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감옥은 한 사회의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억압과 규율이 혼재된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1) 감옥은 일반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독립된 시․공간 체제를 지닌 하나의 사회적 장(social field)으로 존재한다. 이 장은 정상과 비정상(혹은 일탈)이라는 이항대립적 표상체계를 기반으로 ‘정상화’를 재생산하기 위해 구축된 사회물리적 공간이다. 이때 정상성(normality)은 한 사회의 특정한 질서메커니즘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되는데, 주로 법, 도덕, 규범, 제도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동시에 이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이때 폭력은 벤야민의 표현대로 법정립적 성격을 띤 ‘신화적 폭력’이다. 신화적 폭력은 ‘경계를 설정하고 죄를 부과하며 동시에 속죄를 시키고 위협적이며 피를 흘리게 하는’ 힘(Macht)이다(벤야민, 2008: 111). 따라서 이 폭력은 물리적, 상징적 형태로 기존 제도나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들에게 특정한 징벌을 가하는 사회적 힘으로 행사된다. 그리고 감옥은 이 힘을 행사함으로써 위반자들을 감금하고 교정하여 다시 ‘정상화’시키거나 사회질서의 수호자로 만든다.
질서는 폭력을, 거꾸로 폭력은 질서를 전제하면서 자신의 실재를 증명한다. 초자아가 존재하려면 이드(id)를 억압해야 하듯이 사회질서도 불가피하게 폭력과 강제를 배태하면서 유지된다. 폭력은 구성원들의 합의와 합법적 절차를 따르느냐에 따라 정당한 질서(베버, 2003)로 순치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억압적 권력으로 나타난다. 합의된 질서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동등한 참여’를 전제로 주권을 행사할 때 상호주관적인 정당성을 제한적이나마 확보할 수 있다(하버마스, 2006: 440). 하지만 합의된 질서가 폭력의 그림자를 원천적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질서와 폭력이 서로에 대한 페르소나로서 존재하는 한 이 딜레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 딜레마를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감옥이다. 감옥은 합의된 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폭력과 규율이 정당화된 공간으로서 폭력의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감옥은 사회구성원들이 감금의 대상을 규정하고 처벌의 경계를 합의한 결과면서 동시에 그 내부는 사회의 그 어떠한 곳보다도 억압적인 규율과 규칙들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합의된 질서가 부여하는 폭력이 응축되어 행사되는 곳이 감옥이다. 감옥은 위반자들을 형법의 분류체계에 따라 지배질서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재편입시키기 위한 감금장치이다(최정기, 2006). 감금이라는 일차적 처벌에 머물지 않고 재사회화 기능까지 포괄하고 있는 현대 감옥은 사회의 질서체계가 숨기고 있는 폭력의 맨 얼굴이기도 하다. 이는 수감자들이 고도로 ‘질서화된’ 시․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곧 폭력을 견뎌내고 감내하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감옥이 근대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장치들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근대 민족/국민국가의 출현과 산업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관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근대산업자본주의는 민족국가라는 정치체를 기반으로 사회구성원 대다수를 자본의 이윤축적에 최적화된 육체를 길러내는 새로운 ‘주체생산’를 요구한다(한인섭, 2006: 70-72; Garland, 2012). 이윤축적을 위한 육체적 변모를 추동하면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그리고 금욕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관리하는 주체는 19세기에 태동하여 20세 전반에 걸쳐 일반화된 주체성으로 자리매김했다(베버, 2010; 엘리아스, 1996; 푸코, 1994). 인구관리의 규칙은 근대국가의 시민권과 자본의 명령에 순종적인 자아상을 만들어냈고 이는 사회적 신체의 정상적인 표상이 되었다(쉴링, 1999: 127). 이런 표상으로부터 이탈한 존재들은 근대권력에 의해 ‘낙인’ 찍히거나 특정 장소에 감금되어 인구관리 규칙을 재주입 받았다. 심지어 이들은 도덕적 책임까지 떠안은 ‘죄인’으로도 취급되었다. 감옥의 이같은 성격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감옥이 교화, 재사회화, 범죄예방 등을 목적으로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사회의 질서메커니즘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억압적 국가기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알튀세르, 1991: 148-9). 이러한 주입은 주로 시간통제, 이동통제, 최소한의 주거환경, 소통제한 등 다양한 규율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감옥 연구는 역사적 형성과정에 대한 논의와 감옥의 작동원리, 예를 들어 통제방식과 관련한 규율 장치를 분석하는 데 많이 할애되어 왔다(푸코, 1994; 한인섭, 2006). 처벌, 규제, 통제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은 감옥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육체를 길들이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육체 길들이기’ 테제는 근대성과 육체의 문제를 다룰 때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쟁점들이다. 이때 육체는 외적 강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객체화되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육체는 외적 강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또 다른 육체적 헥시스를 생성하는 ‘과정’으로 파악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는 상호 간의 경합, 충돌, 교섭, 화합, 타협 등이 수반되면서 지속적으로 육체에 변형을 가한다(쉴링, 2011). 이를 감옥에 적용하자면, 육체는 감옥 내의 질서체계(억압적 통제)와 상호작용하면서 이전과 다른 육체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육체의 변화는 생물학적 혹은 생리학적 반응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없다. 일찍이 듀이는 감정은 본래 본능적인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개인적 경험에 의해 무수히 다양하게 수정되고 변화되고 정제되고 재구성되는, 감각으로 아는 신체적 느낌이라는 관념을 확대하고 심화시켰다(버킷, 2017: 109). 감정은 육체를 통해 발현되고 육체는 감정을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역할을 한다. 이로써 육체의 활용은 감정적 경험을 유발하고 경험된 감정은 다시 또 다른 육체성을 형성하는데 관여한다. 이와 관련하여 버킷은 “생각, 느낌, 행위, 동작 모두는 세계 내 신체적 존재가 드러내는 동일한 전체 현상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속해 있는 상황이 진전됨에 따라 변화한다.”(버킷, 2017: 102)
감옥은 육체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부터 제재한다. 이러한 제재는 명문화된 규칙이나 법적 명령 혹은 신체에 직접 가해지는 폭력에 앞서 이미 감옥이라는 공간적 구성과 배치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일방적 제재는 치욕스러움, 수치심, 부끄러움, 불안, 때론 분노 감정을 유발할 때가 많다. 감옥은 입소부터 수감생활 내내 수감자의 기본적인 욕구와 일상생활 전반을 감정적으로 통치하는 규율장치로서 기능한다. 수감자를 완전히 발가벗겨 놓고 다시 새로운 옷을 입혀나가는 감옥의 규율장치는 수감자들이 감옥 밖에서 익혀왔던 감정구조를 뒤바꿔놓는 감정통치로 작동한다. 총체적 감시와 통제의 공간으로서 감옥은 수감자들의 감정구조를 새롭게 직조하면서 또 다른 육체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감옥을 질서와 폭력의 복합체로서 상정하고 이 공간이 육체와 감정과 상호 교차하면서 어떠한 육체성과 감정구조를 생성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교도소의 출입부터 퇴소 과정까지 특정하게 계열화되어 있는 공간의 배치와 이를 통해 행사되는 권력효과를 드러내면서 이것이 수형자들의 감정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 나아가 이 과정의 최후 종착지로서의 육체는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질서/폭력 복합체로서의 감옥은 사회가 구성되는 논리의 압축판으로 볼 수 있다. 사회질서는 저절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흔적을 남기면서 존재한다. 이를 따르자면 감옥은 엄격한 질서체계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폭력적인 수단이 동원되어야 하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역설은 수감자의 육체와 감정에 각인되면서 질서/폭력 복합체로서의 인간형을 재창조한다. 본 논문은 감옥이 내재한 역설을 통해 어떤 감정과 육체성을 지닌 주체가 생성되는지를 살펴보고 감옥을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로서 바라보면서 평온한 질서 기저에 있는 냉혹한 폭력의 얼굴을 드러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에 위치했던 구(舊) 광주교도소 공간들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광주교도소는 1908년 광주감옥으로 시작해서 1923년 광주형무소로, 1961년에는 광주교도소로 개칭되었다. 필자가 답사한 광주교도소는 1971년에 이전되어 2015년까지 운영된 곳으로 현재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만 폐쇄된 상태로 광주시의 부지 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다. 이곳은 5․18 광주민중항쟁 사적지(22호)이기도 하다. 필자는 광주교도소를 2021년 1월(1회)과 4월(4회)에 걸쳐 총 5차례의 방문과 답사를 통해 교도소 내 모든 공간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2) 첫 답사에서는 교도소 전체의 배치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주요 건물들의 위치와 공간구조를 파악하는데 집중했고, 그 다음 회차부터는 단계별로 구역을 나누어 수용공간, 관리공간, 경비공간 순으로 답사를 진행했다. 현장조사는 필자 외에 몇몇 연구자를 비롯해서 때때로 광주교도소에서 교도업무(공익근무요원)를 수행한 1인과 수감자로서 생활했던 2인과의 동행 속에서 진행되었다. 다만 인터뷰 자료는 필자가 별도로 분석하지는 않고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준에 한하여 활용되었다. 필자는 교도소 공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직접 촬영하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사진과 영상자료 외에도 수감생활 경험자들의 인터뷰 자료도 수집했지만 본 연구에서는 필자가 수집한 사진과 영상자료만을 중심으로 이미지 분석에 집중했다. 사진 이미지로 재현된 공간들을 해석학적 현상학을 통해 감정을 읽어내는 방법을 활용했다. 일종의 ‘두꺼운’ 관찰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방법은 현장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필자가 적극적인 주관적 해석을 통해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전략이다.
II. 질서/폭력 복합체로서의 공간배치
이번 2장에서는 감옥이 질서/폭력 복합체라는 성격을 공간을 통해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감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교도소 담장, 감시탑, 교도소 내 통로, 감방, 감시체계 순으로 다룬다. 먼저 아래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교도소는 평평한 지면 위에 거대한 장벽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고, 각 꼭짓점에는 높은 감시탑이 설치되어 있다. 대략 높이 4.5미터에 달하는 교도소 담장은 안과 밖을 물리적으로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장치이면서 바깥 세계에 대한 상상마저 차단하는 상징적 장치이다. 사방이 폐쇄된 이 ‘총체적 기관’(고프만, 2018: 16)의 높은 장벽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라는 경계를 의미한다. 자유로운 소통과 이동을 차단해 버린 장벽은 수감자들에게 담장 밖 세계와 단절되어 모든 생활을 이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체념, 막막함, 답답함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이 거대한 장벽 자체가 ‘저 곳은 들어가면 안 되는 세계’라는 경고메세지를 보내는 듯 보인다. 누구든 저 장벽 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불길함과 들어가게 되면 쉽게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과 갑갑함, 이는 감옥을 둘러싼 거대한 장벽이 자아내는 스펙터클한 감정적 효과이다.
둘째, 감시탑은 수감자들이 체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어떠한 허튼 수작도 허용하지 않으며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푸코, 1994: 357). 간수와 수감자 간의 비대칭적 시선은 각기 다른 감정적 경험을 유발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수감자 입장에서 감시탑은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일탈적 행위마저도 발각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감시탑은 누군가를 감시할 수 있는 우월감의 표출이자 수감자에게 압박감을 주는 권위를 표상한다. 간수는 감시탑에 서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시각권력을 장악함으로써(어리, 2012: 141-2) 수감자들에 대한 존재론적 우위를 확보한다.
고도의 감시와 통제가 작동하는 이 장벽 안의 세계는 규율과 억압이 일상화된 곳으로 역설적이게도 질서가 가장 완전하게 실현되는 곳이기도 하다. ‘범죄자들’이 모여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 ‘비범죄적’ 공간이다. 감옥 밖 세상에서 온전하게 실현되지 않는 질서가 오히려 이곳에서만큼은 질서의 공백이 없는, ‘범죄 없는’ 유토피아가 된다. 하지만 이 유토피아는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양면처럼 공존하는 세계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갈등이 없는 ‘평온한’ 전체주의 사회이다(헉슬리, 2014). 전체주의가 보여주는 질서의 극단은 모두가 균질하고 평등하며 개성과 자유가 박탈된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감옥은 그 자체가 완전히 전체주의사회를 구현한 하나의 소우주이다(최정기, 2000: 85).”
셋째, 교도소는 건물 내부 배치와 구조를 전체주의적 양식으로 구현한다. 전체주의적 공간배치는 벤담의 판옵티콘 원리가 말해주듯 감시와 통제의 효율성, 나아가 교도소 내 질서를 최소 시간과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해준다(벤담, 2019). 간격, 크기, 넓이, 높이 그리고 색깔에 이르기까지 통일성을 높이고 표준화된 형태로 공간을 구획한다. 철저하게 질서화된 교도소의 공간배치는 안도감을 주면서 동시에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구획에 압도 당하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격자형태로 짜여진 건물 내부는 감시와 이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건물 내부는 규칙적으로 조밀하게 분할되어 있고 통로마다 창살로 된 철문들이 설치되어 있다. 흐름과 정지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이동을 세분화하고 쪼갠 후 다시 연결시켜 동작을 산술적으로 계산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세밀하게 분할된 공간은 수감자의 이동과 흐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통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준다. 이런 방식으로 폭력은 신체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대신 공간의 분절과 분할, 단절과 차단의 원리를 통해 자신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모든 수감자들은 이러한 분할과 분절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육체를 조율하고 다듬어간다. 이 리듬에 역행할 경우 더 강압적인 리듬을 강제하는 공간으로 육체가 재배치된다. 예를 들어 ‘독방’은 감옥 안의 감옥으로 육체의 모든 리듬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공간이다.
규칙적으로 분절된 리듬은 수감자의 육체를 새롭게 재조직한다. 고도로 질서화된 공간의 리듬에 맞춰야 하는 수감자의 육체는 불편함, 짜증, 어색함, 답답함에 시달린다. 이러한 감정은 육체에 가하는 폭력적인 리듬의 징표이기도 하다. 감옥의 총체적 권력은 이동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차단하며 경로를 바꿀 수 있다. 자유로운 이동권을 박탈 당한 수감자들은 전체주의적 공간 리듬에 자신의 육체를 빨리 적응시켜 나가는 게 오히려 자유를 얻는 길이다. 에리히 프롬의 주장대로, 자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복종하는 것이 더 안락함을 찾는 길일 수도 있다(프롬, 2020). 이 리듬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육체는 질서화된 공간과 일체감을 갖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교도소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수감자의 이동과 소통을 최소화한 공간구획이다. 수감자들의 동선은 매우 단조롭고 가시화될 수 있게 짜여져 있고, 수감자들 간의 소통 공간도 지극히 제한적으로 허락된다.
넷째, 감방은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이 공존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독방을 제외하고 혼거방은 한 공간에서 여러 명이 공동으로 생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생활의 영역을 극소화하고 실시간 상호 감시가 가능하도록 ‘원룸’에서 다수가 생활한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생활을 표출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은 서로에게 꽤 불편함, 민망함, 수치심, 역겨움,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비좁은 공간에서 여럿이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신체 간의 부딪침을 감수해야 하고 냄새와 소리는 서로의 경계를 허락하지 않고 넘나든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 방안의 열기와 냄새는 참기 힘든 역겨움을 유발할 때가 많다. 신영복은 여름날 징역살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 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신영복, 2018; 398) 서로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나 화장실의 악취는 짜증, 부끄러움, 수치심,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감방 내부의 질서에는 감각적 폭력이 뒤따른다. 감각적 폭력은 사적 영역을 넘나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행사된다. 냄새는 피할 길이 없이 모두에게 민주적이다. 비좁은 방 안에서 표출되는 감각과 감정의 복잡성은 서로를 제약하면서 인식의 방향을 유도한다. 짐멜이 주장하듯이, “우리가 누군가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장 깊숙하게 지각하는 것”이어서 상대와 거리를 둘지 아니면 가까이할지를 판단한다(Simmel, 1997: 658). 폐쇄적인 공간에서 서로가 짜증과 역겨움을 분배하고 교환하면서 관계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좁은 공간 내에서도 엄격한 위계에 따른 자리 배치가 이루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교도소 내 방은 수감자의 죄명이나 특성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다. 혼거방부터 독방(0.75평), 징벌방 그리고 교도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소지’들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방들 모두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놀릴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혼거방 내부에는 각각의 수감자가 사용하는 관물대가 양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고 천장에는 빨래 건조대가 설치되어 있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수감자들이 터득한 기술이다. 방 내부의 모든 설치물들은 수감자들이 직접 손으로 제작해서 들여놓은 것이다. 벽지나 장판도 수감자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진에는 화장실 바로 옆에 작은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수년 전만 하더라고 설거지는 화장실 안에 설치된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변기통 옆에서 해야 했다. 화장실은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절반 이상이 개방되어 있거나 (반)투명 유리 혹은 비닐막 문으로 가려져 있다. 어떤 방은 화장실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거의 개방되어 있다시피한 정도이다. 화장실은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 아닌 공적 공간의 일부가 된다. 투명성과 개방성은 질서체계를 구축하는데 전제조건이지만 이는 곧 폭력의 뒷모습이기도 하다. 폭력효과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전제로 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감옥의 감시권력은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마저도 가시화함으로써 질서/폭력체계를 전체주의적으로 구축한다. 교도소는 수감자의 모든 생활 면면을 언제든 누구에게나 보여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판옵티콘적 감시는 완전히 폐쇄적이고 체계적인 공간에서 폭력의 자기생산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로써 수감자들은 가장 투명한 공간에서 가장 억압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이 감옥에서의 폭력은 은밀하고 은폐된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공개되고 투명한 곳에서 행사된다. 공개성과 투명성 자체가 폭력성과 동일시된다. 비밀이 들어설 여지가 없고 사적인 소통도 거의 불가능한 공간에서 수감자는 질서/폭력의 내부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때 자유는 질서를 만들 권한으로서가 아니라 기존 질서체계에 순순히 복종할 자유에 불과하다.
교도소는 공간을 분절적으로 폐쇄하면서 질서체계를 형성․유지한다. 각각의 감방을 비롯하여 중앙통제실, 사무실, 접견실, 작업장, 운동장 등 모든 공간은 그 자체로 폐쇄성을 지닌다. <그림 8>의 수많은 열쇠들은 감옥의 폐쇄성과 비례함을 말해준다. 각각의 공간들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통과 지점마다 감시와 검열장치들을 거쳐야 한다. 이 장치들을 통과할 수 있는 자유는 오로지 열쇠를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다. 따라서 열쇠의 주인은 감옥 내 질서와 폭력을 결정하는 주권자이다. 개방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뿐 대부분의 공간은 잠금상태를 기본값으로 한다. 왜냐하면 잠금상태는 움직임과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질서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움직임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폭력효과이기도 하다. 이로써 각각의 열쇠는 질서/폭력 복합체를 대표하는 상징체계이자 교도소 내 모든 공간이 독립된 폐쇄성을 갖고 있다는 징표이다.
교도소의 감시권력은 ‘투명성’ 원리를 통해 자유를 박탈한다. 속내를 감출 수 없게 만드는 투명-권력은 자아의 주관적 내면세계를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내면의 충동마저도 외부세계의 질서원리를 따르도록 유도한다. 투명성은 주체의 내면과 외부세계 간의 경계를 없애버림으로써 질서와 폭력을 동일한 위상으로 끌어 올린다. ‘밝은 것이 힘이다.’ 대표적으로 교도소 내 설치된 CCTV는 명증한 투명-권력의 실체이자 표상이다. 이 권력은 교도소 내 어디든 수감자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행태를 실시간으로 그리고 원격으로 감시하는 장치이다. 심지어 CCTV는 감방 내부에도 설치되어 수감자의 사적 영역 혹은 은밀한 세계까지 침투한다. 내면세계까지 투명하게 공개되는 수감자들의 삶은 이 체계에 순응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감정성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는 조지 오웰이 묘사한 빅브라더의 세계에서 감시받는 시민들의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가 종국에는 감시자를 사랑하게 되는 감정의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과 유사하다(오웰, 2009). 속내를 감출 수 없게 함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지만 투명-권력의 반복적인 효과는 수치심을 약화시켜 상황을 무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수감자들은 수치심 대신 오히려 노골적인 노출과 내면세계의 공개를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의 구조적 변화를 경험한다.
III. 육체의 파열과 전도된 감정구조
교도소는 물리적 공간을 분절하고 구획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수감자의 육체까지 세밀하게 분절화하면서 내부의 총체적 질서를 확립해 나간다. 수감자의 육체를 해체하는 교도소는 이곳의 엄밀한 공간구획과 배치에 따라 육체도 그에 조응하면서 신체리듬을 재조합시킨다. 먼저 교도소는 육체를 고도로 수동화시켜 수감자들에게 자의적인 공간 이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이동 시 교도관과 함께 이동해야만 하며, 하나의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 가령 의료 진료 차 이동할 경우 해당 목적 외에 다른 용무를 위한 이동은 허락되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이곳의 질서체계와 융화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이전의 육체성을 버려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법과 질서’를 실천하는 육체로 재조직되기 위한 억압적 자기정화 의례이기도 하다. 이 의례를 통해 교도소 입소와 동시에 수동화되고 분절화되는 육체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육체로 다시 능동화되어야 한다.
수감자들은 교도소 내부의 생활지침과 일과표의 리듬에 따라 자신의 육체적 리듬을 조율해야 한다. 이러한 강제적 리듬은 범행에 대한 징벌적 성격도 있지만 거시적인 맥락에서 보면 국가권력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자 근면한 노동규율을 습득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문화 구현’이라는 표어는 근대국가와 산업자본이 부여한 질서체계를 최대한 수호하면서 도덕적 일탈을 범하지 않는 육체를 만들라는 명령이다. 교도소 내 통로 곳곳에 걸려 있는 푯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라는 공통의 메시지는 교도소가 확립하고자 하는 질서체계를 환기시키면서 수감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를 다잡게 한다. 이러한 육체는 근대산업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정, 학교, 노동현장, 군대 등에서도 길러지지만 교도소는 한 사회의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육체를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생산한다는 점에서 질서/폭력의 뫼비우스적 굴레를 반복한다.
수감자가 교도소 입소 시 제일 먼저 경험하는 육체의 파열은 ‘알몸수색’이다. 알몸수색은 육체를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순수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새로운 질서체계를 육체에 각인시키겠다는 이 강제적 수색은 육체를 일시적인 자연상태 혹은 무규정상태로 만들어 놓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질서를 주입한다. 광주교도소에서 공안수로 복역한 김형주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수감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몸을 의경이나 경찰, 교도관에게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심하면 쪼그려 뛰기까지 해야 합니다. 여성의 경우는 더욱 심해 여경이 음부까지 들여다보는 경우도 있습니다.······저 역시 알몸수색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다른 모든 곳에서는 공안수라 하여 약식으로 몸수색이 진행되었으나, 검찰청 유치장에서 혈기왕성한 의경이 가운을 입히고 옷을 벗긴 다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적으로 시켰습니다. 의경 역시 같은 남자였지만 그 순간의 수치심과 모멸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치욕적인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 ‘도대체 무슨 대단한 죄를 지었기에 이런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김형주, 2012: 258)
신체적 정화와 폭력이 동일시된 이 아이러니한 공간에서 수감자는 육체의 파열만큼 감정적 분열도 경험한다. 육체는 단순히 생물학적 단위로 환원될 수 없는 의식과 감정의 복합체(버킷, 2017: 128)라는 점에서 육체의 고통이나 희열은 항상 그에 따른 의식과 감정을 수반한다. 무엇보다도 의식과 감정이 사회적 삶 속에서 생성된다는 점 또한 육체를 사회적 층위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육체는 사회적인 것이 각인된 문화소(所)이다(터너, 2002: 93). 교도소가 하나의 단일세계로서 ‘사회의 압축판’이라는 신영복(2018: 449)의 말처럼 교도소 또한 특정한 육체성을 형성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육체성은 특정한 감정을 수반하면서 전에 없는 새로운 정체성을 끄집어낸다. 즉, 육체를 해체한 뒤 표준화되고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육체를 재조직하는 감옥권력은 인간의 감정구조를 뒤바꿔 놓는다. 개인적으로 숨(기)고 싶은 자유를 박탈하는 교도소 공간은 자아의 내면적 삶도 투명하게 만들어 수치심의 구조를 전복시킨다. 이전까지 수치스럽고 모멸적인 상황들에서 느낀 감정은 점차 추상화, 보편화, 평균화되면서 희석된다. 사적 영역이 공개되는 반복적 일상은 점점 수치심을 상쇄해버린다.
이러한 수치심의 전도는 은밀한 욕망이 주는 쾌락과 미학적 감수성을 제거해 버린다. 예를 들어 교도소의 운동장 담벼락 한 켠에 버젓이 설치된 소변기(<그림 11> 윗쪽)는 배설의 은밀한 즐거움과 자유를 봉쇄한다. 은밀한 영역까지도 밝게 비추는 판옵티콘적 배치는 사적인 찰나마저도 숨길 수 없도록 자유를 박탈한다. 심지어 어떤 감방에는 화장실과 방의 경계가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그림 11>(아래쪽)은 독방 안에 설치된 화장실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화장실은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도 뚜렷한 경계를 갖고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사진 속 감방 화장실은 그러한 구분도 없고 출입문 창살을 통해서 외부인도 훤히 볼 수 있게 이중으로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야누스적 투명성은 배설물로부터 풍기는 악취를 감내하도록 하며, 외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게 만든다. 근대적 생활양식은 사적 영역과 은밀함이 공개될 경우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감추고 싶은 부분이 만인에게 공개될 경우 타인의 조롱, 비아냥, 멸시는 쉽게 따라다닌다. 엘리아스(1996)의 주장대로 문명화과정에서 자아 통제의 강력한 감정기제인 수치심은 교도소에서만큼은 통용되지 않는다. 교도소에서는 거꾸로 은밀함을 공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오히려 은폐와 비밀은 이곳에서 또 다른 처벌 사유가 되기도 한다. ‘다 공개해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육체의 파열은 감방 안에서도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방마다 그 자체의 내부 질서가 작동한다. 단일 공간으로 되어 있는 혼거방일지라도 가시적․비가시적 경계들로 구획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내적 규칙들이 작동한다. 혼거방에서 생활하는 수감자들의 육체는 방의 규모와 함께 동거자들 간의 권력과 서열관계에 따라 해체되고 이에 적응하면서 재조직된다. 출입문 명패에는 인원수와 수감자별로 배정된 위치가 정해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교도소 내에서 수감자들은 내부 질서를 깨고 자체 질서를 세워 나가기도 한다(최정기, 2006: 94-95). 화장실로부터 제일 먼 쪽이자 출입문 쪽으로 나 있는 창문 바로 아래는 보통 방의 우두머리 자리이다. 구치소 생활기를 짧게 소개한 한 기고자는 감방 내부 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방에서 최고의 로열석은 출입문 앞이다. 두꺼운 철문을 대하고 있어서 답답하게 보이지만 밥과 반찬이 들어오는 배식구가 뚫려 있어서 통풍이 잘 되고 항상 앉아 있어야 하는 감방생활에서 드러누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3) 이를 기준으로 서열이 제일 낮은 사람은 방 밖에서 가장 잘 보이고 열악한 곳(가령 화장실)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서열이 낮을수록 악취와 일망감시라는 감각적 폭력을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자리하게 된다. 시선이든 냄새든 등 감각적 차원은 권력과 밀착되어 있다. 이처럼 감각은 생물학적 혹은 생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권력과 사회적 위계에 따라 전혀 다르게 경험되는 문화적 질감을 갖는다. 이 비좁은 공간에서도 출입문 앞쪽은 교도관의 시선을 피할 수 있고 화장실 악취로부터 자신을 격리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감시와 냄새는 육체를 서열화하면서 각기 다른 감정을 유발한다. 한쪽이 우월감과 편안함이라면, 다른 한쪽은 무시, 모멸, 굴욕, 비참함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규율로 가득 채워진 이 삭막한 공간에도 <그림 12>에서 보듯이 교도관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서열이 높은 자리)에 젊은 여성모델이나 연예인들의 섹시한 화보들이 붙어 있다. 주로 잡지에서 찢어오거나 오려온 사진들이다. 이 화보에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여성 모델들로 채워져 있고, 단색의 벽지에 유일하게 컬러 빛을 발한다. 교도소 내부는 대체로 녹색과 흰색 바탕의 색들이 칠해져 있고 볕이 들지 않는 공간이 많기 때문에 이 화보 속 원색적인 색깔들은 생명감을 불어넣는 듯 보인다. 바깥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모델 사진들이 이곳에서는 희귀하다. 희귀한 자원의 몫은 서열이 높은 자에게 대부분 돌아가듯이 교도소에서 섹슈얼리티와 컬러색은 서열이 높은 자가 점유한다. 교도소 내 원칙상 벽지에는 이런 화보를 붙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내부 세계의 권력자가 그 특권을 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 속 여성모델들의 섹시한 포즈를 보면서 통제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이탈하는 자유를 그래도 누군가는 누린다는 점에서 질서체계의 균열지점이 확인된다.
교도소 내의 방은 수용인원과 기능적 고려에 따라 규격이 제각각이지만 평균적으로 각자에게 1평의 공간도 부여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가령 <그림 13>에서 볼 수 있듯이, 20.38m2(약 6평 남짓) 면적에 최대 19명까지 수용된다. 이 좁은 공간에서 수감자의 육체는 축소, 절단, 분절의 과정을 거쳐 최적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공간은 산술적인 평균으로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공간은 철저하게 위계적으로 재배치된다. 누군가에게는 단 1평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혼거방 공간은 불평등하게 분할되며, 수면, 식사, 세면, 빨래, 휴식 등과 같은 일상적 활동 또한 엄밀한 경계와 구분 속에서 펼쳐진다. 경계가 모호할수록 강한 권력을 가진 자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강한 권력은 자의적으로 경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경계짓기를 통해 약자는 위축감, 불안, 굴욕, 모멸감을 느끼며, 강자는 위세와 우월감을 갖는다. 이러한 혼거방 생활은 강자와 약자 간의 권력관계를 내면화하도록 이끄는데, 이럴수록 교도소 내 질서도 한층 더 견고해진다. 감방 생활에서의 단체규율과 위계구조는 교도소 전체의 질서체계와 상동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혼거방과 달리 독방은 수감자들과의 단절과 고립 그리고 절대적으로 좁고 불편한 공간배치를 통해 육체를 재조직한다. 0.75평에 불과한 독방은 몸을 물리적으로 압박하고 위축시킨다. 편안함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감방의 공통규율은 독방에서 극대화된다. 방을 혼자 쓸 수 있는 자유(?)를 얻지만 그에 따른 불편함과 고통은 그 자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독방은 좁고 길게 뻗은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취할 수 있는 자세가 한정되어 있다. 눕게 되면 양팔을 대(大)자로 뻗을 수 없을만큼 여유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편하게 돌아눕거나 몸을 자유자재로 놀릴 수도 없다. 독방생활 내내 양쪽 좁은 벽을 마주 하고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독방의 좁고 불편한 구조는 몸의 자율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불편함 이상의 비참함, 괴로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독방생활 경험자 김형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길이는 방문에서 보통 걸음으로 4걸음 반, 폭은 누워서 가슴에 손을 얹고 팔꿈치를 벌리면 팔꿈치가 양쪽 벽에 닿는 아주 좁은 방이었습니다. 방안에는 비닐막과 나무틀로 짜인 문으로 구분되어 있는 뺑기통(화장실)이 있습니다. 처음 이 방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참담했습니다. 이 좁은 방에서 어떻게 생활하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김형주, 2012: 260)
좁고 볕이 거의 들지 않는 어둑하고 침침한 독방생활의 불편함, 갑갑함, 고독감을 이겨내는 방법은 일단 몸을 빨리 적응시키는 것이다. 신비롭게도 몸은 이 작은 규격에 대응한다. 독방은 자유와 억압이 전도되는 곳이다. 다른 수감자들과 엉키지 않는 독립성을 누리지만 독방이 육체에 가하는 물리적, 감정적, 감각적 폭력은 공동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훨씬 초월할 만큼 강하다. 독방은 교도소의 질서/폭력체계가 압축적으로 집약된 장소이다. 혼거방의 수감자들에게 폭력이 공동으로 분배된다면 독방 수감자는 홀로 감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독방은 육체의 사회적 연결성을 차단시킴으로써 고립감을 최대화한다. 사회적 관계의 차단은 오히려 자유를 극도로 제약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뒤르케임의 말처럼 자유는 타인의 간섭을 피한 상태가 아니라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뒤르케임, 2012: 548). 이렇게 교도소에서 ‘법과 질서’는 가장 불편하고 어둡고 고립되고 단절적인 환경을 전제로 실현된다.
모든 방 출입문에는 바깥쪽에서만 개폐할 수 있는 잠금장치가 있고 그 밑에는 ‘식구통’이 설치되어 있다. 교도소 내 모든 출입문과 마찬가지로 감방 출입문 또한 개폐의 권한은 교도관에게만 있다. 출입의 자유가 없는 수감자들은 문이 열리지 않는 한 방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한다. 교도소 곳곳에는 최대한 접촉과 소통을 제한하려는 차단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외부세계와의 총체적 차단을 의미하는 장벽, 건물 내부 이동통로 마디마디마다 촘촘하게 설치된 철창문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감방 철문이 권력의 비대칭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내준다. 이동의 흐름을 차단하는 이러한 장치들은 육체의 활동을 특정 방향으로만 하면서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통합시킨다. 일정 기간을 지나면서 몸은 저절로 그 흐름에 내맡겨진다.
출입문 밑에 뚫려 있는 작은 사각형 모형의 구멍, 즉 식구통은 음식을 배식받는 통로이다. 교도소는 기본적인 욕구부터 통제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식사에 수반되는 행위들마저도 폭력적 배치에 순응해야 한다. 식구통은 수감자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배식자가 음식을 효율적으로(혹은 통제하기 수월하게) 제공하려는 도구적 기능성만을 고려하여 설계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설계는 기본 욕구를 동등한 위상에서 상호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위계구조를 재차 확인하는 표식이다. 기본 욕구의 불평등한 교환은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비참함, 모멸, 굴욕감을 가져다준다. 권력자가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할수록 피지배자의 수치심과 굴욕감은 증대한다. <그림 1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식구통은 수감자가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밑으로 내밀면서 배식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수감자는 자세를 낮춰 음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반 사람들이 음식을 주고받을 때 교환하는 감정적 교감, 상호존중, 결속감을 감방생활자들에겐 기대하기 어렵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팔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구멍으로 음식이 오가는 식구통에서 상호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기란 힘들다. 교도소는 음식을 매개로 교환될 수 있는 호혜적 감정마저도 차단해 버린다. 식구통은 육체의 기본적인 욕구를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채색하면서 굴복하고 순응하는 몸으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감정통치 기술이다.
앞에서 보여줬던 교도소 전경 사진(<그림 1>) 왼쪽 부분에 사형장이 위치해 있다. 필자의 필드 조사를 시기가 따뜻한 봄날(4월 중)의 오후 시간대였음에도 사형장으로 들어설 때 엄습해오는 으슥함과 끔찍한 기운은 매우 강렬해서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감정은 삶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황에 대응하고 적응하도록 단련되어 관행처럼 전화되는데(감정적 아비투스), 사형장의 낯설고 생경한 환경과 마주 했을 때 필자가 느낀 생경한 두려움과 공포는 이런 상황에 아직까지 단련되지 않았다는 징표일 수 있다. 이러한 느낌은 의식적인 과정을 단축시키거나 뛰어넘어 육체를 순식간에 엄습해온다. 생과 사의 마지막 경계선이자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이 공간은 극한의 냉정함, 엄숙함, 고도로 억눌린 슬픔, 비참함, 참회, 억울함, 공포감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집약해서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사형대 뒤편에서 교수형 버튼을 눌러야 하는 교도관이 느꼈을 죄책감, 미안함, 당혹감, 괴로움도 함께 떠오른다.
사형장 내부 벽면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사형수 자리의 정면 방향으로 사형 집행관들의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다. 테이블과 사형대 사이에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사형수는 레일 위의 의자에 앉게 된다. 사형대 앞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바닥은 교수형을 당한 사형수가 곧바로 떨어질 수 있게 깊은 지하와 연결되어 있다. 아마 그 위로는 교수형 매듭(올가미)가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바닥에 깔린 레일은 죄수의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마지막 길이다. 이 짧은 길의 종착지는 저 시커먼 구멍 속이다. 으스스한 기분을 자아내는 사형대의 밑 지하공간은 폭력의 최극단이면서 동시에 폭력의 종착지를 뜻한다. 죽음에 처하지만 죽은 자는 더 이상 폭력에 시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사형장은 모든 시간이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끔찍함은 살아 숨 쉬는 듯 필자를 휘감았다. 수감자 중 사형수는 교도소 생활에서 겪은 육체의 파열을 이곳에서 끝낸다. 죽음 직전에 와 있는 사형수의 육체는 파열의 끝, 소멸 혹은 사라짐을 예고한다. 결국 육체의 소멸과 함께 존재의 의미도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진다.
IV. 감정통치와 폭력적 육체의 재구성
파열의 과정을 거친 육체는 교도소의 질서/폭력체계를 통해 재조합된다. 규율화된 육체는 일탈과 범죄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육체로 재탄생한다. 일탈적인 육체에는 부끄러움과 도덕적 부담감을 부과하고 질서화된 육체는 떳떳하고 자신감을 갖는다. 이렇게 질서순응적 육체는 모범적이고 유순하며 반듯한 이미지를 장착한다. 그런데 이는 차가운 역설이 뒤따른 결과이다. 질서화되고 규율화된 육체는 교도소 내의 폭력효과를 반증하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규범적 육체의 떳떳함과 자신감은 폭력의 하부구조를 갖고 있다. 즉, 감옥에서 폭력 없는 질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폭력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되어 작동한다. 하나는 물리적 폭력으로 위에서 내내 분석한 바와 같이 교도소 공간 전체가 육체를 세밀하게 통제하는 구조로 설계 또는 배치되어 있다. 폭력적인 물리적 배치를 통해 육체의 동선과 이동의 흐름이 일방향적으로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상징적 폭력으로 자아의 주관적 세계를 철저히 차단하고 억압하면서 모멸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기표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수감자들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 대신 숫자 번호로 불리며, 동일한 색깔의 통일된 수인복을 입고, 비슷한 두발 모양으로 생활한다. 이름 대신 숫자, 동일한 외양과 일방적인 행위양식은 전체주의적 폭력이 지닌 미학이기도 하다. 교도소 내부에는 이동경로마다 잘 보이는 곳에 도덕적인 문구들이 게시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문구들은 육체의 이동선을 따라다니면서 수감자의 에토스를 가시적으로 직조한다. “지금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미래를 말해 줍니다.”, “행복은 불행을 참아낸 당신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가치가 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우기에 힘쓰는 삶이다.”, “나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라.”, “위대한 사람은 절대로 기회가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아포리즘과 같은 이 문구들은 개인 자신의 극기, 절제, 인내, 노력, 성찰을 강조한다. 상징적 폭력은 개인이 처한 구조적 폭력을 도덕적 치장으로 은폐하면서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도록 이끄는 반성적 윤리체계이다.
교도소의 통제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표어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국정목표로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와 번영’, 국정원리로는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교도소는 국가의 질서체계를 가장 엄격하게 준수하는 조직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정목표는 교도소 내에서만큼은 다른 원리로 달성된다. 이곳에서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와 번영은 엄격한 행위규칙과 체벌체제, 투명한 감시와 일방적인 명령, 전체주의와 강압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수감자 방에 붙어 있는 안내문 중 하나는 “수용자는 일과 시간표를 준수하고, 교도관의 직무상 지시에 복종하며,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그림 17>). 이 문장 아래에는 금지행위 목록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다. 크게 징벌적 행위와 규율의 차원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징벌 부분은 해당 행위를 했을 경우 실질적인 법적 제재나 강제적 처벌이 부과된다는 내용이다.
<그림 17>에서 볼 수 있듯이, 교도소는 엄격한 생활규칙을 강제하여 순화되고 도덕적인 행위양식을 이끌어낸다. 감방마다 게시된 또 다른 ‘수용자 생활안내문’에도 준수사항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기본적인 생활규칙에서부터 통행, 상호예절, 물품구매, 화학물질 금지, 의료처우 등 행동 하나하나에 따르는 세밀한 규율들이 항목별로 명시되어 있다. 요컨대, ‘민주주의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는 고도로 규율화된 육체를 토대로 실현 가능해진다. 질서에 잘 순응하는 수감자들에겐 표창이나 ‘모범수’라는 최고의 상징자본을 부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벌점, 징벌방, 독방이라는 체벌을 부과한다. ‘모범수’라는 상징자본과 명예는 자긍심, 뿌듯함,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사회에서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육체 또는 인간상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교도소는 사회가 일반인들에게 부여한 질서체계를 가장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한층 더 고도화하여 수감자들에게 행사함으로써 ‘멋진 신세계’를 창출한다.
교도소는 폭력체계를 육체에 각인하는 방식으로 질서를 확립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짜여진 공간은 일반사회와 상반된 감정적 에토스를 만들어낸다. 우선 수감자들은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식사, 배변, 수면 행위 등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존중받지 못한다. 교도소는 수감자에게 ‘열등처우의 원칙’을 적용하여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 의해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대우한다(한인섭, 2006: 78). 교도소 밖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보호받는 행위가 교도소 내에서는 모멸감, 수치심, 굴욕감, 때론 울분과 분노를 유발하는 행위로 전환된다. 질서 위반자들에게 가해지는 법적 처벌은 물리적 폭력 대신 원초적․생리적 욕구를 굴욕적으로 행하도록 하는 감정통치로 행해진다. 내밀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생리적인 욕구야말로 폭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행사되는 영역이다. 폭력은 생리적 욕구부터 길들인다.
둘째, 교도소는 육체활동의 모든 흐름을 분절화․단절화시키면서 이동의 자율성을 박탈한다. 교도소는 이동통제와 함께 육체의 활동 범위를 최소화함으로써 경계를 뚜렷하게 내면화하는 위축된 몸을 만들어낸다. 위축된 몸들은 고도의 통제 속에 규정된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질서체계의 최정점에는 위축된 몸을 생산하는 다양한 권력장치들이 작동한다. 수감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은 대부분 비좁고 여러 체취가 뒤섞인 냄새로 둘러싸여 있고, 이동할 경우 교도관의 동반 하에서만 가능하고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있는 CCTV가 사방에 설치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 순응하기까지 그 과정에는 여러 감정적 경험들이 수반된다. 규칙을 따르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징벌이나 수감생활자들과의 관계 속에 발생할 수 있는 멸시, 학대나 폭행에 따르는 두려움과 체념은 고도로 질서화된 공간에서 표출되는 감정들이다. 질서 순응적 몸은 수치심, 굴욕, 모멸감, 불안, 체념 등의 감정을 생산하는 통치가 육체화된 결과이다. 폭력을 내면화한 육체는 출소와 함께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는 당신”으로 재탄생한다.
셋째, 교도소는 강제적으로 수감자의 육체를 ‘다 드러내는’ 방식으로 길들인다. 바깥 세계에서는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낄 상황이 발생할 경우 피하거나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여타의 공간이 있지만 교도소에는 자신을 숨길 마땅한 공간이 없다. 부끄러움은 타인과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도덕적으로 관리하는 감정이다. 이때 도덕적 관리는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외적 공간이나 은밀한 내면세계가 있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교도소는 그런 관리를 가능하게 해줄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까발려진 채 생활하도록 개방되어 있는 교도소는 부끄러움을 느낄 여지를 주지 않는다. 부끄러움의 결핍은 타인과의 관계설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도덕감정 혹은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킨다. 달리 말해 부끄러움의 결핍은 폭력의 효과이자 폭력적인 육체의 감정성을 의미한다.
V. 나오며: ‘영상사회’로서의 감옥
본 논문은 감옥이라는 공간에 대한 감정사회학적 독해를 통해 질서에 배태된 폭력을 드러내고 이 폭력을 통해 생산되고 재구성되는 육체의 감정양식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공간은 기하학적 원리를 투영한 추상적이고 균질적이며 양적 수치로 표상되는 비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인간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상호작용의 범위와 내용을 제약하며, 이 과정에서 특정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사회적 장치이다. 공간은 사회질서, 규범, 도덕, 문화 등이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형태와 내적 속성을 달리한다. 감옥은 한 사회의 질서체계를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공간이자 통치장치이다. 간단히 말해 감옥을 뒤집으면 사회의 모습이 나온다. 감옥 공간을 분석하는 작업은 사회질서의 배후 또는 무대 뒤에서 존재하는 폭력의 실재와 마주 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은 질서가 가장 완벽하게 확립된 공간이지만 이 질서가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수감자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규율장치, 나아가 이를 내면화한 육체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보면 질서는 곧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규율장치들을 통해 폭력을 내면화한 육체는 감옥 밖 세계의 육체와 매우 다른 감정적 경험을 수행한다. 감옥에 들어선 육체는 질서와 폭력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공간적 배치에 강제적으로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은 감옥생활 이전까지의 육체적 존재양식을 모두 해체하고 분해하는 파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육체적 파열의 과정은 이전까지의 사회적 삶에서 경험했던 감정들과 매우 다른 감정들을 유발시킨다. 숨기고, 가리고, 내보이기 싫은 행위들이 감옥에서는 만인에게 공개된다. 감옥은 수감자들에게 부끄러움, 수치심, 당혹감, 공포를 통해 육체를 재조직하도록 이끌어낸다. 수치심과 당혹감은 육체를 온순하고 규범적으로 만드는 자기통치기제로 수감자의 행위를 다잡는다.
이러한 자기통치기제에 충실하면 할수록 수치심이나 당혹감은 어느덧 당당함, 떳떳함, 안도감으로도 전환된다. 감옥이 수감자들에게 요청하는 규율이나 규칙을 준수하면 할수록 ‘모범적인’ 주체로 재정의되기 때문이다. 감옥은 수치심을 떳떳함으로, 당혹감을 당당함으로 전환시켜주는 공간적 양식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감정적 전환은 엄격하고 강제적인 규칙과 처벌체계를 전제로 한다. 감방 내외부에 게시된 세밀한 생활규칙과 징벌사항들은 파열된 육체의 감정적 경험(수치심, 당혹감, 공포 등)을 규범적이고 질서화된 육체의 감정적 경험(뿌듯함, 떳떳함, 당당함 등)으로 재구성한다. 요컨대, 떳떳함, 자부심, 당당함 등의 감정은 감옥의 폭력효과에 뒤따른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이처럼 감옥의 질서체계에 가장 잘 부합하는 육체는 사회적으로 긍정성을 부여하는 감정들을 경험하지만 이 감정은 감옥의 폭력체계에 순응하고 복종한 결과이다.
감옥은 사회의 거울, 즉 사회는 감옥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이면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감옥의 폭력체계는 사회가 은폐하고 있는 폭력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감옥을 관찰하다 보면 사회적 폭력의 실재와 간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역으로 사회의 형상은 감옥을 직조하기도 한다.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이고 인권지향성을 갖추고 있는가는 감옥의 민주화와 수감자들의 인권보장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감옥 자체를 해체할 수도 있다. 사회에서의 폭력은 고스란히 감옥 안으로 집중된다. 감옥은 사회질서가 남긴 폭력의 흔적이다. 필자가 감옥을 응시할 때마다 느꼈던 스산한 공포와 감정적 기운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숨겨진 폭력과 마주 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본 논문은 교도소 내의 모든 공간을 분석대상으로 삼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와 동시에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교도소에는 본 연구에서 언급된 장소 외에도 작업장, 운동장, 식당, 교도관들이 근무하는 통제실과 행정실, 물품보관소, 목욕탕, 의료실, 접견실, 면회실 등이 있다. 이 공간들 모두 각각 독립된 공간적 배치와 작동논리를 갖고 교도소 전체의 일부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이 공간들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연구방법적 한계와 자료수집의 제한으로 논의를 확장해 나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본 논문은 철저하게 필자의 관찰과 현지조사에 의존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감옥에서 직접 생활한 수감자들의 행위와 그들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감정동학을 분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수감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육체의 활용에 대한 부분은 분석되지 못했다. 수감자들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감옥생활에서도 저항, 일탈, 타협 등을 통해 자체적인 대항문화나 하위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에 관한 내용들은 기존 연구들에서도 많이 소개되었다(이건범, 2020; 최정기, 2006; 한인섭, 2006). 하지만 그러한 행위들이 어떤 감정적 동인, 그리고 그러한 동인들이 발생하게 되는 관계적 맥락들을 이해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본 연구의 이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감옥 공간 자체가 배태하고 있는 야누스적인 폭력의 질서를 드러내고 공간배치와 감옥 내 여러 장치들이 발흥시키는 감정들과 이들 감정들이 일반사회와 전혀 다른 구조로 작동하는 논리를 밝혀내고자 했다. 이로써 감옥이 우리 사회의 숨기고 싶은 폭력을 그대로 표상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 폭력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정도로 본 논문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