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한국의 장애운동을 다룬 연구를 살펴보면 2000년대 이후로 부각된 중증 신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운동에 집중되어 있다(유동철, 2005; 김도현, 2007; 이상직, 2022).
2010년대를 전후로 장애운동은 발달장애인 관련 운동의제와 활동주체가 활발해지고 있다(이상직, 2022). 발달장애로 운동의제와 당사자 참여의 활성화는 2014년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뿐만 아니라,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중점 과제로 포함되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서도 다양한 지원책으로 도출되는 등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 장애운동의 의제와 참여자가 신체장애에서 발달장애로 변화하고 있는지, 그에 따라서 장애정책의 발전 또한 발달장애 중심으로 나타나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장애운동의 변화 양상 파악에서 그치지 않고, 운동과 정책 사이의 동학까지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장애운동과 장애정책은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김경미 외, 2012; 국회미래연구원, 2022), 동학을 간과하여 함께 살펴보지 않는다면 장애정책 논의에서 당사자성은 축소될 수 있다. 장애운동과 장애정책을 각각의 연구만으로 접근하게 될 때 역사적 사료 기술에 머무르게 되면서 변화의 양상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장애운동 내부에 나타나는 장애유형 집단 간의 연대와 갈등, 정부 차원에서 어떤 장애유형 집단의 요구를 우선시 했는가 등 정책 형성의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을 때 장애운동의 역사를 더욱 총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정책 변화의 흐름이 달라짐에 따라 주목받는 장애유형과 상대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장애유형은 없는지, 이는 특정 장애유형의 권력화가 아니라 한정된 예산을 이유로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를 국가적 차원에서 여전히 미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장애정책 발전 양상을 입체적으로 짚어내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정책과 운동의 간극을 드러내어 괴리를 좁히기 위한 전략을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의제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장애운동 의제 중 정책화되는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가 있다. 장애운동이 곧 장애정책으로 이어진다면, 모든 장애운동은 정책화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장애운동과 장애정책의 변화 양상을 단선적 기술로 보여주기보다는 운동주체와 정책의제 사이의 시기별로 달라지는 흐름과 그 동학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현재 한국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 변화가 장애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며, 정책형성 메커니즘 파악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발달장애로 운동의제와 행위주체의 변화가 활성화 되고 있는 2010년대 이후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구체적인 연구목적은 아래와 같다.
첫째, 2010년대 이후 한국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에서 나타나는 장애유형의 변화 양상을 확인한다. 한국의 장애운동은 신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운동을 조직하면서 발전되어 왔기에 이들의 요구가 주요 운동의 의제로 되어 온 측면이 있다(이영화·정희경, 2018: 36). 이후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장애여성의 요구도 장애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운동이 발생함에 따라 장애계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현재는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운동이 예전에 비해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요구가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로 채택되고 있다. 장애운동의 역사에서 주요 운동 주체들의 장애유형과 특성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장애운동의 행위주체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장애운동의 역사를 짚어봄으로써 달라진 장애운동사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한국 장애정책의 발전 과정에서 주요 정책 대상으로 어떠한 장애유형을 중심에 둔 정책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책형성의 흐름을 확인한다. 이는 장애운동에서 행위주체들의 장애유형이 다양해짐에 따라 장애정책의 흐름 또한 이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선행 단계에 해당한다. 최근 수립되고 있는 장애정책의 주요 정책 대상은 어떤 장애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정리할 것이다.
셋째, 정책형성 과정에서 사회운동이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에서 다루고 있는 장애유형의 변화가 실제로 주요 정책 대상의 변화로도 나타나는지 확인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장애정책 사례에서 국제기구를 비롯한 국가 외부, 경제성장, 정치적 환경 등만이 아니라, 당사자의 참여를 주된 정책변동 요인으로 볼 수 있는지 파악하여 사회운동과 정책 사이의 관계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의의가 있다.
만약 사회운동의 요구가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둘 사이의 불일치가 어떤 요인 때문인지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장애운동과 장애정책의 역사적 흐름을 진단해봄으로써 한계를 짚어내고, 향후 방향성을 예측하여 정책 변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장애운동 전략 수립을 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실천적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장애운동사 연구는 운동을 경험한 장애인 개인에 주목(김봉선, 2010; 김지윤, 2015; 이영화·정희경, 2018)하거나, 사례연구와 연대기적 기술(이인영, 2001; 이동석, 2003; 곽정란, 2004; 고춘완, 2005; 장명숙, 2007; 유동철, 2005; 2017)에 머물러 왔다. 이들은 장애운동과 장애정책의 결과를 함께 다루더라도 단선적인 서술에 그치거나, 운동과 정책 각자의 특성만을 따로 떼어 해석할 뿐,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의 동학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았다. 장애운동이 장애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유동철, 2017: 3)은 장애계 누구라도 부정하지 않지만, 실제 어떤 정책 동학을 통해서 운동이 사회정책 변화에 요인이 되었는지 규명해 온 접근은 부족했다. 이 때문에 정책적 결과를 도출해 낸 장애운동에 대한 평가와 운동전략에 대한 검토는 이론적 토대가 부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 권력자원이론을 주요 이론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노동조합과 사민주의 정당 사이의 계급연합을 복지국가 발전요인으로 보는 권력자원이론은 시민사회의 영향이 사회정책을 변화시킨다고 봤다(Korpi, 1983; Offe and Keane, 1984). 한국은 노동조합을 통한 계급정치의 토대가 미약하기 때문에,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한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양재진, 2008).
그러나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시민사회의 역할은 존재하며, 장애운동에서는 특히 장애운동단체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나타난다(박경순, 2014; 허준기, 2014). 더불어 정책형성 과정에서도 주요 역할을 수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Beresford and Holden, 2000; Ricketts, 2010). 이처럼 정책결정 과정에서 장애운동의 참여가 강화되고 역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역할을 장애운동으로 확대하여 권력자원이론을 활용할 수 있다.
장애운동의 역사를 짚어보는 과정에서 자원동원론을 주요 이론으로 하여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주체, 조직적 자원을 다룬 시도도 있었다(이상직, 2022). 하지만 자원동원론은 사회운동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규명하지만, 성공한 사회운동이 정책변화로 이어지는 메커니즘까지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가 사회운동을 통해 일정한 권력(정책적 산물)을 얻으며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권력자원이론을 주요 관점으로 하여 2010년대 이후 발달장애 운동과 정책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가와사키 장애인복지정책을 다룬 연구에서도 지적장애인 부모단체를 비롯한 장애인단체의 적극적 운동과 지방정부를 비롯한 정책 주체 간의 상호작용이 정책형성을 이루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김지미, 2006).
결국 역사적 사실의 변화를 기술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운동과 정책 도출 사이의 동학(dynamics)을 드러내어 둘의 관계를 중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장애운동의 의제가 신체장애에서 발달장애로 변화되어 왔고, 이들이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을 만들어내면서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서술하는 것은 기존의 장애운동 역사와 정책 변화 정도를 최근 시기에 맞춰 추가해 주는 것에 그칠 뿐이다.
장애인은 성별, 계층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손상의 정도에 따라 집단 내부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집단이다. 이 때문에 장애운동의 의제에서 어떤 장애유형이 강조되는가에 따라 정책 대상으로서 장애유형도 반영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으로 몸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집단의 특성이 사회정책의 흐름을 변화시키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 몸을 둘러싼 권력과 차이의 문제, 정책 산출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의 장애운동과 장애정책의 관계를 운동의제 변화와 정책형성의 동학을 중심으로 파악하려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운동 행위주체와 주요 의제의 변화 특성은 무엇인가?
둘째, 장애정책에서의 정책대상은 주로 어떤 장애유형으로 변화했는가?
셋째, 장애운동의 변화가 장애정책으로 반영될 때 정책형성의 동학(dynamics)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에 따른 연구방법은 사례연구(case study)에 기반을 두고, 문헌자료 분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사회운동과 사회정책 사이의 동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층적인 분석이 가능한 방법론이 요구된다. 사례연구는 사례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맥락과 행위자와 제도, 또는 행위자와 행위자 사이의 질적 상호작용을 좀 더 심도 있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Ragin, 1987). 특히 장기간에 걸친 사례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사례연구를 통해 엄밀한 인과관계를 일반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일어난 원인에 대한 증거 수집과 이를 바탕으로 한 현상에 관한 맥락적 연관성을 설명함으로써 원인과 결과의 개연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즉, 본 연구에서는 장애정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장애운동이 실제 주요한 역할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 장애인단체의 자료집과 국가 기관의 보고서, 공청회 자료집 등을 통해 정책형성 흐름을 파악할 예정이다. 이는 정책형성 과정에서 주된 정책결정 주체인 시민사회, 정부, 국회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장애단체의 활동과 입법 기구 연계를 주도해온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정책리포트, 2000년대 이후 중증 신체장애인운동, 2010년대 이후 발달장애인운동을 주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자료집 및 국회요구자료,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자료집, 정부별 국정과제, 보건복지가족백서, 국회 회의록,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백서와 장애통계연보 등 시민사회, 정부, 국회, 공공기관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정책동학을 밝히기 위한 증거로 사용한다.
연구의 주요 시기는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을 국가 차원으로 다루기 시작한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3-2017)이 수립된 전후를 기점으로 하여 2024년까지이다. 약 10년에 걸쳐서 발달장애인의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변화를 살펴보며, 이때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형성에 사회운동의 영향을 파악한다.
Ⅱ. 장애운동 행위주체와 운동의제의 변화
한국의 장애운동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중심으로 복지제도 수급권, 연금법, 노동권, 교육권, 자립생활과 관련된 의제를 주로 다루었다(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2006).
<표 1>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2000년대 이전의 장애운동은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정도가 미비했으나, 2000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투쟁의 주체가 달라지고, 운동의 의제도 다양화 되었다. 경증 신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운동은 이동권 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중증 신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활발해졌으며, 주체가 변화함에 따라 중증장애인이 요구하는 이동의 자유, 자립생활과 생활 조건에 대한 요구로 운동의제의 성격이 달라졌다. 2000년대 이전 경증장애를 가진 엘리트 중심의 캠페인성 운동이 약화되고, 중증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실천적 운동이 분출한 것이다(이상직, 2022).
자료: 유동철(2005)에서 재구성.
장애운동은 신체장애인 중심의 운동그룹과 전문가의 연합, 자립생활 이념의 확산, 이를 바탕에 두고 법률 대안 수립으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움직이는 전략을 취하면서 성장해 갔다(허선회, 2020). 발달장애인은 장애운동 안에서도 주변세력에 머물러 있으며, 2000년대 장애운동 평가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못한 점을 고려할 때, 중증 신체장애인이 2000년대 장애운동의 중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2006).
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주요 활동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주도하면서 성장한 전장연은 현재 한국의 주요 장애운동단체 중 하나이며, 다양한 장애유형과 운동의제를 다루고 있다. 2000년대 이들의 주요 활동 현안을 살펴보면, 탈시설, 장애등급제 폐지, 활동지원서비스 등 특정 장애유형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공통된 권리 확보 의제를 주로 다루었다. 신체장애인과 관련하여 이동권 투쟁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2010년의 전장연 상반기 주요 활동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 예산과 활동보조, 저상버스 등 이동권, 장애인연금 및 수당, 복지법 개정과 장애등급제 등 법적 권리 확보를 주로 진행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10).
그러나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의제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신체장애인만을 위한 의제는 아니다. 다만 이동권이라는 의제를 중심으로 중증 신체장애인이 전면에 등장하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가 주요한 의제로 도출되면서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운동이 중심이 되지는 못했다.
2000년대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장애운동은 장애인 부모가 주축이 되어 장애아동복지 및 발달장애성인 자립지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장애인교육권연대 활동을 전개했고, 이를 통해 장애인 부모의 운동이 부각되면서 소홀했던 발달장애영역도 공론화되기 시작했다(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2006). 장애인 부모단체는 장애인교육권 운동을 계기로 운동의 주요 주체로 등장하였으며, 발달장애인 운동은 장애인구의 변화로 발달장애인이 늘어나는 환경적 변화와 함께 서서히 활발해졌다.
2021년 기준 장애인구 규모를 살펴보면 등록장애인 수 264만 명 중 지체장애인 119만 명, 발달장애인 25만 명 정도로 나타난다(보건복지부, 2022). 2003년 전체 장애유형에서 56%의 비중을 차지했던 지체장애인은 2021년도에 45.1%로 10.9% 감소했으며, 발달장애인은 2003년도 8.1%에서 2021년도 9.6%로 1.5% 증가했다(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2).
<표 2>와 <표 3>을 살펴보면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장애인구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령이 낮을수록 발달장애 비율이 매우 높다. 장애인 부모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장애인부모연대 등 부모 단체의 주요 활동이 발달장애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향후 장애인 고령화 문제와 함께, 장애유형 특성으로 발달장애를 장애운동에서 주요 의제로 다룰 수밖에 없는 맥락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전체 장애인의 연평균 증가율이 0.8%인데, 발달장애인의 평균 증가율은 3.3%이므로 발달장애 관련 의제가 갈수록 늘어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한국장애인개발원, 2022).
15-29세 | 30-54세 | 55세 이상 | |
---|---|---|---|
인구 수(2021) | 128,160명 | 538,968명 | 1,916,402명 |
구성비(2021) | 4.8% | 20.4% | 72.5% |
2011년 대비 2021년 증감 | -4.4% | -35.9% | 28.7% |
지체장애 비율 | 10.4% | 42.8% | 49.4% |
발달장애 비율 | 65.9% | 17.3% | 1.9% |
자료: 한국장애인고용공단(2022)에서 재구성.
구분 | 전체 | 지적 | 자폐성 |
---|---|---|---|
2001 | 1,134,177 | 94,951 | 2,516 |
2022 | 2,652,860 | 225,708(8.5) | 37,603(1.4) |
자료: 한국장애인개발원(2023).
2013년 전국발달장애인자조모임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된 발달장애인의 전국적 교류가 2016년 ‘한국피플퍼스트’라는 단체의 출범으로 이어지면서 적극적으로 장애운동에 결합하고 있는 모습 또한 발달장애인 운동이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2010년대 장애운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14년에 제정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에 관한 운동은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가 되기도 했다. 2012년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장애인부모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등 발달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를 만들고, 발달장애인법 제정 운동을 전개했다. 공통된 권리보장의 측면이나, 중증 신체장애인 중심의 활동을 했던 전장연 또한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발달장애인 관련 활동을 주요하게 다루는 모습도 보였다.
2023년에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권, 통합교육권,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다양한 운동을 수행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영역에 관한 운동은 전장연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과 같은 전국 단위 장애계 단체의 활동에서도 더욱 활성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장연의 2023년도 국회 요구자료를 보면 최중증 발달장애인 다중지원 주간활동서비스 시범사업,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지원,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설치·운영 등 발달장애인 관련 요구안이 2010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취업지원의 경우에도 발달장애인지원고용센터 설치·운영, 발달장애인 인턴제 도입을 방점에 두고 요구하고 있으며,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창작소 설치·운영 등 교육, 노동, 문화 전 영역에 걸쳐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2).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장총의 주요 추진과제를 살펴봐도 그동안 소홀히 다뤄온 장애유형에 관한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려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촉구 활동, 정보, 건강, 개인맞춤형, 고령자, 탈시설, 장애인정책종합계획 및 선거국면 의견 개진 등의 활동을 했으며, 2024년도에는 정신장애인 및 소수장애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과제를 추진하려고 했다(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각 연도).
선도활동가의 운동 목표 및 전략의 특성 보편적 권리 쟁취를 위한 시민불복종 형태의 장애인 당사자 운동 → 광범위한 제도 및 환경 변화를 요함 돌봄 부담 경감 및 자립을 주 목적으로 하는 장애인 당사자 및 부모 운동 → 순차적·단계적 제도 변화를 요함
지금까지의 장애운동은 2000년대 이전에 경증 신체장애인 중심에서 2000년대 중증 신체장애인, 2010년대 이후 발달장애인으로 운동 주체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운동주체의 장애유형이 완전히 변화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동안 장애운동에서 주변화 되어 있던 발달장애인 영역도 장애운동의 주체와 의제로 확대 및 포함되었다고 봐야 한다. 즉, 기존의 중증 신체장애인 중심의 운동의제가 지속되면서도 발달장애인 관련 의제 또한 다루어지고, 때로는 이들의 의제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 장애계가 연대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표 4>).
이처럼 2001년 이동권 운동, 2000년대 중반 교육권 운동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2000년대 후반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운동과 소득보장 운동, 2010년대 초반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운동, 2010년대 후반 탈시설 운동으로의 흐름은 중증 신체장애인 중심의 이동권에서 발달장애인까지 포함한 탈시설 자립생활 요구로 나아가고 있다(이상직, 2022).
Ⅲ. 장애정책의 정책대상 변화
장애정책에서 일어난 변화의 가시적 결과물은 중앙정부의 장애인복지 예산 추이다(허선회, 2020). 2010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서 장애인복지 관련 예산을 살펴보면 장애인 생활안정지원이라는 항목으로 장애아동가족지원 50,887백만 원이 잡혀 있고, 발달장애인 항목이 따로 편성되어 있지는 않았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10). 하지만 2015년부터는 ‘발달장애인 지원’으로 세부사업이 편성되어 예산이 배정되고 있다. 예산 편성 항목의 변화뿐만 아니라, 예산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2007년부터 2025년까지 장애인 관련 예산과 발달장애인 예산을 함께 살펴보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표 5>).
발달장애인지원 예산이 편성된 이후, 추이를 보면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법 제정 이후 2015년도 발달장애인 예산 증가가 커졌으며, 2024년도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 예산에서 다른 영역은 유지하거나 오히려 삭감되기도 했으나, 발달장애인지원은 증액되었다(참여연대, 2023). 즉,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세부사업의 변화 및 예산액의 증감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장애정책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6>을 살펴보면 2000년대 이후 장애인 관련 주요 법률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동권, 자립생활, 건강, 생활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법안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장애운동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장애운동이 이동권에서 탈시설 운동으로 변화하면서 장애입법 또한 점차 활동지원과 탈시설을 위한 생활환경 개선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국회미래연구원, 2022).
자료: 국회미래연구원(2022).
더불어 발달장애인 관련법의 확대도 주목해야 한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발달장애인법’ 등 발달장애 관련 주요 법률 3가지가 2010년을 전후로 하여 연달아 시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발달장애운동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면서도 발달장애 관련 현안이 더욱 부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2014년에 특정 장애유형에 대해서 최초로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였다는 점(한국장애인개발원, 2022)은 그간 소홀히 다루어지던 발달장애영역이 장애운동을 통한 결실로써 법제화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주요 쟁점에 관한 갈등이나 장애운동의 요구안 중 일부 수용되지 못한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법안 발의 후, 심사과정에서 신체장애인 중심으로 규정되어 있는 장애인 관련법과는 별도로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여 발달장애유형의 특성에 맞는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보건복지위원회, 2013b). 하지만 별도의 발달장애인 위원회 설치 및 공단 설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장애유형과의 형평성 문제, 재원 마련의 어려움, 기존 법체계와의 충돌과 중복 문제 등이 쟁점으로 제시되기도 했다(보건복지위원회, 2012). 그럼에도 발달장애인법은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주요 정당의 공약으로 채택되어 있었고, 대선 이후 국회활동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안 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여 입법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변함없었다(보건복지위원회, 2013a).
실제 제·개정으로 이어진 법안의 변화와 함께, 법제화를 위해 발의를 시도한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법안도 2010년대 이후로 활발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의안검색을 통해서 장애 관련 가결된 법안을 본격적으로 장애운동이 활발해진 2000년부터 2024년 시점까지 살펴볼 때 총 177건이 원안가결, 수정가결 등의 형태로 의결되었다. 그중 21건이 발달장애인을 특정하여 다루는 법률안이고, 그 외에도 종합적으로 다루는 법안으로 검토하면 더 많을 것이다. 장애유형과 무관하게 권리 확보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법안을 제외하면 특정 장애유형을 다룬 법률안은 극히 적다. 2010년 이전에는 1건에 그쳤던 발달장애인 중심의 제·개정하려는 입법안이 2010년 이후로 급격히 늘어났다.
발달장애인지원 예산 편성과 증가, 관련 법안의 확대와 함께 중앙정부에서 내놓는 대책에도 발달장애인은 주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기적으로 제시되는 ‘장애인통계’와 ‘장애인백서’에서도 2010년대 이후 따로 장(章)을 구성할 정도로 주요 현안이 된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추진하는 중·장기 대책인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서도 발달장애인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려는 시도는 제3차 종합계획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후 제4차 종합계획부터 제6차에 이르기까지 주요 중점과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최근 시행되고 있는 제6차 종합계획은 장애인구 및 환경의 변화로 인해 돌봄수요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발달장애 영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반영되어 수립되기도 했다(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역대 정부의 국정과제와 보건복지부의 장애정책을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 발달장애인지원 정책이 별도로 수립되고 있다(<표 7><표 8>). 201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정책협약을 맺고, 이후 2018년 ‘제1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지원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2022년 ‘발달장애인 평생돌봄 강화대책’을 발표하게 된다. 물론 정부가 제시한 지원책이 여전한 한계와 낮은 효과로 비판 받으면서 발달장애인 관련 단체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발달장애라는 특정 장애유형을 위한 대책이 수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계의 요구를 수렴하여 선거기간 중 정책협약을 맺거나, 국정과제로 채택하게 만들어 일련의 정책안으로 도출되도록 함으로써 2010년대 이후 발달장애인 운동의 영향력과 그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Ⅳ. 장애운동과 장애정책 형성의 동학
사회운동을 통한 법적 동원, 즉 활동가와 법률전문가의 결합으로 입법화 또는 정책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1987년 이후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함께 두드러진 전략이기도 하다(홍일표, 2006). 특히 최근 제정된 모든 법률이 장애인운동에 의해 제안되고 형성되는 등 장애운동은 장애정책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유동철, 2017). 앞서 제시했듯이, 발달장애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처럼 최근 장애유형별로 필요한 제도를 만드는 유형별 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애정책 형성 과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김동범, 2017).
정책의제 형성 과정에서 참여자의 활동에 따라 의제가 채택되고, 채택을 결정하고자 할 때 여론, 정치적 지형, 유권자의 이익 등을 고려하게 된다면 비공식 참여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남준우, 2000). 비공식 참여자란 정부와 관료, 정치인이 아닌 시민사회를 주로 말하고 이들이 공식 참여자와 결합하여 정책형성을 추동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비공식 참여자로서 장애운동을 통해 입법 청원과 대안 제시, 정부 및 정치권과 협상을 하는 방식으로 정책형성에 참여하고 있다(유동철, 2005).
장애인 특수교육법 제정에 참여한 장애인교육권연대의 활동을 살펴보면, 서명운동과 국회 앞 1인 시위, 단식 및 점거농성 등의 방식으로 장애인 교육권을 공론화 하면서 민주노동당과 함께 국회 토론회 개최, 공동발의 법안 제출과정에 참여하여 정부 및 국회를 통한 법 제정을 시도했다(권순성, 2010).
또한 장애운동과 정치의 연합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있다. 장애단체의 사회운동을 통해 시작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제16대 대통령선거 및 제17대 국회의원선거 공약 채택을 비롯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는 국회의원들을 설득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유동철, 2011).
최근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장애인단체 TF에서는 6대 정책목표와 23개 중점과제, 108개 실행과제를 구성했고, 이를 정부계획에 반영하도록 촉구하여 그중 52개인 48.1%가 장애계 의견으로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2022).
이처럼 장기적 계획 수립 전, 대통령 선거 또는 국회의원 선거 국면에서의 정치와 장애운동의 결합은 법·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내며, 장애정책 형성의 요인으로 당사자의 참여가 중요시되고 있다(이상직, 2022).
발달장애인법 제정 과정 또한 장애운동을 통한 정책형성 추동의 메커니즘이 나타난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추진되기까지 발달장애 의제가 주목받기 시작한 맥락에는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자립이 어려워 일상생활에서 지속적 돌봄이 제공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제도적 부재로 돌봄공백이 발생하여 가족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있다. 이는 기존의 장애정책이 신체장애인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며, 장애인 단체는 이러한 제도적 상황을 짚어내어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신체장애에서 발달장애로 정책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그동안 장애인 지원에 관한 어떤 정책이나 지원이 전체 장애인에 관한 문제 또는 신체장애인 문제 중심으로 사실 접근되어 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발달장애인 지원을 보다 특화해서 지금 시기에는 입법정책적으로 고민해야 된다라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동의를 합니다. …… 먼저 저는 윤종술 진술인의 말씀과 같이 우리나라의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신체적 장애인을 위주로 설계·운영되어 왔고 신체장애인과 다른 발달장애인들의 권리와 욕구를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 제315회(5차)(2013.04.22.)>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UN장애인권리협약(CRPD)을 통해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을 국제 기준에 맞춰 요구 받게 되었으며,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중요한 의제가 되면서 발달장애인 문제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앞서 언급했듯이, 장애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발달장애인 인구 비중의 증가와 그에 따른 돌봄 부담 문제가 새로운 복지 의제가 된 것이다. 더구나 발달장애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부모 단체의 적극적 운동 전개는 발달장애 문제를 장애계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게 했다. 돌봄의 사회화가 미비한 상황에서 부모의 부재가 발달장애 아동에게는 곧 삶의 위기로 다가오게 만드는 사회적 사건들은 파급력을 지녔으며, 새로운 정책형성을 위한 정치적 맥락이 되었다.
이에 따라 2012년 발제련 공식 출범 이후 국회 요구를 통해 제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통과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이는 2007년 특수교육법 제정, 2011년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과 함께 장애인 부모 운동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김치훈, 2013).
그 과정에서 여·야 정당과의 간담회를 개최하여 제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달장애인법 발의를 약속 받기도 했다(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2014). 2012년 대통령선거 기간에는 대선후보들로부터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 이후 제대로 추진이 되지 않으면서 2013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120여명의 국회의원으로부터 법제정 동의서를 받는 등 법안 제정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서 전개했고, 2014년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법 제정 전후로 유사한 내용을 담은 조례를 제정하면서 전국적으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의 제도적 틀이 마련되었다(전지혜·이세희, 2018).
더불어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사안도 장애운동의 국회 활용 전략을 통한 메커니즘으로 나타났다. 2021년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 발의안에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피플퍼스트 발달장애인단체가 제안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2).
장애정책 형성을 둘러싼 주요 행위자는 2000년대 이전까지 정부 주도에서 2000년대 이후 정부, 국회, 시민사회, 전문가 등으로 다양해졌다(허준기, 2022). 발달장애인 운동 또한 장애인부모 단체와 국회, 정부 부처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장애운동과 정책 의제 간 다양한 전략적 동학이 나타나게 되었다(이아영, 2015). 이는 장애단체 요구안의 정책 수용도를 높이고, 법제화를 빠르게 추진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발달장애인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주로 국회를 활용한 전략이 나타났다.
발제련은 법안 추진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로 채택할 정도로 성과를 만들었으나 보건복지부와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국회의원 동의서를 받는 등 국회를 통해 보건복지부 정부 부처를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전지혜·이세희, 2018). 이후 당시 여당 의원을 통해 절충안을 마련하고, 발제련과 정부 간 7회에 걸쳐 간담회를 실시하는 등 논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보건복지위원회, 2014).
당시 발달장애인에 관한 요구는 정치 쟁점화의 영역도 아니었기 때문에 장애인단체가 장애친화적인 국회의원을 통해 압박을 시도하여 법제화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허준기, 2022).
“발달장애 같은 경우는 부모연대의 아주 적극적인 활동, 이것이 굉장히 강력하게 정부를 압박을 했기 때문에, 부모연대에 있는 사람들이 각 지역별로 아주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조직들이 각 지역에 국회의원들 작업을 했어요. 국회의원들에게 각 지역 국회의원들을 공략을 해서 그 국회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한 거죠. 지역 주민의 요구니까 굉장히 무시하지 못한.”
<허준기(2022) 심층면접 내용 중 발췌>
발제련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의 장애운동 과정에서도 정책화를 위한 주된 전략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시도한 사례를 살펴보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중심으로 장애인단체의 활동으로 장애등급제 폐지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채택되어 정책의제화 됨에 따라 정책결정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주요 행위자가 되었고, 선거를 활용한 전략 또한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금희, 2020).
발제련 또한 주요 선거 국면에서 발달장애인법을 각 정당의 공약에 포함하기 위한 선거 대응 활동을 추진했다(에이블뉴스, 2012. 02. 20). 이러한 전략은 정당의 공약 채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국회의원을 통한 입법 추진,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 채택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장애운동의 주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우리가 공약으로 후보를 선택한다예요. …… 그다음에 두 번째는 우리는 우리를 껴주는 사람, 국회의원이든 직접적으로 선거를 통해서 선택받기는 아직은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 구조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할당하는 제도가 있잖아요. 비례 같은 것 그 제도를 적극 활용해서 우리도 참여시켜줘라, 그게 이제 계속적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요구하고 …….”
<허준기(2022) 심층면접 내용 중 발췌>
발달장애 운동이 국회와 선거 국면을 활용해 적극적 정책화를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장애운동 요구안의 완전한 채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된 요인으로는 재정문제가 있다.
지금까지의 장애정책은 관련 법의 제정에 그치면서 법안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예산 마련은 제대로 되지 않아 제도적 실효성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있다(고병권, 2023).
이러한 점은 발달장애인법 제정 과정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도 확인된다. 기존 장애인 관련 법체계와의 중복 및 충돌 문제, 다른 장애유형과의 형평성 문제와 함께 사업 중복에 따른 예산 사용의 적절성과, 궁극적으로 재정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발달장애인 지원에 대한 정부, 즉 복지부나 기재부, 고용노동부, 안행부, 법제처의 의견을 보면 재정 부담이 크다는 것과 다른 중증장애인의 형평성의 문제, 타 법률 내용과 중복된다는 법률체계상의 문제 등이 있어서 어려움을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바로 재정 부담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 제315회(5차)(2013.04.22.)>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예산 부족을 근거로 발달장애인법 법안의 수정을 시도하면서 장애운동과 정부 간 조정 과정이 길어지게 된 것이다.
2012년부터 본격화된 발달장애 운동의 법제화가 2014년까지 지연된 모습에서 결국 예산 수반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의 장애운동 의제변화 양상을 파악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도 제공해준다. 장애운동의 의제가 단순히 신체장애에서 발달장애로 단선적 이동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기존의 중증 신체장애인 운동은 새로운 법안 마련을 넘어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측면으로 운동이 심화되고 있으며, 중증 신체장애인이 시도했던 초기의 운동처럼 법제화 운동의 주체가 발달장애인으로 옮겨갔다고 봐야 한다. 결국 중증 신체장애 운동이든, 발달장애 운동이든 궁극적으로 실질적 권리의 실현이 가능한 제도화를 이루고 있는가로 볼 때 두 장애유형의 운동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제도 발전 수준에서의 차이가 존재한다.
발달장애인법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와서 국가 차원의 지원 대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으며, 그 이후 체계화와 실효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다는 점에서 중증 신체장애운동이 추구하는 방향을 따라 간다고 볼 수 있다.
장애운동 내부의 영향력과 형평성을 고려하는 측면 또한 발달장애 운동의 정책화 속도에 영향을 주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다른 장애유형과의 형평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며, 발달장애인법을 신중하게 검토하고자 했다(보건복지위원회, 2014).
하지만 다른 장애유형 또한 발달장애인의 어려움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전체 장애계가 발제련을 중심으로 연대하는 움직임으로 장애정책화의 우선순위를 높였다는 점에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다른 의제에 비해 선행할 수 있도록 했다(에이블뉴스, 2012. 05. 08). 장애인 부모를 중심으로 한 발달장애 운동의 적극적 활동은 정책도입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등 정책화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발달장애 관련된 정책들이에요. 지금 그 발달장애에 대한 것은 장애인 부모 단체가 굉장히 강력한 활동을 했거든요. …… 부모연대가 굉장히 적극적이고 아주 강력한 투쟁들을 해왔죠. 그래서 여기가 활동을 해서 발달장애와 관련된 법도 만들어지고 …… 그래서 지금은 물론 발달장애인이나 지적장애, 정신장애 사실은 장애인 정책에서 최후의 남는 문제예요. 사실은 그쪽에 더 신경을 쓰기는 써야 하고 그랬는데 이제 최근에 그렇게 막 발달장애인 쪽으로 예산도 많이 편성이 되고 법도 만들어지고 …… 이제 정부쪽에다가 압력을 더 강하게 받으면 정부는 조용한 단체의 얘기보다는 좀 시끄러운 단체를 더 신경을 쓰게 되죠. 그런 게 영향을 미칩니다.”
<허준기(2022) 심층면접 내용 중 발췌>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법 제정 과정에 영향을 준 요인은 행정부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즉, 장애운동이 선거를 활용하여 정당 공약 채택에 그치지 않고, 선거 이후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정부부처가 이를 수행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일 때 장애운동 의제의 정책화로 신속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개최한 공청회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통령선거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로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채택되었고, 보건복지부 주요 업무의 선결과제로 추진되었다(보건복지위원회, 2013b).
Ⅴ. 결론
이 연구는 발달장애로 한국 장애운동의 의제와 주체가 변화하고 있는 움직임에 주목하여 장애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펴보고, 운동과 정책 사이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우선 한국 장애운동의 주요 의제의 변화를 통해 장애유형의 변화 양상을 파악했다. 신체장애 중심의 정책 환경 속에서 발달장애인이 겪는 돌봄의 사각지대와 자립의 어려움이 문제시 되면서 2000년대 이후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운동주체로 등장하고, 장애인구의 변화로 발달장애가 늘어나는 등의 변화와 함께 발달장애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둘째,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의 지속적 확대와 관련법의 증가, 특히 2014년에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는 등 발달장애라는 특정 장애유형을 위한 대책이 수립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장애정책이 발달장애유형을 중심에 두고 정책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정책형성 흐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장애운동의 요구로 선거기간 중 공약으로 채택하거나, 국정과제화 되는 등 정책형성 과정에서 사회운동이 주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수립 과정에서는 장애계의 의견이 반영되었고, 발달장애인법 제정,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입법 추진 등 장애운동의 국회 활용을 통한 정책변화 흐름의 메커니즘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국회 및 정부의 정치적 맥락과 조응하여 장애운동 단체가 다양한 전략적 대응을 통해 사회운동과 정치의 결합을 보여줌으로써, 당사자의 참여가 정책변동의 주된 요인이 될 수 있는 권력자원이론의 또 다른 사례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이 장애운동사와 장애정책의 흐름을 개별적으로 파악하며 기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둘 사이의 관계성을 분석함으로써 장애운동의 역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전개된 장애운동의 의제, 활동 주체의 변화 양상을 정리하여 한국 장애운동 및 정책사의 근거자료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한국 장애운동사의 역사적 기술과 현재의 변화된 정책 흐름을 연계하여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장애운동과 정책 평가를 추동하는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단초로 삼고자 했다. 이는 장애운동의 요구가 정책화로 이어지기까지 ‘지연’ 혹은 ‘괴리’되는 메커니즘을 발달장애운동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현재 장애운동의 한계를 짚으며, 향후 장애정책의 발전에 영향을 주기 위한 당사자 운동의 전략 수립을 도출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다만 정책형성 과정을 살펴보고자 할 때, 모든 개별 정책사례에 대한 분석은 추후 시도해야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장애정책의 변동을 총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으며, 정신장애 영역으로까지 사례분석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