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Integration Research
Social Integration Research Center, Kangwon National University
일반논문

용산의 장소성과 지역 브랜딩에 대한 연구

박세준1, 진은경2, 이철3, 장안식4,*
SeiJoon Park1, Eunkyung Chin2, Chul Lee3, Ansik Chang4,*
1박세준_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강사(estran@hanmail.net)
2진은경_고려대학교 학부대학 강사(sopi0619@hanmail.net)
3이철_케이스탯컨설팅 공공사회정책연구소 연구실장(chulleeku@daum.net)
4장안식_케이스탯컨설팅 공공사회정책연구소 소장(ansik@korea.ac.kr)
1Korea University
2Korea University
3KSTAT Consulting
4KSTAT Consulting
*Corresponding Author : ansik@korea.ac.kr

© Copyright 2024 Social Integration Research Center, Kangwon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 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Nov 30, 2024; Revised: Dec 15, 2024; Accepted: Dec 17, 2024

Published Online: Dec 31, 2024

국문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용산의 장소성 강화에 필요한 요소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장소성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용산 브랜드라는 활성화에 있다. 용산 브랜딩이 필요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서울을 포함해 용산이 가지고 있는 현재 장소성의 의미는 정치, 경제, 사회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크다. 이러한 용산에 대한 부정의 요소가 아닌 새로운, 긍정의 장소성 요소가 필요하다. 이 연구 내용으로, 기존의 용산이 가지고 있었던 장소성을 대표하는 미군기지, 전자상가, 이태원의 의미와 시간의 축적은 ‘용산’이라는 브랜드에 기여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이미지는 여러 이유로 쇠락해지고 있다. 미군기지와 전자상가는 장소 자체가 사라졌고, 이태원이 가지고 있는 “다문화와 다양성”이라는 장소성은 2022년 10월 이후 변했기 때문이다. 이를 대체하려는 방안으로 용산의 제과산업과 문학을 제안한다. 특히 제과산업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8개 주요 제과회사가 모여 있을 정도로 “제과 산업의 본산”이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용산의 장소성으로 제과산업과 문학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용산 브랜딩 확립이 가능할 수 있음을 밝혔다는 점이다. 용산은 현재 한국의 3대 제과회사와 인연이 깊은 곳이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8개의 제과회사가 용산에 있었을 정도로 제과회사의 본산이었다. 용산은 『벙어리 삼룡이』 작가 나도향의 고향이며, 근현대 문학의 배경으로서 염상섭의 『사랑과 죄』를 포함해 다수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제과산업과 문학은 사라져가는 전자상가와 미군기지의 의미가 변해버린 이태원을 대체할 수 있는 용산의 장소성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elements necessary to strengthen the sense of place for the success of the regional brandingg of Yongsan. The reasons why the Yongsan branding needs to be successful are as follows. Yongsan's current sense of place is more negative than positive. For this change in sense of place, it is necessary to discover a new element, not a negative locational element. The reason why Yongsan wants to change its negative sense of place while discovering a new element is to heal the disasters of 2008 and 2022.

The content of this study is that it was a U.S. military base, the electronic shopping mall, and Itaewon, representing the sense of place of Yongsan. And they revealed that they contributed to the brand of Yongsan by experiencing their own accumulation of meaning and time. However, they can no longer contribute for a number of reasons. This is because the location of U.S. military bases and electronic shopping malls has disappeared, and the sense of place of Itaewon has changed since 2022. It is the confectionery industry and literature that are presented to replace this. The result of this study is that the use of the confectionery industry and literature can help establish branding that utilizes Yongsan's sense of place. Yongsan is currently the home of Korea's three largest confectionery companies, and eight confectionery companies were located in Yongsan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Yongsan is the hometown of Na Do-hyang, the author of "Sam-ryong-i," and appears in many works, including "Love and Sin" by Yeom Sang-seop, as the background of modern and contemporary literature. The confectionery industry and literature are in themselves the places that replace the electronic shopping malls and U.S. military bases, and they are the mechanisms to heal the Itaewon and Yongsan disasters.

Keywords: 용산; 지역 브랜딩; 장소성; 제과산업; 나도향
Keywords: Yongsan; Regional Branding; Sense of Place; Confectionery Industry; Na Dohyang

I. 서론

지역 브랜딩이란, “특정 지역이나 그 지역의 대표적인 상품을 특별한 브랜드로 인식시킴으로써 지역의 이미지와 지역 경쟁력을 향상하게 시키려는 전략”으로 용산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에서 시도하고 있다. 지역 브랜딩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론이 있다. 그 중 장소성 강화가 주요하다. 장소성이란 장소 또는 공간과 관련한 사람들과 사회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체험의 총체다. 이러한 장소성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경험과 체험이 쌓이면서 형성해 나간다. 최근 3년(2022- 2024년) 동안 한국인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지역은 어디일까. 아마 ‘용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용산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옮겼던 2022년 5월부터 사람들 입에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오르내렸다. 비단 집무실 이전뿐만 아니라, 그해 10월 이태원 참사로 한국인들은 용산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또한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이라고 부르던 용산개발사업도 서울시가 재추진하고, 전세계에서 유명한 “보이그룹”의 소속사이자 최근 논란이 일었던 “걸그룹”의 전 소속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용산은 한국의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용산의 지역 브랜딩을 위한 ‘장소성’은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한 것 말고도 ‘용산’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립박물관과 전쟁기념관, 용산역사박물관과 같은 “기억의 장소”가 있고, 전국의 수많은 “~리단길”의 원조인 경리단길과 해방촌과 같은 “유행의 장소”도 있다. 용산의 정중앙에는 미군 기지도 있고, 미군 기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서울 속의 미국” 이태원과 인근의 50여 개 나라의 공관들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장소”도 용산에서 볼 수 있다. 한국 최초,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나 한옥으로 지은 천주교의 새남터 성지와 같은 “종교의 장소”나 지금은 쇠락했지만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전자상가도 용산의 대표 장소라 할 수 있다.

이들 장소 중 용산이라는 지역 브랜딩을 위해 필요한 장소성 요소를 찾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용산 브랜딩의 성공을 위해 ‘장소성’을 찾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용산이 가지고 있는 현재 장소성의 변화가 필요하다. 용산이 가지고 있는 현재 장소성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크다. 앞서 이야기했던 이태원 참사는 물론이고, 2008년의 용산 참사도 여전히 용산에 부정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이러한 부정의 의미가 짙은 장소성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장소성 요소의 발굴을 통해 가능하다. 이때 새로운 장소성 요소에는 2022년과 2008년의 부정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용산의 장소성과 브랜딩에 관한 연구는 있으나, 대부분 해방촌이나 이태원의 연구에만 머물러 있다.1) 해방촌과 이태원을 주로 연구한 데에는 이들 장소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 때문이다. 이 독특성은 비단 용산이나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관심이 있는 특성이기 때문에 연구대상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용산에는 이들 장소 말고 독특한 장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원과 해방촌이 아닌 다양한 장소들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지금까지 용산의 장소성으로 활용했던 미군기지, 이태원과 같은 요소들이 현재의 용산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와 그렇다면 강화를 하고 계승해야 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 요소가 아닌 새로운 장소성 요소를 찾아야 하고, 그것은 무엇인지를 발굴해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장소성 요소의 발굴을 하면서 용산이 가지고 있는 부정의 장소성을 바꾸고자 하는 까닭은 2008년과 2022년의 참사를 치유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의 세부 목표를 해결하고자 한다. 첫째, 지역 브랜딩과 장소성에 대한 확인을 통해 용산에 필요한 장소성을 이해한다. 둘째, 용산의 잘 알려진 장소성을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살펴보고, 비판적 검토를 진행한다. 셋째, 용산의 알려지지 않은 장소성 요소를 발굴하고, 새로운 장소성을 제시한다.

Ⅱ. 지역 브랜딩과 장소성

1. 지역 브랜딩

지역 브랜드란 특정 지역이 가진 자연환경, 역사, 행정서비스와 같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는 특징을 말한다. 이는 지역민과 지역을 방문할 사람들에게 해당 지역을 인식시키고, 경쟁 지역과 구별해주는 특성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지역홍보나 지역 마케팅에 주로 사용한다. 도시 슬로건과 이를 상징하는 시각 이미지를 통해 지역정체성 확립과 이미지 제고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기도 한다(이미경·오익근, 2007: 1).

지역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이 곧바로 브랜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른 브랜드처럼 지역 역시 특정 이미지나 평판이 있어야 한다. 고유명사나 고유한 지역의 표식이나 앰블럼들과 같은 표상이 있으면 좋다. 지역이 하나의 브랜드로서 위상을 갖는다는 주장이 있지만, 브랜드가 갖는 영리성 때문에 지역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지역은 이윤을 추구하거나 판매해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을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이 주목하는 하나의 브랜드로서 분석해야 함을 역설하기도 하고(Trueman at al., 2001), 브랜딩이 점차 국가나 도시 나아가 지역에 적용 가능함을 주장하기도 한다(Kavaratzis, 2004). 지역브랜드는 기업의 브랜드들과 닮았지만, 기업 브랜딩과 지역 브랜딩에 대해 분명한 차별성을 내세우기도 한다(Raimisto, 2003).

지역들은 사람들의 기능, 상징, 감정의 욕구를 채워준다. 이는 다른 상품들과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욕구들을 채워주는 속성들은 지역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브랜딩은 지역 마케팅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자 지역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한 근거이기도 하다. 지역 브랜딩 궁극의 목적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높이고, 지역 자체의 정체성 개발을 위한 작업이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야말로 외부의 직접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투자는 관광을 촉진하는 것 외에도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것과 같은 지역의 가치를 실현할 수도 있다. 즉 지역 브랜딩은 지역 마케팅의 노력과 더불어 지역민들을 위한 경영이자 경험이다(김성도, 2003: 311).

이러한 지역 브랜드를 척도화 해서 지수로써 검증하려는 시도도 있다. 국가 브랜드 전문가 안홀트(S. Anholt)는 도시브랜드 지수(city brand index)를 개발했다. 그는 도시브랜드 지수를 측정하기 위해 6각형 모델을 설립하여 매년 50개국의 국가와 도시를 바탕으로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브랜드 결정요소로는 존재감, 장소, 잠재력, 생동감, 사람들, 기초조건이다. 존재감은 국제적 인지도 위상이고, 장소는 물리적 경관과 이미지를 측정한다. 이와 같은 잠재력은 경제와 교육 기회를, 생동감은 생활, 여행의 매력, 재미, 사람들은 친절함과 안전을, 마지막으로 기초조건은 생활 기반시설을 측정한다. 이 중에서 장소는 바로 장소성으로 볼 수 있다.

2. 장소성

‘장소성’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소성에 대한 연구는 국문학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서정주의 시에 대해 시간성과 장소성을 부여해 해석한 연구2)가 나온 1973년 이후로 문학계에서는 꾸준히 장소성 개념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까지 장소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던 관계로 학자들은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노력했다.3) 장소성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로, 이는 공간과는 다르다. 공간은 보편성과 객관성을 보이는 반면, 장소는 특수성과 주관성을 갖는다. 그래서 “개개인들에게 의미 있는 요소를 중요하게 다루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평균의 의미”를 찾을 때 장소라는 개념과 차별성을 보인다(홍성희 외, 2011: 21).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성이 높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할 때 장소가 된다. 공간(空間)은 한자 그대로 “비어있는 것들의 사이”다(진은경 외, 2017: 570). 이 사이에 경험과 의미, 시간과 같은 내용을 채울 때 장소가 된다. 경관 역시 장소와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경관과 장소는 다른 점이 있다. 경관(景觀)은 한자에 따르면 “경치를 바라보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의 밖에 있다면, 장소는 “나”가 안에 속해 있다. 또한 경관은 범위가 넓고 움직이지 않는 정태성이지만, 장소는 범위가 좁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태성을 보인다. 하지만 장소가 확장함에 따라 경관이 장소의 “안”에 들어온다면 경관은 곧 장소가 된다.

한편, 장소는 생태심리학에서 활용하는 “행태적 장(behavior setting)” 개념과 유사하다는 시각도 있다. 행태적 장은 스스로 형성하는 단위이며, 각 단위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지니고, 그 경계는 안과 밖의 패턴을 구별 짓는다. 이러한 특징은 장소와 유사하다. 장소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간이고, 장소는 장소 주변과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지니며 장소 내부와 외부의 행위 패턴이 생긴다. 하지만 행태적 장은 “다수의 ‘단위-패턴’의 단순 집합”(임승빈, 2009: 205)인데 비해 장소는 “다수의 공간 요소와 다수의 행태가 어우러져 융합”(홍승희 외, 2011: 22)해 형성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여러 논의와 유사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는 장소성의 개념을 도식화하면 <그림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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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장소성 형성 구조 자료: 홍성희 외, 20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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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에서 보듯이, 장소성은 “공간, 시간, 경험, 의미의 형성 요소를 지니며 (3차 원인) 공간 및 공간에서 발생되는 인간 형태에 대한 (4차 원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직접적 경험을 통해 (5차 원인) 의미가 생성·축적된 장소가 지닌 경험적·의미적 특성”이다(홍성희 외, 2011: 20). 이러한 정의에 따라 지금까지의 용산이라는 장소성을 확인해 보기로 한다.

Ⅲ. 지금까지의 용산 장소성

지금까지 용산의 장소성을 정치, 경제(산업), 사회 분야에서 꼽는다면, 대표적인 미군기지, 전자상가, 이태원으로 들 수 있다. 물론 연령과 성 그리고 개인의 기억에 따라 용산을 다른 장소를 꼽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은 용산을 미군기지, 전자상가, 이태원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용산의 장소성으로 꼽히는 이유와 맥락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1. 서울 속의 작은 미국, 미군기지

정식 명칭이 “용산 미국 육군 기지(United States Army Garrison in Yongsan)”인 용산의 미군기지는 부대 기능을 대부분 평택으로 옮기면서 2022년 폐쇄했다. 이 자리는 임진왜란 초기 북진하던 일본군의 후방 병참기지였고,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조선에 파병한 청나라 군대 3천 명이,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다. 이처럼 용산의 외국군 주둔 역사는 오래됐지만, 이때까지는 잠시 주둔했다가 떠났다. 그러나 1894년 동학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건너온 일본군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곧이어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선은 청나라에 진압을 요청했다. 일본은 청의 파병을 빌미로 자국 거류민과 공사관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 8,000여 명을 조선으로 보냈다. 이 시기 파병의 근거는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맺은 제물포 조약4)이었다.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은 경복궁을 공격해 조선 조정을 무력화하고, 더 많은 병력을 조선에 파견한다. 이때 파견한 병력은 동학혁명군 진압보다는 청나라와 전쟁을 위함이었다. 청일전쟁 승리 후, 일본군은 더 많은 부대를 진주시켰고, 이때 용산에 주둔한 부대는 20사단이었다. 러일전쟁 승리 후,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은 용산에 일제 조선군 본부를 세워 1945년까지 한반도 진주한 일본군의 중심으로 활용했다.

해방 이후, 미군은 일본의 군사시설이 있던 용산을 접수하고, 제7 보병사단이 용산에 주둔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하면서 미군은 철수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복귀했다. 휴전 이후 현 위치에 제8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2003년 미정부는 주둔부대인 제8군을 후방으로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평택 미군 부지로 이동을 결정했다. 최초 계획은 2017년까지 행정 인원 200여 명을 제외하고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캠프 험프리스로 전부 이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8년 여름에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의 직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50명과 그 가족이 캠프 험프리스로 이주하고, 2021년 여름까지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2022년에서야 부대 이전을 완료했다. 부대 이전에 따라 캠프 코이너, 캠프 킴과 같은 용산 기지의 부지들은 서울특별시에 단계적으로 반환할 예정이다.5)

그 이후 오랫동안 용산의 한가운데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기지는 용산 하면 떠오르는 장소성이었다. 미군기지로 인해 인근 지역은 “서울 속 작은 미국”으로 미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성장했다. 미군을 위한 유흥 시설이나 미군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 형성으로 인해 주변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다른 차별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기지는 용산의 장소성으로 유지하기에는 부족하다. 우선 평택으로 제8군이 이전하면서 미군 주둔의 역사가 끝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공권력 오남용으로 인한 이태원과 용산 참사를 치유하기 위해서 공권력의 상징인 군대, 그것도 외국 군대를 내세우는 것은 맞지 않다.

2. “용팔이”의 활동 무대, 용산전자상가

용산 전자상가는 1987년 개장했다. 전자상가로 개발하기 전에는 청과물시장이 있었는데, 이를 가락동으로 이전하고 청계천 상가의 대림, 세운상가의 전자 상인들이 이주할 수 있는 단지로 개발했다. 전자랜드, 선인상가, 나진상가와 같은 대형 상가 안에 컴퓨터, 전자, 전기 물품과 같은 전기/전자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다.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조명기구, 전기/전자 제품도 살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는 직접 방문해 거래해야 했으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인터넷으로 선주문하여 물건을 직접 수령하거나, 택배로 물품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다만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2010년 이후로 전자상가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까지는 소매 상가로서 명맥을 어느 정도 이어갔으나, 코로나19 이후 소매 기능도 거의 사라졌다. 상가에 들어가 있는 점포는 대부분이 물류 창고, 업체 사무실, AS 사무실, 중고 매매 업소 등이며, 온라인으로 전자 제품을 파는 도소매 업체의 사무소일 뿐이다. 이에 따라 용산관광버스터미널은 2014년 철거해서 2017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개장했고, 나진상가 역시 재개발 계획 수립 이후 일부 진행 중이다.

용산전자상가는 일명 “용팔이”라는 악질 전자기기 판매업자들이 많았다. “용팔이”는 원래 1980대 중후반 활동했던 조폭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산에서 초보자들을 골라 사기 치고 못된 짓을 하며 물건을 “파(ㄹ)”는 “이”을 일컫는 말로 변했다. 그들은 호객행위, 상가 직원에 대한 불친절은 물론 중고를 신품으로 속이거나 전자기기의 부속품을 별매품이라고 하여 비싸게 파는 것과 같은 행위를 일삼았다. 일부 상인들은 고객에게 협박과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6) 이러한 “용팔이”들의 행위는 용산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으면서7)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용산전자상가 역시 용산의 장소성으로 내세워 계승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먼저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전자상가는 사라지고 있다. 터미널상가 재개발을 시작으로 나진상가 역시 재개발에 들어갔다. 재개발의 방향성은 전자상가가 아니라 유통단지나 업무단지이기 때문에 “전자상가”라는 장소성은 더는 찾을 수 없다. 다음으로 “용팔이”에 대한 인식이다. “용팔이”의 만행은 신문, TV에도 나온 용어로 호객행위, 바가지 상술을 대표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전자상가는 용산 장소성에 부정 의미를 강화하는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상가를 대체할 수 있는 장소성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3. 다문화의 용광로, 이태원

이태원은 용산에 일본군과 미군이 연이어 주둔하면서 군사지역 배후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태원은 군사지역의 면모가 더욱 강해졌고, 이들을 위한 가게와 주점, 기지촌과 같은 위락시설이 들어섰다. 이러한 모습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태원의 모습이 현재와 비슷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때 관광객들이 관광 쇼핑과 유흥 위락의 명소로 찾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 및 아시아는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야 하는 명소로 인정받으면서 세계인의 거리로 거듭났다. 특히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한 이래 이태원은 전통과 현대, 세계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혼재하는 “다문화”의 장소로 바뀌었다. 특히 인근 50여 나라의 공관과 관저, 미군기지, 외인 아파트 등 약 2만여 명이 거주했던 당시에는 외국인 커뮤니티는 물론 다국적의 세계인들과 다양한 외국어 간판으로 이국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태원은 성 소수자 업소들이 다수 포진하면서 다문화를 넘어 다양성이라는 장소성도 확보했다. 성 소수자에 대해 보수성향을 보이는 한국에서 이들이 이태원에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이다. 이태원은 이미 미국 문화를 필두로 한 외래문화 수용의 장으로서 “다양한 국적․계층의 외국인들이 다양한 문화 영토를 형성”해 왔다(한유석, 2013: 257). 이러한 다양성과 다문화는 일종의 “해방”의 공간8)으로 이태원을 규정했고, 용산의 지역 브랜딩에 활용하는 주된 장소성이었다.9)

이태원의 다문화와 다양성은 용산의 지역 브랜드를 위한 장소성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미군배설문화”, “게이XX”와 같은 부정의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2022년 이태원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태원은 미군기지나 전자상가와 달리 계승해야 할 장소성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계승은 2022년 이태원 참사를 치유하기 위해 새로운 장소성을 발굴한 이후에 논할 일이다. 다음 장에서는 미군기지와 전자상가를 대체하고, 2022년의 이태원과 2008년의 용산을 치유할 수 있는 용산의 장소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Ⅳ. 새로운 용산 장소성 발굴

1. 제과 산업의 본산, 용산

서울 1호선 용산역과 남영역 사이에는 한국 제과 회사 중 오리온과 크라운의 본사가 있다. 1989년까지는 롯데제과가 남영역 인근에 본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산은 한국 제과산업과 인연이 매우 깊은 곳으로 볼 수 있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세 제과회사는 캠프 킴(Camp Kim)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산과 인연이 있는 제과 3사 중 오리온은 전신인 동양제과가 19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34년 일본인이 설립한 풍국제과는 풍국제분회사 안에 있었고, 주소는 경성부 남대문통 4정목 76-1로10), 현재 주소는 용산구 백범로 90다길(용산구 문배동 30) 인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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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용산 일대 제과회사 본사 위치 자료: 「Kakao Map」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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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은 당시 일제강점기 풍국제분회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자료이고, <그림 4>는 현재 오리온제과의 위치로 당시와 지금 위치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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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1930년대 풍국제과 위치 자료: 「대경성부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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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현재 오리온 본사 위치 자료: 「Kaka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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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2024년 현재 오리온 본사 일대 자료: 「Kaka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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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제과는 1947년 중림동에서 영일당 제과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1956년 회사 이름을 지금과 같이 바꾸고, 본사를 묵동, 서초동을 거쳐 2007년 지금의 남영동으로 이전했다. 이 위치는 일제강점기 때 영강제과가 있었던 곳이었다.

<그림 6>은 1930년대 영강제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자료이고, <그림 7>은 현재 크라운제과 본사가 있는 곳이다. 사실 이곳은 해태제과가 영등포로 본사를 이전하기 전까지 해태제과의 본사였다. 해태제과 본사였던 장소에 크라운제과 본사가 있는 역사는 다음과 같다. 적산이었던 영강제과의 모든 생산설비는 해태제과가 불하(拂下)받아 운영했고, 해태제과는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유수의 제과 회사로 성장했으나, 외환위기 때 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회사는 여러 사업으로 쪼개져서 팔렸고, 제과 사업은 크라운 제과가 2005년에 인수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크라운제과는 용산에서 시작한 회사는 아니지만 영강제과를 불하받은 해태제과를 인수해서 운영한다는 점에서 봤을 때는 용산과 인연이 깊은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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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1930년대 영강제과 위치 자료: 「대경성부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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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현재 크라운제과 위치 자료: 「Kaka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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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1950년대 해태제과 남영동 공장 자료: 「해태 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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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설립한 롯데제과는 1989년 본사를 양평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20년 넘게 용산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에도 롯데리아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를 갖춘 식품 사업체 롯데지알에스가 건물을 물려받아 2021년 본사를 금천구 독산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용산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림 9>는 롯데제과 본사가 있었던 위치였으며, <그림 10>은 옛 롯데제과 부지에 건축 중인 청년주택의 모습이다. 비록 롯데제과는 현재 용산을 떠났지만 오리온, 크라운과 함께 3대 제과 업체로서 용산의 장소성을 더하는 데 한몫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국내 제과산업체로 명맥이 이어진 풍국제과나 영강제과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용산은 제과 산업의 본산이었다. 갈월동에 경성제과와 조선제과, 후암동에 장곡제과, 용문동에 대서제과, 원효로에 궁본제과, 공덕동에 기린제과와 같이 모두 8개의 제과 회사가 지금의 용산 일대에 본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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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롯데제과 본사가 있었던 위치 자료: 「Kaka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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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2024년 현재 모습 자료: 「Kaka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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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은 당시 제과회사의 주소이고, <그림 11>은 일제강점기 당시 제과회사의 위치를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와 당시 신문기사와 광고를 토대로 추정해 현재 지도 위에 표시한 것이다. 당시 제과회사들은 용산, 그것도 서쪽 지역에 몰려있음을 알 수 있다.

표 1. 일제강점기 8대 제과회사 본사 주소 및 추정 위치
회사명 당시 주소 현 주소(추정)
궁본제과 확인 불가 원효로
기린제과 확인 불가 공덕동
경성제과 경성부 남대문통 4정목 9 갈월동
대서제과 경성부 원정 1정목 129 용문동
영강제과 경성부 연병정 131 남영동
장곡제과 확인 불가 후암동
조선제과 경성부 강기정 3 갈월동
풍국제과 경성부 남대문통 4정목 76-1 삼각지

자료: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 매일경제(197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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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일제강점기 용산구 제과회사 본사 추정 위치 자료: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자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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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이러한 제과산업의 본산이라는 장소성은 용산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에 새로운 장소성으로서 충분하다. 장소성이라는 것은 그와 관련한 사람들과 사회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체험의 총체이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확보하는 것은 다시 장소성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돕는다. 용산이 제과산업의 본산이라는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두루 알린다면 전자상가로 대표하는 산업계의 장소성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또한 남녀노소 많은 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주는 과자라면 이태원과 용산 참사에 대한 치유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2. 용산의 문학, 문학 속의 용산

지역 브랜딩에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국가와 지역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은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은 경제 성장과 복지 향상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에도 기여한다. 문화산업을 통해 예술-경제-지역의 가치 모두의 상승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강릉시에서 ‘강릉문학관 건립과 문학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조사 용역’을 진행했을 때, 경제적 타당성 분석 결과, 문학관 방문객 수는 연간 38만 5,000여 명으로 나타났고, 수익성 지수도 1.04로 조사되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2)

여러 문화산업 중에서 문학 관련 사업은 작가의 고향이나 작품과 관련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작가의 고향과 관련 있는 문학 사업은 문학관이다. 박경리 문학관이 원주에 있고, 김달진 문학관은 진해에 있는 것과 같이 문학관은 주로 작가의 고향에 세운다. 전국 95개 문학관 대다수는 작가의 고향에 있다.13) 문학관 건립은 2016년 시행한 문학진흥법으로 인해 전국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이에 따른 문학계의 우려도 있으나14), 지역홍보 차원에서 지자체는 문학관 건립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작품과 관련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은 주로 답사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용산의 장소성을 더해주고, 지난 참사를 치유할 수 있는 요소로 문학은 높은 효용성이 있다. 게다가 용산은 장소성을 확보해 줄 작가와 작품도 있다. 용산에서 태어난 작가로는 나도향이 있다.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의 작가인 나도향은 현재의 청파동1가 56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대표작인 『벙어리 삼룡이』에 나오는 연화봉이라는 마을은 그의 고향 청파동이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나도향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한남동 유엔빌리지가 들어오면서 이장했다.15) 이처럼 나도향은 용산에서 나서 용산에 묻힌 용산의 장소성을 더해주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나도향과 함께 한국 근대문학에서 용산에 관해 서술한 작품들, 작가들과 함께 “용산 문학관(가칭)”을 건립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 근현대 문학 중 용산을 언급한 작품은 <표 2>와 같다.

표 2. “용산”을 언급한 근현대 문학
작가 발표 연도 제목 관련 내용
김내성 1939 마인 용산의 한강 인도교를 달리는 '세단'이 묘사
김동인 1934 수평선 너머로 등장인물이 탄 택시가 용산가도를 지나 한강철교를 달림
나도향 1925 벙어리 삼룡이 1910년을 전후한 시기 용산의 연화봉(蓮花峯, 일제강점기 청엽정靑葉町)을 배경
문순태 1987 문신의 땅 등장인물은 과거 기지촌 생활을 했고, 그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박경리 1957 불신시대 등장인물인 '갈월동 아주머니'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진영에게 종교를 권유
박태원 1933 피로-어느 반일의 기록 작가는 한강인도교를 이용하지 못하고, 언 강물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박태원 1935 길은 어둡고 경성에서 군산으로 이동하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창밖으로 용산 시가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
손창섭 1968 1960년대 용산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
염상섭 1954 취우 등장인물들은 피난 중 한강인도교의 폭파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숨어 지낸다.
염상섭 1932 백구 등장인물이 용산역 대합실과 철도관사길을 걷는 모습이 등장하여, 철도시설이 정비된 용산 일대의 모습을 확인
염상섭 1924 만세전 경성에 도착한 '나'는 용산역에서 서울에 처음 방문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
염상섭 1927 사랑과 죄 을축대홍수(1925) 이후 변화한 용산 일대의 모습이 묘사
유재순 1984 여왕벌 이태원에서 거주하며, 미군과 교류하는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
이광수 1934 그 여자의 일생 주인공 '금봉'이 일본으로 떠나는 출발지이자 작별인사를 하는 공간으로 용산 정거장이 묘사
이광수 1932 "한강 인도교에는 짐마차와 노동자,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들로 별로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용산 삼개에 반짝거리는 전등
이태준 1942 별은 창마다 경성역에서 용산, 그리고 제일인도교(한강인도교)로 달리는 화물차를 묘사
이태준 1941 사상의 월야 전차, 정류장, 경의선, 한강철교 등 근대 교통수단과 관련된 소재가 용산을 배경
이태준 1940 청춘무성 용산은 삼각관계의 갈등을 겪은 등장인물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동하기 위한 경유지로 등장
정비석 1954 자유부인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사무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인물
채만식 1946 미스터 방 경성 연합군 포로수용소(현재의 청파동 신광여자중학교, 신광여자고등학교 부지)에서 일한 경력을 기반으로 미군의 통역
채만식 1937 탁류 후반부에서 등장인물이 새로운 삶을 꿈꾸는 공간으로 '서울'이 제시되었다. 이때 용산의'한강철교'가 언급
채만식 1934 염마 경성역과 용산, 한강인도교를 배경으로 탐정과 범인의 추격전이 묘사
최승자 1981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타인에게 버림받은 여성을 시적 화자로 내세워, 청파동을 배경
최정희 1958 끝없는 낭만 주인공은 주한 미군과 사랑에 빠지지만, 스스로 '양공주'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며 고뇌한다.

<자료: 용산역사박물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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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작품 외에도 “이광수와 염상섭, 채만식, 김남천, 이태준, 김동리, 김내성 등의 장편소설과 최서해, 전영택, 박태원 등의 단편소설에서 용산과 관련된 서술”이 있다(유인혁, 2019: 215). 용산의 문학은 용산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에 새로운 장소성으로서 충분하다. 이태원이 갖는 다양성과 다문화를 대체할 장소성은 물론 문학이 갖는 치유의 힘은 이태원과 용산 참사에 대한 치유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을 통한 치유는 읽는 것을 넘어 글쓰기를 통해 완성한다. 글쓰기는 결국 기억과 기록에 달렸다. 용산은 대규모 용산개발사업과 곳곳을 개발하면서 도시역사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역사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기록하기 위해 용산역사박물관이 2022년에 개관했다.

<그림 12>와 <그림 13>에서 보듯, 박물관 자체도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철도병원을 보존․복원하여 활용했다. 다양한 시대별 전시공간과 체험 코너를 마련하여 격변의 세월을 거쳐 지금의 용산이 되기까지 기록과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박물관을 통해서 긍정의 기억을 담는 동시에 2008년과 2022년의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공간을 담는다면 반드시 문학관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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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1930년대 철도병원 위치 자료: 「대경성부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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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2024년 현재 모습 자료: 「Kaka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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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결론

이 연구의 목적은 용산이라는 지역 브랜딩을 위해 장소성 강화에 필요한 요소를 찾는 것이다. 용산 브랜딩이 필요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용산이 가지고 있는 현재 장소성은 긍정보다는 부정 의미가 더 크다. 이러한 장소성의 전환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요소가 아닌 새로운 장소성 요소의 발굴이 필요하다. 새로운 장소성 요소의 발굴을 하면서 용산이 가지고 있는 부정 의미을 바꾸고자 하는 까닭은 2008년과 2022년의 참사를 치유하고자 함이다.

기존의 용산이 가지고 있던 장소성을 대표하는 미군기지, 전자상가, 이태원은 나름의 의미와 시간의 축적을 겪으면서 용산이라는 브랜드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러 이유로 용산의 이미지에 더 이상 기여할 수 없다. 우선 미군기지와 전자상가는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에 용산이라는 브랜드에 기여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지 않았다. 이에 기존의 용산의 장소성에 대해 대체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미군기지의 경우, 공권력으로 인한 참사를 치유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전자상가의 경우는 과도한 상술이라는 부정 요소로 인해 계승이 아닌 대체해야 할 장소성이다. 이태원의 경우는 참사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치유와 대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제시하는 것은 제과산업과 문학이다. 용산은 현재 오리온과 해태제과를 인수한 크라운 2개의 제과회사 본사가 있다. 1989년까지는 롯데 본사가 있었고, 1961년 영등포로 이전했던 해태제과도 1993년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이중 오리온과 해태제과는 적산을 불하받아 경영을 해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100년 가까이 용산에서 제과산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포함 일제강점기 때에는 용산 일대에 8개의 제과회사가 있었을 정도로 용산은 제과회사의 본산이었다. 문학의 경우, 많은 지자체가 문학관을 건립해서 지역 브랜딩에 활용한다. 대부분 작가의 고향 문학관을 세우지만, 일부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관을 건립하기도 한다. 용산은 『벙어리 삼룡이』 작가 나도향의 고향이며, 근현대 문학의 배경으로서 염상섭의 『사랑과 죄』를 포함해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해 문학관을 건립하면 용산의 장소성을 활용한 브랜딩 확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제과산업과 문학은 그 자체로도 전자상가와 미군기지, 이태원를 대체할 수 있는 장소성이다.

지역 브랜드 확립을 위한 장소성은 그와 관련한 사람들과 사회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체험의 총체이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확보해서 이야기를 퍼트리는 것은 다시 장소성을 강화한다. 이렇게 강화한 장소성은 다시 지역 브랜드 확립에 기여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즉 장소성 요소를 발굴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지역 브랜드 확립과 성공이 힘들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야기를 전파하고 전달해야 한다. 또한 지역 브랜드 확립에 도움을 주는 장소성은 발굴하고 강화해서 계승해야 하는 한편, 도움을 주지 않는 장소성은 새로운 요소로 대체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용산의 장소성 중 미군기지와 전자상가, 이태원을 제과산업과 문학으로 대체할 것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에서는 더 많은 장소성을 확인하고, 대체하며 발굴할 것을 과제로 남긴다. 예를 들어 새남터 순교지와 모스크가 같이 있는 용산도 훌륭한 장소성 요소로 활용할 수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용산만이 가지고 있는 요소다. 하지만 용산의 장소성 중 가장 강력한 것은 국가 원수의 집무실과 공관이 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수도는 그 자체로 장소성을 획득하고, 수도 중에서도 국가 원수의 집무실 또는 공관이 있는 곳은 강한 장소성을 확보한다.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이나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이 대표 사례다. 용산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원수의 집무실과 공관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요소가 용산의 브랜딩 확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때다.

Notes

용산의 장소성 연구는 김태우(2022), 김경아 외(2021), 이승현(2019), 김경아 (2019), 정동욱 외(2007), 문상명(2021), 강준호(2020), 장용혁 외(2017), 김선 화(2014), KANG et al.(2020)에서 확인할 수 있고, 용산의 브랜딩 연구는 김상 훈(2024), 김상훈(2020), 박수빈(2018)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자세한 연구는 최하림(1973)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외 학자들의 장소성 개념을 위한 논의는 홍성희 외(2011: 16-20)에서 확인 가능하다.

5항 : 일본 공사관에 군사 약간을 두어 경비를 서게 한다. (병영을 설치하거나 고 치는 일은 조선국이 맡는다. 조선의 군사와 백성이 규약을 지킨 지 1년이 되어 일 본 공사가 직접 경비가 필요치 않다고 할 때에는 군사를 철수해도 무방하다.)

2024년 6월 현재 31% 반환.

““손님, 맞을래요?” 사건 이후 용산 모습은”(한겨레, 2007.05.30.)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12757.html)(2024.12.19. 확인).

용산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전자상가의 상권이 쇠퇴, 2. 온라인으로 거래 형태 변화, 3. 다양한 방법으로 전자기기 구매.

인근에는 월남민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형성한 ‘해방촌’도 있다.

“다문화”, “이국성”, “다양성”을 이태원의 지역 브랜딩으로 본격 시작하는 때는 2000년대 초였다. 자세한 내용은 한영주(200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

경성제과, 대서제과, 영강제과, 조선제과, 풍국제과는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 료』; 궁본제과, 기린제과, 장곡제과는 “産業人脈(산업인맥) <197> 食品工業(식품 공업) (2) 製菓業界(제과업계) [1]”(매일경제, 1975.02.17.)

“문학관 설립사업 중기 과제로 전환”(강원도민일보, 2017.11.08.).

한국문학관협회-협회소개-인사말 (http://www.munhakwan.com/introduce.html?html=greeting.html)(2024.12.19. 확인).

기초 자료조차 잘못된 부실한 콘텐츠, 문학관을 운영할 장기 기획 부재 등으로 독자들의 발길이 끊긴 ‘자료의 무덤’, ‘박제된 건물’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있다.( “지자체 앞다퉈 문학관 건립... 왜 문학계는 환영하지 않나”(서울신문, 2017. 11.27.).

“1926년 초여름, 게다짝에 거지꼴로 문 두드려”(월간조선, 2015.07.)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507100050(2024.12.19. 확인).

용산역사박물관 – 온라인전시관 – 숨은 용산 찾기(2024.12.19.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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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業人脈(산업인맥) <197> 食品工業(식품공업) (2) 製菓業界(제과업계) [1]”(매일경제, 1975.02.17.).

30.

“1926년 초여름, 게다짝에 거지꼴로 문 두드려”(월간조선, 2015.07.).

31.

“지자체 앞다퉈 문학관 건립... 왜 문학계는 환영하지 않나”(서울신문, 2017.11.27.).

32.

“문학관 설립사업 중기 과제로 전환”(강원도민일보, 2017.11.08.).

33.

kakaomap(map.kakao.com)

34.

용산역사박물관(https://museum.yongsan.go.kr/)

35.

한국문학관협회(http://www.munhakwan.com)