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아감벤의 세속화 개념을 통해 본 도시재생 전략: 철암탄광역사촌을 중심으로*

양소연 1 , **
So Yeon Yang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양소연_국제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soyeony@gmail.com)
1Gukje Cyber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soyeony@gmail.com

© Copyright 2026, The Law Research Institute,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r 01, 2026; Revised: Mar 12, 2026; Accepted: Mar 19, 2026

Published Online: Mar 31, 2026

국문초록

본 연구는 철암탄광역사촌을 산업유산 도시재생 사례로 보고, 아감벤의 장치(dispositif), 세속화(profanation), 동시대성(contemporaneity) 개념을 중심으로 공간의 의미 구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폐광 이후 조성된 철암탄광역사촌은 탄광촌의 생활 환경과 산업 기억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형성되었으나, 단순한 역사 재현 공간을 넘어 정책, 관광, 지역 기억이 결합된 복합적 공간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연구는 문헌 분석과 사례 분석을 통해 철암탄광역사촌의 형성 과정과 공간 구성 방식을 검토하고, 장치 개념을 적용하여 산업유산 전시 구조의 의미 생산 방식을 분석하였다. 또한 아감벤의 세속화 개념을 통해 전시 중심의 공간 구조가 주민의 생활 경험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사용 가능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나아가 동시대성 개념을 적용하여 산업유산 공간이 과거의 재현을 넘어 현재를 재인식하게 만드는 시간적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철암탄광역사촌은 산업화 기억을 제도적으로 재구성하는 장치로 작동하는 동시에, 생활 공간과 전시 공간의 중첩 구조를 통해 세속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간극을 드러내며 동시대적 의미를 형성하는 특징을 보인다. 본 연구는 산업유산 도시재생을 단순한 보존 전략이 아니라 의미 생산의 문화적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장치 개념을 통해 산업유산 공간 연구의 이론적 확장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Cheoram Coal Mine History Town as a case of industrial heritage-based urban regeneration and analyzes the process of spatial meaning construction through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dispositif, profanation, and contemporaneity proposed by Giorgio Agamben. The Cheoram Coal Mine History Town, developed after the decline of the coal industry, functions as a cultural space that represents the living environment and industrial memories of a mining community. However, beyond a simple historical exhibition site, the space has evolved into a complex structure where policy discourse, tourism strategies, and local memories intersect.

This study employs literature review and case analysis to examine the formation process and spatial composition of the site. By applying the concept of dispositif, the research analyzes how institutional exhibitions organize and reproduce specific historical narratives. Furthermore, the concept of profanation is used to interpret how everyday experiences of local residents interact with exhibition structures, creating new modes of spatial use. The study also applies the concept of contemporaneity to explore how industrial heritage spaces generate temporal layers that reconnect the past with present experiences.

The findings suggest that the Cheoram Coal Mine History Town operates as a cultural dispositif that institutionalizes industrial memory while simultaneously containing the potential for profanation through the coexistence of exhibition and everyday life. This spatial structure reveals temporal gaps between past and present, thereby producing contemporaneity as a cultural experience. This study contributes to expanding theoretical discussions on industrial heritage by interpreting urban regeneration not merely as preservation but as a dynamic process of meaning production.

Keywords: 철암탄광역사촌; 아감벤; 세속화; 장치; 동시대성
Keywords: Cheoram Coal Mine History Town; Agamben; Dispositif; Profanation; Contemporaneity

I. 서론

도시재생은 지역 쇠퇴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전략으로 자리 잡아 왔다. 특히 탄광지역은 산업 구조 변화와 함께 급격한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붕괴를 경험하면서 산업 유산을 관광 자원화하거나 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재생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재생 사업은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함께, 산업 유산 공간의 단순한 전시 공간화에서 나아가 현재의 삶과 연결된 공간으로 재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동시에 제기한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 지역은 석탄산업 호황기 동안 형성된 대표적인 탄광촌으로, 폐광 이후 급격한 지역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50~ 1980년대 한국 석탄산업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나, 1989년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급격한 쇠퇴를 겪었고 폐광 이후 주민들의 이탈과 공동체 붕괴가 이어지면서 지역은 ‘죽은 공간’으로 방치되었다(채수홍, 2004). 이러한 상황에서 90년대 이후 지역 주민, 시민단체, 건축가 및 예술가로 구성된 지역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철암 지역을 문화적으로 재생하고자 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시도하면서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조성하려는 구체적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암의 재생 방향을 두고 폐산업 시설과 유휴 공간 활용에 초점을 둔 공공사업 중심의 재생과 지역 경제 개발을 원했던 주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지역은 분열을 겪었고, 마을을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기획은 실행 과정에서 주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 좌절되었다(채수홍, 2004). 이러한 우여곡절이 지지부진 이어지던 끝에 태백시는 2004년 수립한 탄광지역 생활 현장 보존 복원 사업 기본계획에 의거해 2014년 3월 철암탄광역사촌을 개관했다(배은석, 2023). 철암탄광역사촌은 폐광 지역에 남은 산업 유산을 지역 재활성화 추진을 위한 자원으로 삼아 조성된 산업 유산 공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철암탄광역사촌은 단순한 산업 유산 전시 공간에 머물지 않고, 실제 주민의 생활 공간과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 산업 유산 박물관과 차별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산업 유산이 제도적 재현의 장치로 작동하는 동시에 일상적 경험과 접촉하는 복합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론적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장치(dispositif), 세속화(profanation), 동시대성(contemporaneity) 개념을 중심으로 철암탄광역사촌의 공간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아감벤은 장치를 인간의 행위와 사유를 조직하는 권력적 구조로 보면서, 장치에 의해 분리된 것을 다시 사용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세속화를 장치에 대응하는 실천으로 제시한다. 또한 동시대성 개념을 통해 현재를 인식하기 위한 시간적 간극과 시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의는 산업 유산 공간이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문화적 장치임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특히 철암탄광역사촌은 과거 탄광촌의 생활 흔적을 전시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주민의 일상이 지속되는 생활 공간이라는 점에서 장치와 세속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철암탄광역사촌이 산업 유산 전시 공간으로서 어떠한 장치적 특성을 갖는지를 분석하고, 전시와 생활이 교차하는 공간 구조 속에서 세속화의 가능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검토한다. 나아가 이러한 과정이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간극을 드러내며 동시대적 인식을 형성하는 방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문헌 분석과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철암탄광역사촌의 형성과 전시 구조, 공간 활용 방식을 검토하고, 아감벤의 이론적 개념을 적용하여 산업 유산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이를 통해 산업 유산 도시재생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철학적·문화 이론적 접근을 보완하고, 산업 유산 공간의 동시대적 활용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II. 이론적 논의

1. 아감벤의 장치와 세속화

아감벤은 장치(dispositif)를 푸코 사유의 본질을 드러내는 용어(Agamben, 2006: 22)로 꼽는다. 그리고 푸코의 저작에서 산발적으로 언급되었던 장치 개념을 종합해 인간의 행위와 사유를 조직하고 주체를 생산하는 보편적 구조로 정의한다. 아감벤은 장치가 단순한 권력기술을 넘어 권력관계 속에 기입되는 모든 것으로서 담론, 제도, 건축물, 법, 경찰 조치, 철학적 명제 등 권력관계와 지식 관계의 교차로 생겨나는 모든 것의 이질적 집합(Agamben, 2006: 17)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푸코의 장치 개념이 통치와 관리와 관련된 모든 총체인 오이코노미아를 참조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장치가 갖는 통치 역량과 함께 주체화 생산 과정으로서 장치의 메커니즘을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Agamben, 2006: 28). 규율사회의 순종적인 자유로운 신체는 장치를 통한 일련의 실천, 담론, 앎,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푸코의 분석을 통해 장치란 무엇보다 주체화를 생산하는 하나의 기계이기에 통치 기계이기도 하다고 아감벤은 분석한다(Agamben, 2006: 41). 아감벤은 푸코의 장치 개념을 일반화해 “생명체들의 몸짓, 행동, 의견, 담론을 포획, 지도, 규정, 차단, 주조, 제어, 보장하는 능력을 지닌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장치”로 정의하며 글쓰기, 농업, 인터넷서핑, 컴퓨터, 그리고 언어도 권력과 접속된 장치(Agamben, 2006: 34)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는 산업 문화유산의 전시에 내포된 기억과 경험을 조직하는 장치적 메커니즘을 살펴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아감벤은 자본주의 권력 체제하에서 무한 증식하고 있는 장치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로마법의 세속화를 제시한다(Agamben, 2006: 35). 아감벤은 로마의 법이란 결국 기본적으로 신들에게 속한 것인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규정이라고 보면서 종교적인 것에서 인간이 사용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것들로 되돌리는 세속화 개념에 주목하고 장치들에 의해 포획 분리된 것을 해방시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일반적으로 세속화는 종교적 권위의 약화를 의미하지만, 아감벤에게 세속화는 분리된 것을 다시 사용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행위로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아감벤에 따르면 종교는 사물과 공간을 일상의 사용에서 분리하여 신성한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체계이며, 장치는 이러한 분리 구조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낸다. 종교의 희생 제의가 신의 세계라는 분리된 영역으로 옮기는 장치라면, 세속화는 이렇게 분리 분할된 것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돌리는 역장치로 주체를 포획하는 장치를 무력화시킨다(Agamben, 2006: 40). 아감벤은 신성모독의 본질은 신에게만 부여된 사용 가능성에 대한 위반이나 침해라 보면서 세속화란 결국 인간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돌려주는 것(Agamben, 2005: 108)이라고 언급한다. 아감벤의 분석을 실천적 차원에서 보자면 세속화란 담론, 제도, 규칙 등을 통해 주체의 삶과 분리되어 추상화된 것들을 다시 인간의 경험 속으로 돌려놓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이 세속화의 대표적 방식으로 설명한 놀이의 예에서 보듯, 놀이는 그것이 유래한 제의의 규칙을 유지하면서도 본래의 목적에서 분리되어 나와 새로운 사용을 창출한다. 놀이의 경우 제의라는 장치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유를 규정하고 통치해 왔던 제의의 형식을 새롭게 사용하고 경험함으로써 그것이 갖는 규율 권력을 전복시킨다는 것이다(Agamben, 2005: 111). 즉 세속화란 장치가 갖는 기존 기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의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이는 권력 구조의 단순한 전복이 아니라, 사용 방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실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2. 세속화의 실천적 전략으로서 동시대인 되기

아감벤은 모든 장치에는 각각 정해진 주체화 과정이 대응하기 때문에 주체가 장치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Agamben, 2006: 44)고 언급하며, 장치의 포획에 맞서는 유일한 전략은 장치의 새로운 사용과 경험하기임을 강조한다. 주체는 장치와 관계 맺기를 통해 형성되기에 개인의 의지로 장치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보면서 장치의 포획에 맞서는 유일한 전략은 장치를 세속화하는 것 즉 새로운 사용과 경험의 방식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철암탄광역사촌과 같은 산업 문화유산이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관광 자원으로만 소비될 경우 기억은 다시 제도화된 장치로 고정되지만, 주민의 생활 경험과 관람객의 새로운 향유가 만날 때 새로운 문화적 실천으로서 세속화가 가능해진다. 세속화는 이러한 장치의 기능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비작동 상태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사용 가능성을 열어주는 과정이다. 즉 세속화는 장치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목적성을 해체하는 실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의 세속화는 동시대인 되기를 통해 더욱 실천적 함의를 갖게 된다. 세속화가 새로운 가능성의 인식과 그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실천이라고 본다면, 그러한 새로움 혹은 다른 잠재성에 대한 포착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를 논하며 동시대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니체가 말한 반시대적인 것을 언급하며 동시대성을 단순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시대와 맺는 관계라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강조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기 위한 시차 혹은 단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Agamben, 2006: 71). 아감벤은 이러한 시간의 어긋남과 시차를 시대의 어둠 혹은 암흑으로 표현하며, 현재를 인식하게 하는 문턱으로서 과거와의 시차 속에 현실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고 설명한다. 자기의 시대를 인식케 하는 문턱을 의고성(擬古性)의 지표나 표시라 언급하며 이를 지각하는 자만이 동시대인이 될 수 있다(Agamben, 2006: 83)고 말한다.

신에게만 속한 것을 공통의 것으로 돌린다는 것이 현실의 상황에서 ‘기존의 용도와 다른’ 혹은 ‘새로운’ 사용의 발견과 적용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다름 혹은 새로움은 결국 과거와의 다름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세속화의 과정은 이 시대와의 단절을 드러내는 표시의 인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대적 인식이란 현재와의 거리 속에서 시간의 어긋남과 시차를 통해 현재를 재해석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삶의 공간에서 과거의 삶을 드러내는 철암탄광역사촌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역 장치로 작동한다. 과거의 향수에 고착되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서로 재구성함으로써 ‘아직 아님’과 ‘이미’의 문턱으로서 새로운 접촉을 열어나간다고 볼 수 있다. 아감벤은 현재는 체험된 모든 것 속에 남아 있는 체험되지 않은 몫과 다르지 않다고 보면서, 체험되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동시대인의 삶이며,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있어보지 못한 현재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Agamben, 2006: 85)고 말한다. 현재에 남아 있는 어둠을 봄으로써 우리는 시차와 간극을 인식하고 자신의 감각으로 시간을 분할하고 가필함으로써 시간을 변형할 수 있게 된다는 아감벤의 언급대로 그것은 역사를 미증유의 방식으로 읽는 것(Agamben, 2006: 87)으로서 장치화된 과거에 대한 담론을 세속화하는 실천인 것이다.

Ⅲ. 장치로서의 박물관과 철암탄광역사촌

1. 철암탄광역사촌의 탄생

철암탄광역사촌은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일대 다방, 술집, 식당 등의 가게와 가정집이 섞여 있던 시장 거리의 오래된 건물에 위치해 있다. 낡은 건물을 허물지 않고 간판과 외형을 그대로 둔채 일부 공간을 전시 시설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일부 리모델링한 건물 내부는 과거 탄광 마을과 관련된 생활 물품이나 생활을 재현한 구조물,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식당이나 카페로 운영되고 있어 일상과 전시가 뒤섞여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탄광 마을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생활사 박물관이라 볼 수 있으며(윌크스·켈리, 2008), 자연, 생태, 산업을 포함한 특정 지역의 생활 유산이 박물관 전시물이 되고 주민들이 자발적 운영에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에코뮤지엄(배은석, 2023)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현재의 생활 공간 속에 과거 삶의 전시가 이루어지는 독특한 공간이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표적 탄광 마을 철암이 처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1960~1980년대 국내 석탄산업의 중심지로 광산 노동자와 가족들이 밀집한 대표적 탄광 마을이라는 점이 다른 변화의 계기를 가로막아 역설적으로 과거 탄광 산업 지역의 모습을 가장 마지막까지 간직하게 했기 때문이다. 철암 지역은 ‘태백 중의 태백’이라 불릴 정도로 도내 인근 탄광지역에서 가장 잘 나가던 동네(채수홍, 2004: 64)였지만,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탄광이 단계적으로 폐광되면서 지역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었고, 인구 감소와 상권 붕괴 등 폐광으로 인한 지역 쇠퇴의 직격탄을 맞았다. 철암 지역의 경우 정선이나 사북 등 다른 지역과 달리 폐광지역 활성화를 위한 관광·레저 사업이나 지역특화 사업 등 정책 사업에서 배제되면서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90년대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철암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탄광 마을의 정체성을 지역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 시민단체와 철암 지역에 관심을 가졌던 철암세상이라는 건축가 집단이 사전 조사 끝에 2001년 철암 전체를 탄광촌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배은석, 2023), 문화관광부가 이를 수용해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기도 했다(박준식, 2019). 실제 마을 주민들이 에코뮤지엄 구축을 위해 해외 답사까지 다녀왔지만, 외지인이 중심이 되어 폐산업 시설과 유휴 공간을 활용하려는 공공사업 중심의 재생 비전과 지역 주민의 지역경제 개발 중심 재생을 위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결실을 보지 못한 채 계획은 무산되었고 배정된 정부 예산은 반환되었다(배은석, 2023; 채수홍, 2004; 박준식, 2019). 전체를 보존하려던 건물과 시장은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까치발 건물이라 불리던 시장 건물 일부를 그대로 남겨 2014년 철암탄광역사촌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2. 철암탄광역사촌 전시 구성

철암탄광역사촌은 철암시장의 상가 건물을 본래의 외관을 남겨두고 내부 공간을 리모델링해 과거 탄광촌의 생활 환경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원래 11개였던 건물 중 6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철암탄광역사촌1)은 겉모습만 보면 페리카나 치킨, 호남슈퍼, 봉화식당, 한양다방 등 오래된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이 전시 공간임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전시 공간은 관리사무소, 기획 전시실, 관광객 쉼터, 복합 문화공간, 전망대 등의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래된 상가 건물 자체가 전시물이기도 하다. 건물 내부에는 과거 광부 가족들이 사용했던 가재도구와 일상용품, 그들의 삶의 순간을 담은 사진들, 각종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고, 탄광 마을 골목과 가정집 부엌, 선술집 내부 등을 재현해 광부의 노동과 가족의 일상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 공간인 철암 시장 건물은 일명 ‘까치발 건물’이라고 불리는데 당시 탄광 산업 호황기의 몰려든 이들이 처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주거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외관과 구조를 보여준다(<그림 1>).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와 그 가족들이 살고 있던 시장 거리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이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해졌고, 사람들은 주변 폐자재 등을 임시변통해 필요에 따라 얼키설키 공간을 늘려갔다. 건물 뒤편에서 보면 제각각의 건축 자재들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덧대어 있고 그 아래는 까치발이라는 이름처럼 얊은 지지대가 건물을 받치고 있다. 1, 2층은 상가로 사용하고 천변으로 연결된 지하 공간을 주거 시설로 이용했던 건물은 현재는 안전상 문제로 들어가 보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한 사람이 겨우 내려갈 수 있는 정도의 계단을 내려가면 화장실도 없는 방 한두 칸 짜리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의 건물은 이곳이 단순한 전시 시설이 아니라 실제 생활 흔적을 기반으로 한 공간임을 한 눈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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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철암탄광역사촌 건물 모습 건물 뒤편 까치발 건물 앞 전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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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탄광역사촌의 공간 구성은 크게 전시 공간, 생활 재현 공간, 문화 체험 공간으로 구분된다. 전시 공간에서는 석탄산업의 역사와 광부의 노동 과정을 사진, 기록물, 생활 도구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생활 재현 공간에서는 탄광촌 주민들의 주거 환경과 생활 문화를 재현해 보여준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일부 공간에서는 지역 문화 프로그램과 관광 체험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관광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재현 공간인 호남슈퍼 2층은 ‘철암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탄광촌 마을의 일상을 보여준다. 2층에 올라서면 유리벽 뒤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은 선술집이 바로 눈에 띈다. 좁은 식당 안 드럼통을 개조한 식탁에 앉은 광부들은 돼지고기를 굽는 불판을 가운데 두고 강원도 지역 소주인 삼호 소주를 마시고 있다. 전시를 안내하는 마을 해설사는 식당 주인은 광부의 아내이기도 해서 오는 손님들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누가 얼마를 낼 것인지까지 정해주고 술값을 받을 정도였다는 설명을 덧붙이는데, 이는 작업장에서의 노동 위계가 지역 사회의 계급화로 이어진 당시의 상황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게 한다. 집안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는 남편이 월급을 받으면 주부들이 경쟁하듯 사들였다는 재봉틀과 텔레비전, 전축 등 당시에는 고가의 전자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거 환경은 열악했지만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비해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았던 광부 가정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소비 생활이 가능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전시 공간과 실제 주민 생활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철암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방문객은 전시 동선 속에서 현재의 생활 환경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산업 유산 박물관과 달리 생활과 전시가 중첩되는 공간 구조를 형성하며,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드러나는 복합적 장소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철암탄광역사촌이 단순한 역사 재현 공간을 넘어, 현재의 삶과 기억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태백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철암탄광역사촌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도시재생 정책과 관광 전략 속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지역 해설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 등을 통해 산업 유산의 의미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 유산의 관광 자원화 과정에서 기억의 선택적 재현과 공간의 기능적 고정이라는 한계도 제기된다. 이는 산업 유산 공간이 단순한 보존 대상이 아니라 정책과 문화 담론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공간임을 시사한다.

Ⅳ. 철암탄광역사촌의 세속화와 동시대성

1. 일상의 접촉을 통한 세속화

아감벤은 박물관을 사용하기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전형적 공간으로 언급하며 박물관이 갖는 절대적 세속화의 본질을 비판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사용할 수도 없고, 그 공간에서는 거주할 수도 없으며 어떤 경험도 불가능한 공간으로 희생제의 장소인 신전과 공간과 기능에서 동일하다고 지적한다(Agamben, 2005: 122). 한때 시장 상가 건물이었던 공간에 탄광 산업 호황기의 일상사를 전시하고 있는 철암탄광역사촌 역시 박물관으로서 장치의 본질을 갖는다. 삼겹살과 돼지 껍데기에 소주 한 병 올려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식당의 모습, 경제 발전을 이끈 산업 전사로 포장된 사망 노동자 기념 전시물, 소위 말하는 막장 인생이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 고임금 해외 취업의 기회임을 강조하는 파독 광부의 모집 공고나 급여 관련 문건, 중산층 삶이 엿보이는 가전제품 등의 전시물은 탄광 산업의 식민성, 국가와 자본의 이중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 전형적인 성과급제인 도급제 임금 체계, 모광, 조광, 하청업체로 구분된 이중적 구조(정헌주, 2004) 속 노동의 현실은 보여주지 않는다. 마을 해설사의 향수 어린 목소리에 드러나듯 전자 제품 판매량이 전국 수위에 들었고, 자녀들 대학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안정된 경제생활의 흔적은 자랑스레 전시되고 있지만, 강원도 내 탄광지역 중에서도 태백 중 태백이라고 할 만큼 탄광 산업 의존도가 높았던 철암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폐광의 직격탄을 맞고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간의 특성상 노동은 고되지만 상대적 고임금으로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생활, 대한민국 경제성장기를 이끈 산업역군, 목숨을 내놓고 일한 아버지의 희생으로 유지된 안정된 가정 등 ‘산업 전사 아버지’의 이미지를 통해 국가와 언론이 바라보는 탄광 산업 담론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처럼 철암탄광역사촌은 박물관으로서 장치화의 속성도 갖고 있지만 과거를 미화한 향수를 팔기보다 주민의 일상적 삶과 연계(배은석, 2023: 40)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속화의 역량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철암탄광역사촌은 단지 구 철암시장 건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주민의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리 전체가 관람 동선에 포함되어 박물관이 가질 수밖에 없는 절대적 세속화의 문제를 비껴간다. 마을 주민이 전시 해설사를 담당하고 있는 관람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관람은 탄광역사촌의 주요 전시 공간인 까치발 건물 입구에 모여 주변 전경을 둘러보는 데서 시작한다. 까치발 건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건물 뒤편 하천 다리에서 건물과 함께 하천 건너편 언덕 위 탄광노동자 마을이자 골목 벽화와 석탄 노동자 조형물로 유명한 삼방마을을 바라보며 전시 주제인 탄광 마을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또한 관람 프로그램 중에는 전시관이 있는 건물 옥상에 올라 건너편 철암역두 선탄장을 바라보게 되어 있어 선탄장 시설물 자체가 하나의 전시물임을 알 수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의 전시는 전시관 내 과거 생활 물품이나 사진과 영상 아카이브, 삶의 모습을 재현한 구조물과 조형물뿐만 아니라 여전히 삶의 현장이자 산업 유산이 되어버린 마을 전체를 포함하고 있어, 사용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 전시물들이 일상 속에서 새로운 접촉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

아감벤은 세속화의 가장 단순한 형태를 접촉(Agamben, 2005: 109)이라고 언급하는데, 건물 내 전시된 물품만이 관람 대상이 아니라 전시관 건물, 주변 시설과의 입지 환경 등 철암마을 생활 자체가 전시인 철암탄광역사촌은 관람을 위해 거리를 걷는 행위 자체가 세속적인 감염과 접촉을 일어나게 한다. 전시 관람의 과정은 아감벤이 말한 세속화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전시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이나 목적으로 타자에 의해 규정된 고정된 존재 방식을 넘어 새로운 사용, 새로운 경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 시간의 간극과 동시대성

페리카나치킨 2층 기획 전시실에 전시된 탄광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60, 70년대 노동자 가정의 누추하고 열악한 모습만을 재현하지 않는다. 월급날을 찍은 사진에서 아이까지 들쳐 업고 사무실을 빽빽이 메운 파마머리를 한 여성들의 뒷모습은 3교대로 돌아가는 고된 노동 체계 안에서 월급을 받으러 갈 시간도 제대로 맞추기 어려운 노동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급히 찍은 듯 일부 초점이 흐려진 사진에는 월급 수령조차 전날 새벽부터 줄을 서 경쟁해야 했던 탄광촌 주민들의 분주하면서도 초조한 몸짓이 표현되어 있기에 여전히 현행적이고 긴급한 시간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의 석탄산업 호황기를 거치며 형성된 상가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에 전시된 생활 물품 혹은 그것을 재현한 전시물은 과거 그 물건이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시대, 그리고 생활용품이 아닌 전시물로 재현된 이후의 시간, 그리고 그것을 관람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한꺼번에 뒤섞어 버린다. 아감벤은 동시대성을 시차와 시대착오를 통해 시대에 들러붙음으로써 시대와 맺는 특별한 관계(Agamben, 2017: 72)로 설명하며 현재를 인식하기 위한 시간의 단절과 간극의 역량에 주목하고 있는데, 철암탄광역사촌은 과거와 맺는 특별한 관계로서 이러한 동시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아감벤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재는 ‘아직 아닌’ 이거나 ‘이미’의 형태로밖에 포착되지 않는다(Agamben, 2017: 79)고 언급하며 자기 시대의 인식을 위해서는 시간의 어긋남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과거와 미래 그 어딘가에 있을 뿐인 현재의 포착을 위해서는 니체가 말한 자기 시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반시대적인 것, 시대착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Agamben, 2006: 71). 철암탄광역사촌은 아감벤이 말한 현재의 시간 즉 ‘아직 아님’과 ‘더 이상 아님’의 포착할 수 없는 문턱(Agamben, 2006: 81)으로서 과거의 흔적을 통해 현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석탄산업 호황기인 6~70년대를 주로 표상하지만 그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간 운영만을 보더라도 오래된 건물 대부분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일부는 간판 그대로 여전히 식당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 리모델링을 해 카페로 운영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전시 공간은 과거 철암시장 가게의 간판을 그대로 둔 채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를 지각하게 하는 의고성의 지표나 표시(Agamben, 2006: 83)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한양다방에 들어가면 과거의 사진 등 미디어 전시물, 호남슈퍼 옆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광부들이 술 한 잔 기울이던 선술집과 마을 골목길이 재현되어 있다. 이제는 시골 어디를 가도 찾기 어려운 다방과 슈퍼뿐만 아니라 지역 상권의 핵심인 농협 은행마저도 파독 광부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의 일상을 보여주는 간판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의고성의 지표가 되어 그 시대의 어둠을 지각하게 한다. 아감벤은 어둠을 지각한다는 것은 관성이나 수동성의 형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암흑을 발견할 수 있는 특수한 활동이자 능력(Agamben, 2006: 76)이라 설명하며,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현재의 어둠 속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려 애쓰지만 그럴 수 없는 빛을 지각하는 것(Agamben, 20106: 78)이라고 언급한다. 철암탄광역사촌의 전시물들은 과거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데 머물지 않고 과거의 공간을 통해 시대의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시대성을 인식하게 한다.

아감벤은 현재에 대한 인식 불가능성을 패션 유행을 통해 설명한다.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인 유행은 누구도 유행이 시작된 순간을 정확히 식별해 낼 수 없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유행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렇게 입는 방법을 알아보고 그렇게 옷을 입는다는 사실에 달려 있듯이(Agamben, 2006: 81),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음은 과거와 단절된 간극을 통해 현재를 인식하고 그 시간과 공간을 살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철암탄광역사촌은 탄광 마을의 ‘더 이상 아님’을 드러냄으로써 ‘아직 아님’ 사이의 포착할 수 없는 문턱을 체험하게 한다. 아감벤의 언급대로 현재는 체험된 모든 것 속에 남아 있는 체험되지 않은 몫과 다르지 않다(Agamben, 2006: 85)고 본다면 철암탄광역사촌에 아카이빙된 과거 주민들의 생활 물품들은 과거엔 체험되지 않은 것으로서 현재의 것이 된다. 또한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이 체험되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우리가 결코 있어 보지 못한 현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체험해 보지 않은 시간을 과거의 표시인 생활 물품, 생활상을 담은 미디어 재현물을 관람하는 것은 시간을 분할하고 가필함으로써 시간을 변형하는 동시대성(Agamben, 2006: 85)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관람자들은 동시대인이 되어 철암탄광역사촌의 전시물들이 전시물의 시간을 다른 시간과 관련지을 수 있게 된다. 아감벤이 동시대인을 역사를 미증유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고, 그것을 필연에 따라 ‘인용할’ 수 있는 자(Agamben, 2006: 87)라고 정의하고 있듯이 삶의 현장 속에 ‘지금 여기’에 있는 탄광 마을의 흔적 속에서 새로운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아감벤의 언급대로 감정과 사유가 현존하려면 누군가 그 책을 집어 들고 읽어야 한다(Agamben, 2005: 103)면, 과거 삶의 공간 속에 전시된 물품과 사진들은 감정을 느끼고 사유하게 하는 텍스트이며 관람객들은 그것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주체로 현존할 수 있게 된다. 주체는 어딘가에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향유되어 왔던 장치들과의 마주침으로부터, 직접적인 대면으로부터 생겨나는 것(Agamben, 2005: 104)이기 때문이다.

Ⅴ. 결론

본 연구는 철암탄광역사촌을 산업 유산 도시재생 공간으로 이해하는 기존 접근에서 나아가, 장치로서의 공간 구조와 세속화의 가능성, 그리고 동시대적 의미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아감벤의 장치, 세속화, 동시대성 개념을 이론적 틀로 적용하여 산업 유산 공간이 갖는 권력적 재현 구조와 문화적 실천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분석 결과 철암탄광역사촌은 과거 탄광촌의 생활 공간과 기억을 전시하는 박물관적 구조를 통해 산업화 시대의 서사를 재현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었다. 특히 광부의 노동과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시 구조는 국가 산업화 담론과 결부되어 특정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재현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철암탄광역사촌은 산업 유산을 제도적으로 조직하는 문화적 장치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철암탄광역사촌은 주민의 생활 공간과 전시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치의 고정된 의미 구조를 넘어서고 있었다. 전시 공간과 일상 공간이 접촉하는 관람 방식, 주민 해설 프로그램, 생활 공간의 지속적 활용 등은 아감벤이 말한 세속화의 실천 가능성을 드러낸다. 즉, 산업 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사용 방식 속에서 재해석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철암탄광역사촌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간극을 드러내는 공간으로서 동시대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전시물과 생활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는 ‘이미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교차시키며 관람자가 현재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이는 산업 유산 공간이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재해석하는 문화적 매개 공간으로 작동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철암탄광역사촌은 장치로서의 산업 유산 공간이 세속화를 통해 새로운 사용 가능성을 생성하고 동시대적 의미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석은 산업 유산 도시재생을 전시 중심의 보존 전략에서 벗어나 생활과 경험의 실천 공간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주민 참여 방식과 지역 문화 실천의 변화 과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산업유산 공간의 동시대적 전환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Notes

*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24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4S1A5B5A16027532).

1) 태백시. (2024, 1월 25일). 까치발 건물을 아시나요?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대한 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ba705763-e220-420d-8cd6-5dc7413ff7be. (검색일: 2025/01/09).

2) 지역N문화, 철암탄광역사촌, https://ncms.nculture.org/coalmine/story/3810 (검색일: 2026/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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