80년대와 다르다. 특히 격동의 80년대가 끝난 90년도, 그리고 90년도 학번들이 마주한 것은 “3당 합당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에 이어 소비에트 연방의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배우 최진실의 가전제품 CF”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16밀리 영화 <파업전야>가 대학가를 떠돌고, 남북 고위급회담이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조각나 기념품으로 팔리는 등의 풍경이다. 대학 또한 마찬가지다. 수업보다는 집회가, 강의보다는 확성기 구호가, 총학생회의 수업 거부 선언이 친숙했던 그야말로 “세상은 변했으나 변한 게 없는”, “다만 너절하고 너절했던” 90년이었던 것이다(한차현, 2017: 27).

이처럼 1990년대 초중반, 대학가에는 여전히 최루탄과 화염병, 가두투쟁의 기억이 잔존하고 있었고, 캠퍼스 곳곳에서는 데모와 연설, 농성장이 일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1980년대의 연장이자 지속처럼 보이는 풍경이었지만, 그 내부에 자리한 청춘들의 감정구조는 이전 세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드러냈다. ‘386세대’가 자기 확신, 이념적 열정, 공동체적 연대의 감정을 바탕으로 ‘운동’을 중심에 두고 청춘의 정체성을 구현한 세대였다면, 90년대 초중반 학번 세대는 이러한 구심점을 상실한 채 ‘운동의 형식’만을 물려받은, ‘어정쩡하고 야비했던’ 세대였다. 이들은 데모 현장에 참여하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고, 확성기 너머에서 흐르는 대중가요나 MTV, 카페, 노래방 문화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의반 타의반 ‘가투’에 참가한 게 대략 여덟 번? 선두의 선배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보도블록 조각을 던지고 철봉을 휘두를 때, 뒤에서 우왕좌왕 숨이 컥 막히는 지랄탄에 눈물 콧물 쏟아내던진 게 전부였지요(한차현, 2017a: 27-28).

‘어정쩡하고 야비했던’ 세대라는 한차현의 자기 고백은 민주화 이후 1990년대 청춘의 가치 혼란과 정체성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세대정서는 1990년대 대학이라는 공간의 복합적인 풍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당시 학생들은 1980년대 학번 선배들과 여전히 캠퍼스를 공유하고 있었고, 분신정국으로 표상되는 정치적 비극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이처럼 \상이한 시대감각이 중첩된 전환기의 공간 속에서 1990년대 청년세대는 정체성의 혼란과 감정적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어정쩡함은 김연수의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는 시위 대열의 중간쯤에서 적당히 팔을 흔들며 구호나 외치다가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놈이었다. 당시 대학교에는 나같은 놈들은 수천 명도 넘게 있었다.……하지만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많지 않아 전경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멀찌감치 뒤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김연수, 2015: 11-12)

인용문은 70년생, 89학번인 『스무살』의 주인공이 회상하는 대학시절의 풍경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1990년대를 살아간 대학생들의 이중적인 태도, 즉 참여와 관망 사이를 오가는 애매하고 복집한 정서를 보여준다. 김연수의 인물들이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386’ 운동권 세대가 지녔던 명확한 이념과 정당성의 감정구조와는 결을 달리 한다. 여기서 청춘은 역사적 확신이 아니라, 불안과 유예, 망설임의 감정으로 구성되며, 시대와의 관계 역시 능동적 개입보다는 거리 두기와 관망을 통해 형성된다.

김종광의 작품도 이와 유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1990년에서 1997년까지 대학에 적을 두었던 지방 대학 학생 ‘곰탱’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첫경험』은 1990년대를 통과한 한 세대의 청춘과 시대 경험을 블랙코미디적 문체로 풀어낸 작품이다. 3당 합당, 전교조, 시위 도중 사망한 강경대, 박승의, 김영균 등으로 이어지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과 죽음, 한총련, 최루탄 등 정치적 사건과 비극적 희생이 줄을 잇던 문제적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강박이나 이념적 분노로 환원되지 않고 일상과 중첩된 채 흘러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시위 현장에 있으면서도 최루탄이 흩날리는 장면 뒤로, 곧장 회식 자리에서의 농담이나 사랑 고백이 이어지는 이들의 청춘은 분명 ‘386세대’가 형상화한 ‘역사적 주체’로서의 청년상과는 괴리를 보여준다.

예컨대 『첫경험』의 주인공 곰탱은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는 데모에 나갔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꽤 열성적인 데모파로 보였을 테지만 실제는 혼미했다고 고백한다. 곰탱에게 투쟁은 신념의 실천이 아닌 일시적 만족과 사회적 소속감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동시에 이러한 자기모순을 인식하고 내면의 죄책감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곰탱은 투쟁의 신념이 단단하지 못했다. 데모를 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전경들과 종일 다투다 보니 뭔가 큰일을 했다는 만족감도 맛볼 수 있었고, 뒤풀이 때 술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심심하지 않았다. 투쟁의 신심도 없이 그러고 다닌다는 것이 곰탱을 괴롭게 했다(김종광, 2008: 26).

김종광의 단편 「노래를 못하면 아, 미운 사람」에도 1990년대 초반 학번이 경험하는 분열된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특히 71년생 90학번의 세대 경험을 중심 테마로 삼고 있다. 복학생 인관과 문식이 입대 전, 격렬했던 ‘분신정국’ 시기와는 너무도 달라져 있는 캠퍼스 분위기에 당황해 하고,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 술집에서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세대적 혼란과 시대적 단절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사실 말야, 팔십년대 형들? 그들은 투사였지. 투사. 그 형들 말하는 거 들어봐라. 투사적 관점으로 꿰맞추니까. 절대 몰라요. 광주를 알고, 노동자대투쟁을 알고, 전교조를 아는 세대가 우리 세대야.…… 아무튼 몰라서 싸우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게 내 말의 요지야. 우린 무엇을 위해 누구랑 사워야 하는 건지를 잊어버린 거야(김종광, 2002: 58).

결국 김종광의 작품에서는 이념적 확신이 없이 운동의 ‘형식’만을 따르는 90년대 청춘의 특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달리 할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의 세대인식 자기인식에 여전히 ‘386세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나타낸다. 이들 작품들은 정치적, 사회적 불확실성 속에서 1980년대 선배들과는 다른, 구심점을 상실한 ‘낀 세대’로서의 자각과 여전히 잔존하는 ‘운동의 형식’ 속에서 참여와 관망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의미 상실과 회의감, 무력감 등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1990년대 청년세대가 보여주는 자기 회고는 단순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이들의 회고는 과거로의 복귀나 이상화된 시간의 회복을 지향하기보다는, 상실의 감각 속에서 현재의 정체성과 감정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태도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노스탤지어는 스베틀라나 보임(Svetlana Boym)이 제시한 복원적 노스탤지어(restorative nostalgia)가 아닌, 성찰적 노스탤지어(reflective nostalgia)의 양상을 띤다고 볼 수 있다(Svetlana Boym, 2001).

바로 이러한 ‘성찰적 회고’ 속에서, 1990년대 청년세대는 운동과 일상,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서 감정의 균열과 재배치를 겪게 된다.

2. 운동과 일상 사이: 감정의 재배치

전술한 바와 같이,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정치국면의 혼란과 시위가 지속되고 있었으나, 그 방식은 1980년대와는 달랐고, 이에 대한 청년세대의 참여방식과 정서구조 역시 변화하게 되었다. 1980년대의 시위가 이념적 열정과 공동체적 연대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면, 1990년대 초중반의 시위는 제도화된 운동의 형식 속에서 개인적 동기와 정서의 이완, 혹은 거리감을 동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청년세대가 운동과 일상 사이에서 겪는 감정의 재배치, 즉 새로운 감정 구조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정서적 배치는 자연스럽게 감정의 표현 양상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이념적 연대의 장소였던 시위나 집회는 점차 주변화되고, 대신 연애, 음악, 글쓰기와 같은 사적 감정의 장면들만 감정적으로는 밀도 높은 장면들이 서사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말하자면 이들 작품들에서 운동은 더 이상 절대적인 구심점이 아니며, 그 자리를 연애와 음악을 비롯한 사적인 일상이 대체하고 있다. 간간히 부조리한 정치 현실과 여전한 시위 현장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1980년대의 비극적이고 숭고한 분위기 대신, 시위 현장 뒤로 곧장 “회식자리에서의 농담이나 사랑 고백이 이어지는 식으로 일상이 중첩”된다. 또한 시위를 유머화하거나 시위 참여 이후에도 대중음악, 카페, 극장, 호프집을 전전하며, 연애 또는 일상적 감정에 몰두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선배는 나지막히 말하더니 <흔들리지 않게>를 힘차게 부르며 인문대 광장을 향해 전진했다. 나는 황급히 선배 뒤를 따랐다”(권여선, 2007: 32)와 같이 운동이 개인의 존재방식과 감정적 확신의 중심에 있었던 ‘386세대’의 정서와는 분명한 단절을 보여준다.

한차현의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는 주인공 차현의 연애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소설은 민주화 이후, 세상이 변한 듯 보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정치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운동의 절연함이나 도덕적 정당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세대정서를 묘사한다.

90학번인 차현은 “격동의 80년대가 끝나고, 5공 특위에 불려 나왔다가 어물쩡 퇴장하는 전두환을 향해 민주당 초선의원 노무현이 집어던진 명패와 함께” “대망의 1990년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고작 한 학번 위인 89학번들을 향해 “어깨 위에 무거운 부채의식을 15킬로그램 정도 올려놓은 듯 어른 행세를 하려” 든다고 투덜댄다(한차현, 2017a: 27; 2011: 33).

또한 다음의 인용문처럼 차현은 1990년도에도 여전히 어수선한 국면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혼란을 자각하는 동시에 선배 ‘미림’ 생각에 가슴 설렘을 느끼는가 하면 미림에게 100일 기념 선물을 건네는 자신을 의식하며 “빌어먹을 사랑이라니”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에서는, 시대감각과 사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분열적 정서의 감각이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화자가 회고하듯 <캠퍼스 광장이나 경의선 철길이나 명동성당에서 집단적으로 “사랑해, 조국아”>라고 외치는 1980년대식 집단적 고백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감정의 양태이다.

노태우가 일본으로 정상회담을 떠나고……김국빈은 주일대사관 앞에서 일왕 사과를 요구하면 할복을 시도하고, 전대협 의장 임종석이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광주민주화 운동 10주기를 맞아 조용할 리가 없는 학교 안팎. 두근두근 이 설렘은 무엇일까(한차현, 2017a: 6)

이처럼 차현은 시위보다는 미림과의 사랑과 이별 감정이, 그리고 이후 다시 시작한 은원과의 사랑이 우선이었다. 일주일에 4∼5일은 술을 마시고 한일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서울극장……등 당시 서울의 유명 극장을 누비며 흥행 중인 영화는 모조리 섭렵한 뒤, 밤12시 즈음에 연인을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1991년, 정치적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경대의 죽음과 김기설의 분신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은 대학가에 보다 강한 정치적 감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적 정동의 고조 속에서도 1991년의 학생들의 반응은 1980년대식의 전면적 집단주의나 운동중심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들은 정치적 현실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그에 대한 반응은 보다 유보적이고 파편화된 방식으로 드러났다. 차현은 이러한 변화된 감정 구조를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그는 때로 연애에의 몰입으로, 때로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냉소로 자신의 정동을 조율하며, 운동의 윤리와 사적 욕망 사이에서 감정의 우선순위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가는 인물인 것이다. 이는 정치적 참여와 감정적 거리두기 사이에서 동요하는 주체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1990년대 초 청년 세대가 경험한 정동적 분열과 재배치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차현은 “미국과 이라크의 종전 합의로 40일 넘게 지속되는 걸프전이 사실상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1991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새로 시작된 은원과 무작정 춘천 가는 열차에 오르고. “제주도에서 고르바초프와 노태우가 만나는 날”을 언급하면서 수업도 빼먹고 은원과 함께 광화문 사거리, 세종문화회관 근처, 서대문, 녹번동. 홍제동 등 등 서울 곳곳을 싸돌아다닌다. 이후 5월, 대동제 기간, 강경대의 죽음과 김기설의 분신 등으로 캠퍼스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지만, 차현은 “이래저래 최루탄 제조업체만 신나는 즈음이었다”고 회상한다. 동아리 사람들 역시 투쟁 분위기를 띄우는 공연과 투쟁가가 스피커를 타고 메아리칠 무렵,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하나둘 자리를 떠나 결국 은원과 차현 둘만 남게 되자, 불쑥 “대천 같은 데 가서 밤바다 보며 한잔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은원과 장항선 열차를 그 순간, 행복했다고 말한다.

저녁이었고 야외 공연장 잔디밭 주점에 동아리 사람들 몇이 모였어요. 종잇장처럼 얇은 파전과 시큼한 막걸리, 저 멀리 야외무대에서는 초대가수 정태춘과 노래패들의 공연, 변진접의 <희망사항>을 개사한 노랫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저녁하늘에 웅웅 매아리쳤어요. -민주열사 생명 빼앗는 정부/ 애국청년 마구 때려죽이는 정부/노동자 기본권 말살하는 정부/ 난 이런 태우가 싫더라.....

한 사람은 친구 만나러 간다고 먼저 일어서고, 누구는 화장실 간다고 누구는 담배 사 온다고 자리를 비우고, 그렇게 남은 은원과 나였지요.……“아, 바다 가고 싶다.” ……

장항선을 탔습니다. 대천 가는 기찻길 풍경이 비에 젖건 말건 그저 벅차고 넘쳐흐르도록 행복했습니다(한차현, 2017a: 149-151).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 그가 당시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던 차현의 심리적 반응으로 읽힌다. 이는 작가가 ‘어정쩡하고 야비했던 세대’라고 규정한 자기 고백으로 귀결되며, 민주화 이후 1990년대 청춘이 겪은 혼란과 정체성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명확한 이념적 지향이나 실천적 결단 대신 회의와 냉소, 방황이 지배하던 1990년대 청춘상은 확고한 방향성도 없이 그저 표류하던 세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표류의 심리는 개인적 경험과 도시 공간의 배회를 통해 형상화되며, 이는 곧 민주화 세대와 그 이후 세대 사이의 단절과 이념적 계승이 좌절된 현실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는 감정구조의 재편 혹은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집단적 심리 변화의 한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말한 ‘감정 구조(structure of feeling)’의 개념을 빌리자면, 1990년대는 더 이상 혁명적 열망이나 공동체적 연대보다는 회의, 체념, 자기회귀적 정동이 지배하는 시기로 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Raymond Williams, 1978).

이처럼 1990년대 청춘의 정동적 변화는 김연수의 『스무살』,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연수는 70년생이면서 89학번으로, 1990년대를 통과하며 이른바 ‘신세대’로 호명되던 청춘들의 정서적 풍경을 문학적으로 포학해낸 작가이다. 그는 『스무살』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2000년이 되면서 실질적으로 나의 이십대가 끝났다. 이십대가 끝나고 내게 남은 게 뭔가 싶어서 탈탈 털었더니 『스무살』에 실린 소설들이 전부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김연수, 2015: 320). 이는 또한 “80년대는 명명백백한 시대”였기에 “90년대는 이게 진짜인가 거짓인가 회의도 들게 했다”는 그의 좌담 발언은 시대적 인식의 전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6)

이처럼 그의 작품은 확신 없는 시대가 남긴 애매한 감정들-운동, 사랑, 방황, 체념-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1990년대 청춘들의 복합적 정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김종광의 1990년대 회상 소설의 주인공들은 누구보다 데모현장에 자주 등장하지만, 투쟁의 열정이나 정치적 신념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들은 주로 어리숙한 촌뜨기로 형상화되며, 운동의 엄숙함이나 진정성을 전복시키거나 회화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의 단편소설 「노래를 못하면 아, 미운 사람」의 1990학번 주인공 인관은 이러한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동기들이 자연스럽게 운동권 투쟁가를 부르며 분위기에 녹아드는 가운데, 인관은 뜬금없이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을 부르며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의 등장과 행동은 1990년대 운동권 분위기와 어긋나는 세대적 감수성을 반영하며, 운동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빗겨난 인물의 정서를 대변한다.

이러한 서사 전략은 「전당포를 찾아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당포를 찾아서」는 무현 자신을 포함한 16인의 시선으로 ‘곰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민대학교 2캠퍼스 사학과 신입생 박무현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수억원의 학교 발전기금을 횡령한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에 단골로 참여하는 “추례한 몰골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투쟁의 각오 같은 것이 장착되어 있는 인물이 아니다.

“투쟁의 각오 같은 건 없고요, 그냥……그냥 소값이 개값 되는 시국에 이사장 같은 놈이 있다는 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그냥 화가 나고 그래서……”(김종광, 2003: 96).

이렇듯 무현은 투쟁의 신념보다는 막연한 분노와 감정의 동요로 집회에 참여하는 인물로, 운동을 실천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주변인물로 묘사된다.

무현의 어리숙한 면모는 김종광 소설의 주인공들이 공유하는 특징이자, 1990년대 운동권 세대의 정동적 변화와 단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이다. 한민대학교 1캠퍼스가 위치한 서울로 상경한 무현은 데모에 참여하기 위해 결사대 버스에 동승하지만, 시위 도중 전경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지역에 방치된다. 이후 그는 귀향할 교통비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서울 시내를 방황하며, 전당포를 찾아다니는 일종의 방랑에 돌입한다. 무현이 전당포를 찾지 못한 채 헤매다 결국 파출소의 도움으로 귀가하게 되는 이 일련의 서사는, 운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전략적 실천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며, 1980년대의 영웅적·비장한 운동 서사와는 전혀 다른 결의 감정 구조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무현에 대한 형상화 과정을 통해 김종광은 더 이상 운동이나 시위가 학생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하는 90년대의 상황을 잘 포착해낸다. 한민대학교 2캠퍼스 총학생회의 문화국장인 정철주의 다음과 같은 서술을 통해, 1980년대 운동이 지녔던 집단적 열정과 조직력은 소멸되고, 동원에 대한 피로감과 냉소가 지배적인 정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화염병을 던지자는 것도 아니고, 쇠파이프를 휘두르자는 것도 아닌데 벌떼같이는 아니더라도 천 명 이상은 지원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넘쳐나는 지원자들 중에서 정예로 이백 명만 선발하려 했던 우리들의 예상과 계획을 비웃듯 2캠퍼스 재학생의 0.5퍼센트에 해당하는 오십여 명만이 결사대에 지원해왔다(김종광, 200:93).

이 인용은 1980년대와 같은 급진적 전략이 아니라, ‘온건한’ 시위 방식조차 더 이상 학생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곧, 90년대 청년들의 운동 참여가 이념적 신념이 아닌 감정적 소외와 형식적 동참으로 전환되었음을 상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서사들은 1990년대 청년세대가 경험한 감정의 지형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운동은 더 이상 도덕적 절대성이 아니라, 감정적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위치하며, 일상적 욕망과 충돌하거나 공존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이처럼 정치적 현실 인식과 사적 감정이 중첩되고 충돌하는 국면 속에서, 1990년대 청년들은 ‘실천적 주체’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방황하는 ‘정동적 주체’로 재현된다. 운동의 열정은 연애의 망설임, 시위의 함성은 밤바다에서의 막걸리 한 잔으로 치환되며, ‘모두 함께’라는 대의적 언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개인적 질문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감정 구조의 재배치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닌, 감정의 지형도 자체가 바뀌는 전환 국면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1990년대 초중반 청년들의 감정 구조는 정치와 일상, 공적 의무와 사적 욕망 사이에서의 균형이 아니라, 그 틈새에서 생성된 복합적 정동 상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는 1980년대의 서사와 단절되면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감정의 방향을 새롭게 재배치하고자 했던 세대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3. 정보화와 IMF 외환위기의 충돌: 청춘의 유예와 세대정체성의 재구성

회고적 1990년대 청춘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는, 흔히 ‘신세대’ 담론과 직결되는 정보사회로의 진입이 초래한 소통 방식과 감각 구조의 변화이다. 이 시기 청년들은 PC통신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에서 닉네임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기존의 이념적 언어가 아닌 감정, 유머, 취향 기반의 교류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대중화는 소속보다는 개인, 대의보다는 일상에 집중하게 만들며, 공동체적 연대의 해체와 정치적 탈중심화를 동반하였다. 이러한 정보화 기반의 문화적 전환은 청춘을 ‘개인화된 삶의 프로젝트’로 재구성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고립감과 불확실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동의 흐름 속에서,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결정적인 세대경험으로 작용한다. 외환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를 넘어, 1990년대 청춘들이 구축해가던 자기정체성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이었다. 정규직 일자리는 급속히 줄어들고, ‘명퇴’, ‘실직’, ‘취업난’이 청춘의 일상어가 되면서, 청춘은 더 이상 자기실현의 시간이 아니라, 생존과 유예의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이때부터 청년세대는 정치적 주체라기보다는 시장 경쟁의 잉여인간이자 불안정 노동에 내몰린 소비주체로 재편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세대내적 전환의 문학적 형상화는 1970년대생 작가들의 자기서사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한차현의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2권은 90년 학번 차현이 27살 되는 1997년을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소설 속 화자 차현은 스무 살이 된 90년을 지나 어느덧 스물일곱 살이 된 97년을 맞이하면서 “머잖아 20대와 헤어져 가는 시절”이라 회상한다(한차현, 2017b: 10). 90학번인 그가 1991년과 1997년이 그렇듯 21살과 27살은 분명히 다르다고 하는 데에는 뚜렷한 서사적 전략이 담겨 있다. 1991년은 일명 ‘분신정국’으로 불리는 정치적 격동기였다. 차현에게 1991년은 자신이 속한 세대가 1980년대의 집단적 열정과는 다른 위치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한 해이자, ‘어정쩡하고 야비했던 세대’라는 자기 인식을 형성하는 분기점이었다. 반면 1997년은 IMF 외환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해로, 더 이상 운동의 명분이나 이념이 아닌 생존과 실직, 불안정한 미래가 청춘의 일상을 구성하게 되는 전환의 시점이다.

차현이 기억하는 1997년은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망명 신청, 서장훈의 농구대잔치 MVP 수상, 듀엣가수 전람회의 3집 미니앨범 <졸업>발표와 해체 등 각종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해였다. 또 부채 5조 원을 안고 쓰러진 한보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며 ‘정태수 리스트’에 포함된 여야 정치인 다수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한보 특혜융자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해이기도 하다(한차현, 2017b: 5-6). 작가가 이처럼 시시콜콜한 사건들을 기억의 늪에서 건져내 풀어놓는 것은 그것들이 ‘IMF’라는 국가적 재난의 서막이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지층 아래 환란의 마그마가 꿈틀대던 이 시기에도 직장인이 돼 살아가는 차현의 일상은 여전했고, 은원과의 관계 또한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현은 1990년대 후반은 달라진 것도 많았던 시기였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너무 많은 것들이 “꽃 피웠다 사라져간”시기였다고 회상한다.

PC통신이 등장했고 꽃피웠으며 소리 없이 사라져간 시대. 그 자리에 새롭게 인터넷이 등장한 시대, 삐삐가 등장했고 꽃피웠으며 소리 없이 사라진 시대. 김광석과 변진섭과 서태지가 등장했고 꽃피웠다 사라져간 시대, 그 자리에 H.O.T와 god와 핑클이 등장한 시대. 1990년대 초반이 저 1980년대를 닮았다면 당연히도 1990년대 후반은 장차 우리가 만날 2000년대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습니다(한차현, 2017b: 123).

이처럼 차현은 20대와의 이별을 고해야 할 시점인 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1990년대 초반이 80년대와 닮았다면 1990년대 후반은 2000년대를 닮아가고 있는 시대였다고 말한다. 이는 윤여일이 1990년대는 “시대적 단절과 변화, 그리고 연속”이 공존하는 특징적인 시기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윤여일, 2023).

주인공 차현이 1997년에 경험한 정보화의 진전, 대중음악의 지형 변화 등은 물론 1997년 12월 3일에 도래한 국가부도 상황은 1990년대 후반 한국사회가 직면한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IMF와 함께 1998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연말이 어떻게 지나고 새해가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며, 상황은 갈수록 처참해지는 중이었습니다”라는 차현의 회고에서 확인되듯이(한차현, 2017b: 123), 외환위기의 충격은 단지 거시적인 경제 위기를 넘어 개인의 일상 흐름을 중단시키고, 삶 전반에 불안과 위기의식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하였다.

차현이 “3월 두 번째 월요일. IMF라는 국가적 비극이 내 개인사까지 영향을 미친, 잊을 수 없도록 치명적인 사건”이라 표현했듯, 그의 직장 잡지사에서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단행되면서 살아남은 자들과 죽어나가는 직원들이 말을 잃고 천장만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 해야 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도 50%나 깎기로 했어.” 묻지도 않는 말을 덧붙이는 김 주간의 그 억센 통영 사투리가 그렇게나 기죽어 있기는 처음이었어요. 회사측의 통보 아닌 양해 사항은 대충 그러했으며 통보건 양해건 직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고 말고 할 선택지조차 없었어요. 조 기자와 나, 디자인팀 경미씨, 경리부 옥현씨가 그렇게 빨간 카드를 받아들였습니다. 회의 탁자에 둘러 앉아 말을 잃은 사람들, 살아남은 이들이 고개를 떨어뜨렸고 죽어가는 직원들이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았어요(한차현, 2017b: 135).

여기서 ‘고개를 떨어뜨린자’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 자’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는 IMF 외환위기가 구성한 죄책감, 무력감, 생존자 정체성의 양가성이 응축된 청춘세대의 감정적 풍경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해고 장면을 넘어 국가 재난이 개인의 실존적 위기로 전환되는 문학적 형상화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재난은 특히 청년세대에게는 고용불안과 사회 진입의 지연이라는 형태로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많은 청년들이 군 입대, 휴학, 대학원진학 등의 방식으로 사회 진입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며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청년기를 견뎌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자아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형성해가던 청년기에 깊은 좌절과 불안을 유발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는 ‘IMF 세대’라는 세대적 명칭으로 압축되는 공통의 기억과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대 경험은 동시대 작가 김종광이 <문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가 90학번인데 군대 갔다와 대학을 졸업할 무렵 IMF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있던 사람도 쫓아내는 판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있을 리 없었지요. 대학 홍보물을 제작하는 영세업체에 들어가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단편 ‘열쇠가 없는 사람들’의 배경으로 삼은 곳이지요, 워낙 작은 회사라 오래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다음은 학원에서 국어와 사회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짐을 싸 고향(충남 보령)으로 내려갔지요”(문학뉴스, 2018)7).

김종광의 이 같은 경험은 문학적 형상화로 연결된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하고 소설을 쓰겠다며 시골로 내려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의 짧은 단편 「짬뽕과 소주의 힘」, 국가의 실업구제 정책의 일환으로 마련한 ‘공공경찰선발시험’에 응시한 「공공경찰시험응모기」 등은 1990년대 IMF 외완위기가 몰고온 청년세대의 삶을 유희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특히 「군대 이야기」는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가 군대 경험담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설정을 통해. 당대 청년들이 공유했던 환란의 기억이 세대정체성으로 전화(轉化)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을 ‘IMF 세대’요, ‘환란세대’로 규정하며,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비극이 어떻게 개인의 일상과 정체성에 깊숙이 스며들었는지는 잘 드러내고 있다.

(여)

……우리 세대는 환란세대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 세대가 대학 졸업할 때가 되니까 IMF가 탁 터졌지 뭐예요. 무사히 겪어내고 세월이 한참 지나니까 그것도 세대의 자부심이 되더라고요. 자랑할 게 워낙 없어서 그렇겠지요? 간신히 자리 잡으니까 금융위기로 또 한 번 휘청하고요. 이 정도면 환란세대 맞지요?

(남)

나도 IMF세대예요. 제대하고 복학하니까 나라가 결딴났더라고요. 취직자리는 씨가 말랐고 금모으기 운동이나 하고 있더라고요(김종광, 2010).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대화는 IMF 외환위기를 전후한 청년들의 생애 경험이 단지 개인적 기억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 서사를 통해 사회적·세대적 정체성으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위기라는 국가적 사건이 청년기의 중요한 통과의례로 각인되면서, ‘환란세대’라는 명명은 자조이자 동시에 유일한 자긍심의 언어가 된다. 김종광은 이를 군대, 취업, 시험 등의 일상적 소재로 풀어내며, 위기의 시대를 살아낸 세대의 감정 구조를 유머와 해학을 통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Ⅳ. 결론: 삭제된 역사 의미화하기, 노스탤지어의 정치

1990년대는 대중문화의 확산과 소비문화의 대두로 종종 설명되며, 민주화 이후의 탈정치적 시대, ‘자기계발’과 ‘개인화’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서술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준 서사에서 미처 조망되지 않았던 세대가 있다. 바로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이다. 이들은 ‘386세대’처럼 영웅화된 정치적 정체성을 갖지도 못하고, 90년대 후반 학번처럼 소비의 주체로 상징되지도 않는다. 이 세대는 “그 잘난 팔십 년대 학번에도 못 끼고, 더욱더 잘난, 구십 년대 학번에도 못 끼는” 경계인의 위치에 놓여 있으며, 스스로를 “시대가 외면한 세대”, “참 불행한 학번”으로 정체화한다(김종광, 2002: 55; 한차현, 2017b: 142).

이들의 문학에는 이러한 세대적 소외감과 정치적 좌절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다. 특히 1991년 강경대의 사망과 분신정국, 한총련의 마지막 투쟁 등은 이들이 공유하는 핵심적인 역사적 기억으로 기능하며, 이 기억은 단지 회상되는 과거가 아니라, 세대정체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장면이 된다. 문제는 당시 청년세대의 격렬한 투쟁과 수많은 죽음이 있었음에도 이 기억이 공식적인 역사 서사 속에서는 삭제되거나 축소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세대의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에서 해당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호출하고 의미화하는 행위는, 삭제된 역사의 재기입이자 문학을 통한 사회적 기억 형성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하노 크노흐(Hanno Knoch)는 노스탤지어를 단순한 과거 회귀의 감정이 아니라, 공유된 감정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감정의 공동체라고 설명한다(크노흐, 2014). 즉, 특정 세대가 공유한 경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집단적 연대감은 노스탤지어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며, 그 감정의 표현은 하나의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다. 이 세대의 문학적 기억행위는 사후적이면서도 현재적인 자기 성찰이며, 소실된 기억의 보충과 창조적 재구성을 통해 과거를 다시 의미화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탄생하는 기억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자기 해석의 결과로 나타나는 ‘기억의 수정본’이자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재서술의 한 방식인 것이다(김남옥, 2016: 256).

결국 이 세대의 문학에서 드러나는 노스탤지어는 과거로의 감상적인 회귀가 아니라, 세대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사적 존재로서 세대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노스탤지어의 정치’다. ‘386세대’가 민주화의 주역으로 사회적 기억에 편입되었다면, 구공학번은 자신들이 경험한 투쟁과 감정을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적으로나마 공적 기억으로 전환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는 시대적 단절 속에서 배제된 세대가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일종의 기억투쟁이며, 문학은 그 투쟁의 장이자 도구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들의 노스탤지어는 단지 복고적 감상이 아닌, 성찰적 노스탤지어의 장치로 삭제된 세대의 기억을 재정립하려는 정치적 실천으로 해석해야 한다. 문학은 이들에게 있어 ‘잊힌 세대’를 다시 기억 속에 호출하고, 상실된 역사의 자리를 스스로 채워나가는 감정적·정치적 행위의 장이며, 동시에 세대의 자기 정의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90년대 초반 학번 작가들의 문학은 감정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적 기억의 서사 속에서 자기 존재를 의미화하려는 시도로, 노스탤지어의 새로운 정치성을 드러내고 있다.

Notes

이 논문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22S1A5B5A17049733).

문학적 노스탤지어와 관련한 이론적 내용은 김남옥, 2016, “80년대 청춘의 초상(肖像): ‘386’ 세대 정체성과 문학적 노스탤지어”, 『사회사상과 문화』 19권 2호 참조.

이는 새로운 문화종(文化種)의 출현, 즉 ‘신세대, X-세대’ 담론의 배경이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은 서태지의 시대였다”는 언설에서 알 수 있듯, 서태지는 신세대의 아이콘이 되었고, 아이돌음악의 전성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의 르네상스를 여는 또 하나의 증후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의 흥행, 드라마 <모래시계>의 인기 등을 들 수 있다. 그야말로 1990년대는 대중문화의 전성기이자 대중문화 담론의 전성기였던 것이다(한겨례21, 2020. 05. 20.).

이와 관련한 내용은 김남옥(2010), “‘386’세대 경험의 문학적 형상화:김인숙, 공지영을 중심으로”, 『사회와 이론』 16집과 김남옥(2016), “80년대 청춘의 초상(肖像):‘386’ 세대 정체성과 문학적 노스탤지어”, 『사회사상과 문화』 19권 2호 참조. 본 연구는 이러한 선행연구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하는 후속 작업이다.

2017년에 출판된 한차현의 장편소설,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1, 2권은 2011년에 출판된 『사랑, 그 녀석』의 증보판이다.

한차현 작가는 『사랑, 그 녀석』,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1, 2권에서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사용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섬세하게 넘나든다.

이는 계간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통권 44호 참조.

문학뉴스, “나는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 2018. 01. 02. (https://www.munha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58, 마지막 검색: 20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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